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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

편지에 쓰신 그립다는 말, 보고 또 봐요

by taeshik.kim 2019.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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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에 밝은 달 떠오르니 계영은 추운데

옥승은 서쪽에 지고 옥루는 새벽알려요 

봉래산 여기에서 삼천리도 못 되건만  

만나자 하시곤 여태 굽이굽이 헤매나요

비녀 눌러 쪽진 머리엔 봉잠이 기울어

난경에 비춰 매만지고 분단장합니다

사랑 편지 열폭에다 쓴 그립다는 말 

정랑이 남기셨으니 자세히 본답니다


江月生明桂影寒, 玉繩西落漏初殘。

蓬山未隔三千里,  芳約猶尋十二闌。

釵壓翠鬟斜嚲鳳,  鏡安紅匣欲窺鸞。

春牋十幅相思字,  留與情郞仔細看。





계영(桂影) : 달에 계수나무가 있다 해서 달 그림자 또는 달빛을 이르는 말이다. 예서는 그 뜻과 아울러 작가 추향(秋香)이 자(字)가 계영(桂英)이므로 자신의 외로운 처지를 한탄한 중의적 표현이다.


옥승(玉繩) : 원래는 북두 제5성(五星) 북쪽에 위치한 천을(天乙)과 태을(太乙) 두 작은 별을 말하지만, 보통은 촘촘하게 나열한 뭇별을 이른다. 두보의 〈대운사찬공방(大雲寺贊公房)〉에 “옥승은 아스라이 끊어지고 철봉은 삼연(森然)히 나는구나.[玉繩逈斷絶 鐵鳳森翶翔]”라는 시를 통해 뭍별이 다 사라지고 새벽이 찾아왔다는 뜻으로 사용한다. 


굽이굽이 : 원문은 ‘十二闌’인데 곧 열두난간[十二闌干] 약칭으로 흔히 거대한 누각 난간에 곡절(曲折)이 많음을 가리킨다. 여기에서는 굽이굽이 길이 멀어 여태 헤매느라 오지 않느냐는 원망의 말이면서 기다리면서 여태 12줄 가야금이나 탄다는 한탄의 말이기도 하다. 


봉잠(鳳簪) : 봉황의 모양을 대가리에 새긴 큼직한 비녀로 봉채(鳳釵)라고도 한다. 정랑(情郞), 즉 정을 준 남자가 머리를 올려주었으나 기다림에 지쳐 흐트러진다는 푸념이다.


난경(鸞鏡) : 화장하는 거울로 화장대를 이른다. 


정랑(情郞) : 남편이 아닌 정을 준 남자를 이른다. 






[해설]

선조~인조 연간을 살다간 장성의 관기(官妓)로, 이름을 떨친 추향(秋香)의 시다. 자가 계영(桂英)이다. 시와 가야금, 춤에 뛰어나 계곡(谿谷) 장유(張維, 1587~1638), 석주(石洲) 권필(權韠, 1569~1612), 명고(鳴皐) 임전(任錪, 1560~1611), 현주(玄洲) 조찬한(趙纘韓, 1572~1631), 오산(五山) 차천로(車天輅, 1556~1615), 백주(白洲) 이명한(李明漢, 1595~1645), 양파(陽坡) 정태화(鄭太和, 1602~1673), 설봉(雪峯) 강백년(姜栢年, 1603~1681), 오봉(五峯) 이호민(李好閔, 1553~1634), 현곡(玄谷) 조위한(趙緯韓, 1567~1649), 죽창(竹窓) 구용(具容, 1569~1601), 추담(秋潭) 김우급(金友伋, 1574~1643), 양대박(梁大樸, 1544~1592) 등 당대 시단을 주름잡은 거물들과 시를 주고받았다. 


특히 그의 시권(時圈) 첫머리에 있었던 이 시에 화운(和韻)한 것들이 많다. 그의 사후에도 숱한 문사이 그의 옛집이나 무덤을 찾아 시를 남기기도 했고, 장성을 찾으면 그의 제자나 손녀까지도 찾아 기록을 남겼다. 





1, 2행에서는 강물에 비친 달이 환히 밝아 강물 속 달빛[桂影]은 춥기만 하다. 정랑(情郞)이 그리워 잠 못 드는데 하늘이 밝아와 뭇별은 서쪽으로 지고 옥루는 어느새 새벽을 알린다. 


3, 4행에서는 정랑(情郞)이 있는 봉래산은 삼천리도 못 되는 곳인데 만나자는 약속만 남기고 가더니 여태 굽이굽이 산길을 헤매는지 오지를 않고 추향은 12줄 가야금만 속절없이 탄다. 


5, 6행에서는 윤이 나는 쪽 찐 머리에 정인이 꽂아 준 봉잠(鳳簪)은 그 무게 견디지 못하고 자꾸 기울어만 가고 그녀의 마음도 조금씩 허물어져 가는 것을 느끼고서 화장대에 비춰 매만져 바로 하고 분단장도 하겠다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7, 8행에서는, 정랑이 남긴 긴긴 편지에 ‘그립다[相思]’는 구절이 또렷하게 보이니, 반드시 찾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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