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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당탕 서현이의 문화유산 답사기

황복사 삼층석탑과 불국사 다보탑, 탑돌이는 어디서?

이서현 용인시청 학예연구사 



《삼국유사三國遺事》 권 제4 의해義解 제5 의상전교義湘傳敎에 이르기를 

 

湘住皇福寺時 與徒衆繞塔 每步虛而上 不以階升 故其塔不設梯磴 其徒離階三尺 履空而旋


의상이 황복사에 있을 때 무리들과 함께 탑을 돌았는데, 매번 허공을 밟고 올라갔으며 계단으로 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 탑에는 돌층계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그 신도들도 계단에서 세 자나 떨어져 공중을 밟고 돌았다.”

 

고 했으니, 이 기록은 의상의 신이한 행적을 보여주는 것인데 불탑에 계단이 설치되는 사례로 주목된다


이에 대해 고유섭 선생은 일반적으로 석탑에 계단이 설치되지 않고 보통 목탑에 설치되므로 현존하는 황복사지 삼층석탑 이전에 목탑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황복사 인근에서 목탑지를 비정한 바 있으나, 최근 이곳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통일신라시대 가릉假陵이 확인되어 이 기록에 해당하는 불탑은 현존하는 삼층석탑일 확률이 높다


그러나 이 기사가 의상의 제자들에 관한 내용 중에 갑자기 끼어들어 있고, 최치원의 「의상전義湘傳에는 없는 내용이며, 의상은 철저한 수행위주의 수도생활과 제자 양성에 힘쓴 인물로 신이한 행적을 직접 보인 적이 거의 없는 점, 의상이 황복사에서 출가는 하였으나 이후에 이곳에 머무르지 않았던 점에 주목하여 신이한 행적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의상의 제자인 표훈表訓이 했을 것이라는 견해(김복순, 義湘皇福寺, 新羅文化祭學術發表會論文集17, 1996. 10, pp. 152~158.)를 주목하여 추정해 본다.


 

황복사탑

 


, 기사 내용대로 요탑의례繞塔儀禮 행위는 실제로는 표훈이 한 것이나 스승인 의상이 한 것으로 부회되어 기록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는 이 기사의 바로 앞에 ‘표훈表訓은 일찍이 불국사佛國寺에 있으면서 항상 천궁天宮을 왕래하였다.’는 문장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므로, 탑돌이를 한 사찰이 황복사가 아니라 불국사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된다.

 

기사 내용을 다시 한번 살펴보면, 탑돌이를 하는 주체는 표훈과 신도들로 나눌 수 있다. , 표훈은 신이한 능력으로 계단을 밟지 않고 허공에 오르므로 그 탑엔 계단이 없었다는 내용과 신도들은 계단에서 세자 떨어진 곳에서 마찬가지로 공중으로 올랐다는 내용이다


이를 따르면 표훈이 탑돌이를 한 불탑은 계단이 설치되지 않았고, 신도들이 탑돌이를 한 불탑에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으나 신도들 역시 계단에서 떨어진 곳에서 허공에 올랐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서 이 요탑의례가 이뤄진 곳이 불국사였을 것으로 추정하였으므로, 표훈과 신도들이 요탑의례를 행한 불탑은 현재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


 

불국사 다보탑



, 표훈은 석가탑에서, 신도들은 다보탑에서 繞塔儀禮를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는 표훈은 계단이 설치되지 않은 불탑을 돌았고, 신도들은 분명 불탑의 계단에서 3자 떨어져서 허공을 밟았다고 언급하고 있어 신도들이 탑돌이를 한 탑에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제등梯磴은 분명 돌계단을 의미하므로 이 기록에서 繞塔儀禮를 했던 곳은 불국사일 것으로 추정이 가능하므로, 석가탑과 다보탑에서 탑돌이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본인의 박사학위 논문 pp. 94~95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