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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이규보가 증언하는 13세기의 불복장佛腹藏

by taeshik.kim 2020.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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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장

 

고려 중기를 살다 간 이규보李奎報(1169∼1241)의 문집 《동국이상국전집東國李相國前集》 제25권 / 잡저雜著에 수록된 글이다. 이에 첨부한 운문은 손을 볼 데가 제법 있는데 여유가 되지 않아 원문 그대로 첨부한다.

아래 글이 지닌 중요성은 여러 가지다.

첫째, 이 무렵 복장 유풍 그 일단을 엿본다.
둘째, 강릉까지 몽고군이 들이쳤다.
셋째, 그들이 복장을 노렸다.
넷째, 그렇다고 해서 복장을 훔쳐낸 이가 몽고군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이런 전란에 항상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법이다.
다섯째, 복장을 재봉안하는 의식이 있었다.
다섯째, 복장 유물 내역을 본다.
여섯째, 그 내역을 보면 동시대 매장 패턴과 일치한다.
일곱째, 동경이 들어간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여덟째, 복장을 안치하는 의식은 同 시대 혹은 前 시대 탑파 조성 때 사리장엄을 봉안하는 그것과 똑같고, 공양물도 똑같다.

***

 

복장



낙산사洛山寺에 있는 관음보살 복장腹藏을 보수한 데 대한 문文 병송幷頌 최 상국崔相國을 대신해서 지었다. 최 상국은 지금의 진양후晉陽侯다.

운운. 동해 가 낙산 위에 한 승지勝地가 있어 청정하여 티끌 한 점 없으니, 수월水月(물속에 비친 달)의 청수한 실상이 이곳에 의탁하였다. 아, 저 완악한 오랑캐는 무지막심하도다. 그들이 횡행하며 노략질할 적에 심지어 절의 불상까지도 훼손을 입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우리 대성大聖의 존구尊軀 또한 그러하여 비록 형체는 겨우 보존되긴 했지만 복중腹中의 진장珍藏은 모두 수탈당하거나 흩어져서 텅 비었다.

지인至人의 경계는 본래 영허盈虛·소식消息의 이치가 없는데, 금강金剛의 진체眞體에 어찌 훼멸이 있겠는가만, 범부凡夫의 보는 바에 있어서는 어찌 상심이 되지 않으랴? 하물며 제자로서는 경앙하는 마음이 전부터 간절하였었는데, 이제 복중의 진장이 분산되었다는 사실을 듣고 남보다 배나 가슴 아프게 여기고 동시에 용감히 보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에 전일의 소장된 것을 참작하여 삼가 심원경心圓鏡 2개와 오향五香·오약五藥·색사色絲·금낭錦囊 등 여러 가지 물건을 갖추어 복중을 채워 완전히 복구하여 예전 것과 손색이 없게 하였으니, 바라던 바에 무슨 문제될 게 있겠는가. 운운.

제자는 머리를 조아리고 이마를 두드리며 이어 단송短頌으로 다음과 같이 찬贊한다.

마침내 헐어버리지 못할 것은 / 究竟不毀
금강의 진신이다 / 金剛眞身
그 밖의 상설이야 / 外之像設
이루고 허는 일 사람이 하거늘 / 成毀由人
사람이 똑같지 않을진대 / 人非一類
공경하거나 업신여기나니 / 或敬或侮
저들은 업신여겨 손상하고 / 彼侮而殘
나는 공경하여 보수하네 / 我敬而補
저 이지러진 달과 같아 / 如月斯缺
얼마 안 가서 다시 둥글었다 / 未幾復全
모든 사녀(士女)들은 / 凡百士女
일심으로 돌아가 공경하라 / 一心歸處

진양후晉陽侯 : 최충헌崔忠獻의 아들 우瑀의 봉호다.
대성大聖 : 여기서는 석가여래를 가리킨다.

ⓒ 한국고전번역원 | 이정섭 (역) | 1978


洛山觀音腹藏修補文 幷頌 ○ 代崔相國行。今晉陽侯也。
云云。洪惟東海之濱洛山之上。有一勝境。淸淨無塵。水月睟相。於是乎寄焉。嗟乎。憬彼頑戎。無知莫甚。方其橫行冠掠也。至於佛宇梵相。無不被其殘毀者。我大聖尊軀亦爾。雖形體僅存。而腹中之珍藏。盡爲搜露散頓。枵然其空矣。且至人境界。本絶盈虛消息之理。則金剛眞體。寧且有毀滅耶。然在凡夫所覩。得不愴然傷心哉。況如弟子者。仰止之心。自昔滋切。乃今聞腹藏潰散之事。能不倍痛於人。而勇爲之補理耶。是用挨舊所藏。謹備心圓鏡二事及五香五藥色絲錦囊等衆緣。以充其服。完而復之。與昔無損。庸何傷乎。所願者云云。弟子頓首扣顤。仍以短頌贊之云。

究竟不毀。 金剛眞身。 外之像設。 成毀由人。人非一類。 或敬或侮。 彼侮而殘。 我敬而補。如月斯缺。 未幾復全。 凡百士女。 一心歸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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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2. 25)

 

앞 인용문에서 말한 진양후晉陽侯는 당시 최씨 무신정권 실권자로 그 막부 창업주 최충헌 아들인 최우崔瑀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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