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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3.1절 80주년의 사건> (2) 황소를 뒤로 하고 들어간 이사장실

by taeshik.kim 2019.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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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승종 (玄勝鍾) HYUN Soong Jong. 그는 거물이었다. 힘이 있는 거물이라기보다는 그 각종 화려한 이력이 사람을 질겁케 하는 그런 거물이었다. 


현승종 건국대 이사장. 이 사진이 3.1절 80주년 인터뷰 때 건국대 이사장실에서 내가 직접 찍은 것이다.



우리 공장 인명록을 통한 그의 이력은 대략 다음과 같다. 음력 1919년 01월 26일생인 그는 공직으로는 국무총리를 역임하고, 교직에서는 성균관대와 한림대 두 대학 총장을 역임했으며, 건국대 이사장으로도 일했다. 나아가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회장, 인촌기념회 이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아호는 춘재(春齋), 본관은 연주(延州)이며, 올해 만 100세인데 아직 타계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 


평안남도 개천 출신인 그는 1938년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제국대학에 들어가 1943년 법학과를 졸업했으며, 1973년 고려대에서 명예 법학박사, 1976년 대만 국립정치대학에서 명예 법학박사를 각각 받는다. 


해방과 더불어 학계에 진출한 그는 1946∼1957년 항목에다가 "고려대 법과대학 전임강사ㆍ조교수ㆍ부교수"라 적었거니와, 1957∼1974년 동 대학 법과대학 교수를 지낸다. 이것이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1946년 이래 30년간 고려대 법학과 교수로 봉직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다가 1974년 성균관대 총장이 되어 1980년까지 일한다. 이 무렵 춘천의 한림대가 각계 명망가를 교수진으로 영입하기 시작하니, 그 일환으로 현승종 역시 1984년 이 대학에 가고, 1989년 이래 1992년까지는 마침내 이 대학 총장을 지낸다. 1991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이 되는가 싶더니, 1992년 노태우는 그를 총리로 영입한다. 


밀가루 뒤집어쓴 총리서리 정원식. 1991년 6월3일. 연합DB. 우리 공장 조보희 기자 작품이다.



직전 총리가 총리 서리 신분으로 한국외국어대학 특강을 나갔다가 학생들한테 밀가루와 계란 세례를 받은 정원식이고, 93년 그가 물러나자 후임총리는 김영삼 정권이 출범하자 이른바 무진장 출신 호남 인사 황인성으로 넘어간다. 


밀가루 뒤집어쓴 총리서리 정원식. 1991년 6월 3일. 연합DB. 우리 공장 조보희 기자 작품이다.



아주 잠깐을 제외하고는 시종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를 고집한 역대 정권에서 실세형 총리는 내가 보기에는 YS 말기 이회창과 노무현 치하 이해찬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 중에서도 이회창은 대통령 권위에 도전하다가 몇달만에 목이 달아났고, 이해찬은 절대적인 대통령 지지를 등에 업고는 이 대통령제에서 총리가 어떤 권능을 지닐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기타 우수마발 총리는 이른바 꿔다놓은 보릿자루요, 그래서 심성 좋은 할배 천지였고, 출신으로 보면 전직 교수가 그리 많다. 현승종 총리 역시 그에 딱 맞는 사람이었다. 나는 현 총리와는 개인 인연이 거의 없었지만, 여러 모로 풍기는 면모가 그러했고, 실제 3.1절 특집 인터뷰를 통해 만난 실제의 그 역시 그냥 맘씨 좋고 풍채 좋은 할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생색내기용 총리로는 안성맞춤인 형이었다. 


총리에서 물러난 1993년, 그에게 건국대 이사장 자리가 돌아온다. 당시 건국대는 만신창이였다. 부정입학 사건에 휘말려 한양대와 더불어 쑥대밭이 나다시피 한 것이다. 이해에 일어난 부정입학 사건은 내가 기자 사회에 발을 딛자마자 그에 휘말려 그 일선 현장에 투입되었으니, 이 일에 대해서도 훗날 별도 자리를 마련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건국대학교. 2015년 가을



3.1절 80주년인 1999년 그는 건국대 이사장이었기에 이 학교 홍보실을 통해 기별을 넣었다. 이런저런 전차로 이사장님을 인터뷰하고자 한다는 취지였다. 이내 홍보실에서 연락이 왔다.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이사장실은 건국대 캠퍼스에 있었다. 그리하여 약속한 날 나는 사진기 하나 들고 기자수첩 하나 들고는 그를 만나러 건국대 이사장실을 찾아갔다. 


인터뷰는 대략 2시간가량 되었다고 기억한다. 당시 음료수로 무엇을 내놓았는지 기억에는 없으나, 건국대우유는 아니었다는 사실만은 확실히 기억한다. 


그러고 보니 매일유업 말고 우유는 건국대 우유랑 연세우유랑, 왜 대학 우유가 판을 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건국대야 농대가 전통이 있으니깐 그렇다 치고, 내 모교는 소랑 무슨 관계가 있기에 우유사업을 한단 말인가? 이 의문은 아직도 풀지 못했다. 


건국대 상징 황소상. 1971년 김경승 작품이다. 이 대학 농대 출신 홍서범이 대학 재학시에 만든 밴드인지 그룹 이름이 '옥슨79'인 까닭은 바로 이 황소상에서 비롯한다.



아무튼 일감호를 전면에 둔 황소상을 뒤로하고는 이사장실로 그를 만나러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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