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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살 되셨다는 자금성紫禁城

by taeshik.kim 2020.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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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통통] '축구장 72배' 중국 자존심 자금성 600살 됐다
송고시간 2020-10-22 07:33 
심재훈 기자
20만명 동원·15년 걸려 1420년 완성…'자금성 건립 600주년' 전시회
자금성 조감도·사진에 국새 등 다양한 자료 전시해 관람객 문전성시

 

 

 

[차이나통통] '축구장 72배' 중국 자존심 자금성 600살 됐다 | 연합뉴스

[차이나통통] '축구장 72배' 중국 자존심 자금성 600살 됐다, 심재훈기자, 국제뉴스 (송고시간 2020-10-22 07:33)

www.yna.co.kr

 

자금성紫禁城은 영어로는 흔히 the Forbidden City 라 옮김하거니와, 이에서 Forbidden은 紫와 禁 중에서도 후자에 초점을 둔 것이다. 일반인은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데라는 뜻이다. 

 

이 자금성은 실은 자궁紫宮과 금궐禁闕을 합친 말이어니와, 이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만든 말이다. 금궐禁闕이란 말할 것도 없이 출입이 금지된 궁궐이라는 뜻이겠거니와, 그렇다면 紫宮이란 무엇인가? 

 

자금성

 

누차 말했듯이 紫宮은 천상 세계를 지배하는 최고신인 천황대제天皇大帝가 사는 궁전 구역을 말한다. 당 현종 시대에 황자皇子들 교육을 위해 쓴 《초학기初學記》라는 문헌 권 제1 천부상天部上 천天 제1第一 서사敘事를 보건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오성통의五經通義》라는 문헌을 인용해 이르기를 

 

천신天神 중에서도 큰 분을 일러 호천상제昊天上帝라 한다. [天神之大者曰昊天上帝] 

 

하면서 그것을 주석하기를

 

곧 요백보耀魄寶를 말한다. 달리 천황대제天皇大帝라 하기도 하고, 태일太一이라고도 한다. [卽耀魄寶也;亦曰天皇大帝,亦曰太一.]

 

고 했거니와 

 

자금성

 

이에서 천황대제라는 말을 본다. 약칭 천황天皇이라고도 하는 이 천신은 밤하늘을 수놓는 무수한 별 중에서도 오직 돌지 않고 제자리를 지킨다고 간주한 북극성北極星을 신격화한 것으로, 그것이 내는 빛깔이 자색紫色으로 간주된 까닭에 그런 북극성 주변 일대 궁전을 지상의 궁전에 해당하는 구역으로 설정하면서 이름하기를 자궁紫宮이라 한 것이다. 

 

자색은 공자가 증오했다. 그것은 순색이며 원색인 주색朱色을 어지럽히는 잡색雜色 혹은 간색間色이라 그리 규정했지만, 공자가 버린 자색을 공자를 계승한다고 자처한 황제들이 독점했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몽고족이 건국한 元 왕조를 마침내 타도하고 明을 대체한 주원장朱元璋이 선택한 새로운 도읍은 남경南京이었다. 하지만 후계자 잘못 고르는 바람에 그의 사후 벌어진 내전에서 그의 넷째아들 주제朱棣가 마침내 승리를 거머쥐니, 이가 바로 명조 3대 황제 성조成祖 영락제永樂帝(재위 1402~1424)라

 

자금성

 

그가 황자 시절 분봉받은 땅이 바로 연燕이었으니, 이곳은 저 아득한 주나라 시절에 문왕文王의 아들이면서 무왕武王과 주공周公 단旦의 동생인 소공召公 석奭이 분봉되었을 적에 그런 이름을 얻은 데서 비롯해서 이후 죽죽 지금의 북경 일대에 터잡은 제후국들은 연국燕國이라 칭하거니와 

 

바로 이에서 아버지가 지금의 북경 일대 땅을 주면서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해서 던져준 땅을 냅다 받고는 호시탐탐 제위를 노린 이가 주체다. 그런 주체가 마침내 권력투쟁에서 승리하고는 새로운 연호로 영락永樂을 선택하고 나아가 새로운 도읍으로 그가 분봉 받은 연경燕京을 확정하니, 이렇게 해서 이후 중국은 올해까지 내리 600년간이나 북경 시대를 개막한다.  

 

자금성 600주년 특별전

 

《명사明史》 권6 본기本紀 제6 성조成祖 2에 의하면, 영락永樂 4년 윤월閏月(이해 윤달은 가을 7~8월 사이에 있었다) 임술壬戌에 영락제는 이런 조칙을 내린다. 

 

詔以明年五月建北京宮殿,分遣大臣採木於四川、湖廣、江西、浙江、山西。

 

황제가 조칙을 내리기를 '내년 5월에 북경 궁전北京宮殿을 세울 예정이니 대신들을 사천四川、호광湖廣、강서江西、절강浙江、산서山西로 나누어 보내어 벌목토록 하라'고 했다. 

 

이것이 자금성 착공 계획을 알린 팡파르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공사는 동 18년 겨울 12월에 공식 낙성을 보게 되거니와, 동 권7 본기 제7 성조成祖 3을 보거니와, 이해 9월 정해丁亥일에 조칙하여 이듬해에 경사京師를 고쳐서 남경南京이라 하고, 북경北京을 경사京師로 삼겠다고 한 데 이어 겨울 11월 무진戊辰일에는 북경으로 천도하겠다고 공식 선언한다. 이를 발판으로

 

十二月己未,皇太子及皇太孫至北京。癸亥,北京郊廟宮殿成。

 

12월 기미일에 황태자와 황태손이 (먼저) 북경으로 가고, 계해癸亥일에 북경의 교묘郊廟[종묘를 말하는 듯-인용자]와 궁성宮殿이 낙성했다.

 

는 언급으로 발전한다. 

 

자금성 600주년 특별전에 나온 청기와 

 

이렇게 해서 탄생한 자금성은 현재는 흔히 북경고궁北京故宮이라 해서 전체를 사적과 박물관을 겸한 시설로 바꿨거니와 그 시건始建은 영락永樂 4년(1406)이라, 대역사는 같은 영락 18년(1420)에 낙성落成을 본다. 물론 현재 남은 자금성은 그때의 그것이 아니다. 대부분은 청대 건축물이다. 전체 면적은 72만평, 건축면적은 대략 15만평이다. 

 

자금성은 그 긴 역사만큼이나 영광만이 아니라 갖은 치욕을 다 맛봤다. 궁전이라는 지위를 내려놓은 지금이 어쩌면 가장 편안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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