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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The 2nd Excavation of Seobongsa Temple Site, Yongin, 2014 / 용인 서봉사지 2차 발굴조사(2014년)

by taeshik.kim 2019.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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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서봉사지 2차 정밀발굴조사 학술자문회의 개최 / 龍仁瑞峰寺址第二次精密發掘調査 


□ 개최 계획

   ㅇ 일    시 : 2014년 11월 26일 오전 11시

   ㅇ 현장공개 : 2014년 11월 26일 오후 02시

   ㅇ 장    소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신봉동 산110번지 조사현장

   ㅇ 참석대상 : 자문위원 지건길ㆍ장경호ㆍ양정석

                (재)한백문화재연구원 ․ 용인시청 관계자 등

   ㅇ 회의안건 : 유적의 성격 및 향후 처리방안 등




□ 발굴 개요

   ㅇ 허가번호 : 제2014-0722호

   ㅇ 발굴사유 : 시굴조사에서 확인된 유구(건물지)의 성격 확인을 위하여 발굴조사를 실시함.

   ㅇ 허가받은 자 : 용인시청

   ㅇ 조사기간 : 2014. 09. 25 - 2014. 11. 26

   ㅇ 조사기관 : (재)한백문화재연구원

   ㅇ 조사범위 : 1,780㎡

   ㅇ 조사결과 : 2013년 1차 발굴조사를 실시한 추정 금당지를 중심으로 ‘□’자형의 건물지와 서편의 부속건물지가 총 10동 이상이 확인되었다. 건물지는 조사구역 외 북쪽과 동쪽으로 계속해서 연결되고 있다. 조사된 건물지는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일부 이전시기에 조성된 유구가 확인되기도 하였다. 유물은 조선시대 백자류와 기와류가 대부분이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특히 철제로 만든 창, 칼, 검, 화살촉 등의 무기류가 출토되어 주목된다.  




□ 발굴성과


용인 서봉사지는 고려 명종 15년(1185)에 세워진「서봉사 현오 국사 탑비 瑞峰寺玄悟國師塔碑」(보물 제9호)가 남아있는 곳으로 조선 태종대에는 천태종의 자복사(資福寺)로 지정되었을 정도로 유명한 사찰이었으며, 19세기경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용인시는 서봉사의 종합정비계획을 위해 2009년에는 지표조사를 의뢰하였고, 조사결과 중원 외에 동원, 서원이 추가로 확인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2012년에는 종합정비기본계획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용인시는 종합정비계획에 대한 일환으로 2013년에는 서봉사지 사역 중 중원에 대한 시굴조사를 공개경쟁입찰로 공고하였고, 낙찰자로 선정된 한백문화재연구원에서 시굴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중원에 대한 시굴조사 결과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유적이 확인되었으며, 이 후 실시된 1차 정밀발굴조사를 통해 금당지로 추정되는 건물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추정 금당지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전체 규모는 동서가 14.8~16.5m, 남북이 10.5~10.7m이었다. 건물은 기단과 초석 및 적심, 그리고 초석 사이에 조성된 하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추정 금당지의 내부와 기단 주변에서는 막새기와를 비롯하여 다량의 평기와와 기와 지붕에 장식으로 사용된 백자연봉, 그리고 여러 기종의 자기편, 토기편, 철제못 등이 출토되었다. 또한 석조여래좌상으로 추정되는 석불편과 나발로 추정되는 토제품 등도 출토되었다.  




이번 2차 발굴조사에서는 추정 금당지를 중심으로 ‘□’자형의 건물지와 서편의 부속건물지가 총 10여동 이상이 확인되었다. 조사된 건물지는 대부분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조사지역 전역으로는 기와퇴적층과 소토층이 전면적으로 확인되어 화재로 인해 전소된 후 재건하면서 일부 개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초축과 관련하여서는 일부 석렬 및 적심 등의 유구가 극히 소량 잔존하여 명확치 않다. 다만 일부 서편의 부속 건물지 하부에서 고려시대 전기로 추정되는 연화문 수막새와 초문 암막새, 어골문 평기와 등이 출토되어 참고가 된다.




‘□’자형의 건물지의 배치는 추정 금당지 좌·우에 남향의 장방형 건물지가 위치하고, 그 남쪽으로 중정을 마주보는 동서향의 장방형 건물지가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전면으로는 진입계단을 포함하는 남향의 누문(樓門)형태의 건물지가 자리하여 다소 폐쇄적인 건물지 형태이다. 그 외 요사채로 추정되는 서편의 부속 건물지 역시 최소 2~3차례의 개축이 있었으며, 매우 밀집된 배치를 보여준다.


기존의 지표조사에서 확인되었던 팔각대좌는 하부조사결과 조선시대 구들 건물지가 확인되어 폐사된 이후에 옮겨놓은 것으로 판단되었다. 부도 및 석등과 관련된 유구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되지 않았다. 




출토유물 중 중정의 기와퇴적층 하부에서는 ‘嘉靖三十二年’銘(명종 8년, 1553년) 막새가 출토되어 건물지의 전소가 이 후에 발생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밖에 건물지의 곳곳으로 철제 화살촉, 창, 칼 등의 무기류가 출토되어 주목된다. 문헌에 의하면 임진왜란 당시 광교산 일대에서 치열한 전투가 있었으며, 용인 서봉사도 예외가 아니었음이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이번 조사를 통해 확인된 잔존 건물지는 임진왜란으로 인해 전소되었던 역사의 현장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서봉사가 당시 불교계의 큰 위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호국의 기능을 겸하였던 매우 중요한 사찰이었음을 증명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용인 서봉사지 2차 정밀발굴조사 현장설명회 개최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호국불교사찰의 실체를 접근-


용인 서봉사지는 고려 명종 15년(1185년)에 세워진「瑞峰寺玄悟國師塔碑」(보물 제9호)가 남아있는 곳으로 조선 태종대에는 천태종의 자복사(資福寺)로 지정되었을 정도로 유명한 사찰이었으며, 19세기경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용인시는 서봉사지의 종합정비계획을 위해 2009년에는 지표조사(수원대학교박물관)를 실시하였고, 조사결과 크게 중원을 비롯한 동·서원의 세 영역이 확인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2012년에는 종합정비기본계획 보고서(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를 발간하였고, 이듬해 2013년에는 중원에 대한 시굴조사((재)한백문화재연구원)가 실시된 바 있다. 


백자장기와 명문백자



중원에 대한 시굴조사 결과,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유적이 확인되었다. 계속해서 실시된 1차 정밀발굴조사를 통해 금당지로 추정되는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추정 금당지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전체 규모는 동서가 14.8~16.5m, 남북이 10.5~10.7m로, 크게3차례에 걸쳐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추정 금당지의 내부와 기단 주변에서는 막새기와를 비롯하여 다량의 평기와와 기와 지붕에 장식으로 사용된 백자연봉 등이 출토되어, 상당히 격조 높은 건물이었음이 밝혀졌다. 또한 석조여래좌상으로 추정되는 석불편과 나발로 추정되는 토제품 등도 출토되었고, 이 중 석불편은 출토 상황으로 볼 때 왜적의 침입에 의해 인위적으로 파손되었을 것으로 추정된 바 있어 이번 2차 발굴조사의 성과와 일맥상통한다. 


건물배치양상



이번 2차 발굴조사에서는 지난해 2013년 조사된 추정 금당지를 중심으로 한 주변 건물지의 연차발굴로서 건물지의 규모 및 현황, 사역의 변화양상 등을 파악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조사결과, 추정 금당지를 중심으로 ‘□’자형의 건물지와 서편의 부속건물지가 총 10여동 이상이 확인되었다. 조사된 건물지는 대부분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조사지역 전역으로는 기와퇴적층과 소토층이 전면적으로 확인되어 화재로 인해 전소된 후 재건하면서 일부 개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초축과 관련하여서는 일부 석렬 및 적심 등의 유구가 극히 소량 잔존하여 명확치 않으나, 일부 서편의 부속 건물지 하부에서 고려시대 전기로 추정되는 연화문 수막새와 초문 암막새, 어골문 평기와 등이 출토되어 참고가 된다.


불상 일부로 보이는 석조물 파편



‘□’자형의 건물지의 배치는 추정 금당지 좌·우에 남향의 장방형 건물지가 위치하고, 그 남쪽으로 안마당을 마주보는 동서향의 장방형 건물지가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전면으로는 진입계단을 포함하는 남향의 누문(樓門)형태의 건물지가 자리하여 다소 폐쇄적인 건물지 형태이다. 그 외 요사채로 추정되는 서편의 부속 건물지 역시 최소 2~3차례의 개축이 있었으며, 매우 밀집된 배치를 보여준다. 


출토유물 중 안마당의 기와퇴적층 하부에서는 ‘嘉靖三十二年’銘(명종 8년, 1553년) 막새가 출토되어 건물지의 전소가 그 이 후에 발생되었고, 그 밖에 건물지의 곳곳으로 철제 화살촉, 창, 칼 등의 무기류가 출토되어, 문헌에 보이는 임진왜란 당시 광교산 일대에서 벌어진 치열한 전투가 용인 서봉사지에 역사적 실체로 잔존하고 있음을 밝혀준다. 


ㅁ자형 건물



이는 서봉사가 당시 불교계의 큰 위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호국의 기능을 겸하였던 매우 중요한 사찰이었음을 고증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이외에 출토된 백자장기알(將)은 스님의 여가생활을 즐기던 모습도 상상해 볼 수 있는 서봉사지의 또 다른 일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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