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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경주 꺽다리 이채경 회고록》(6) 경주시 황남동 376번지 단독주택 신축부지 발굴조사와 행정소송

by taeshik.kim 2022.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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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7월 건축과로부터 경주시 황남동 376번지에 경주시 서악동에 거주하는 정인환 씨의 건축허가신청에 따른 부서별 업무협의서류가 문화과에 접수되었다.

이에 우리과에는 사적 제40호 경주 황남리고분군, 사적 제161호 경주 동부사적지대, 사적 제 246호 경주 재매정, 사적 제19호 경주 계림, 사적 제188호 경주 나물왕릉 등 많은 문화유적이 주변에 집중 분포하고 있어 매장문화재가 확인될 가능성이 많을 것으로 판단하고 건축공사를 착공하기 전에 사전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조치토록 하는 조건을 부여하여 회신하였다. 이에 따라 건축과에서는 9월에 조건부 건축허가를 내주었다.

 

<황남동 376번지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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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주는 발굴조사기관을 구하기까지 난항을 겪다가 다음해 2월에야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박물관에 조사를 의뢰하게 되었고 문화재관리국 발굴허가를 받아 3월 28일부터 6월 30일까지 문화재보호법 제44조와 제74조에 의하여 사업시행자 비용부담으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발굴조사의 과정에서 건축주는 끊임없이 민원을 제기하였고 발굴경비조차 제대로 정산하지 않아서 결국 발굴기관이 많은 부담을 떠안은 조사가 되었다.

 



조사결과 4개층으로 중첩된 문화층에서 수혈(竪穴) 4기, 노(爐) 3기, 구(溝) 1기, 석조우물(石造井) 2기, 항아리우물(甕造井) 1기, 적심(積心) 2기, 담장(垣墻) 1기, 목주열(木柱列)과 목책유구(木柵遺構) 1개소, 집석유구(集石遺構) 1개소, 석곽형 유구(石槨形 遺構) 1개소 등 대체로 생활유적 유구가 확인되었다.

출토유물로는 통일신라시대 토기류(土器類)로는 단각고배(短脚高杯), 개(蓋), 완(盌), 대부완(臺附盌), 파수부배(把手附杯), 단경호(短頸壺), 장경호(長頸壺), 병형호(甁形壺), 발(鉢), 파수부옹(把手附甕), 편구호(扁球壺), 옹(甕), 시루(甑) 등이 있는데 대개 인화문(印花文)이 시문되어있고 향비파형 토우도 1점이 수습되었다.

광물에서 광석을 가려내거나 금속, 유리 등을 용해하는데 쓰이는 용기인 도가니류로는 구리도가니 6점과 유리도가니 3점이 있다.

옥석제품으로는 곡옥(曲玉) 1점, 물건의 무게를 측정하는데 사용되는 저울추인 활석제 석추(滑石製 石錘) 6점, 활석제 인장(印章) 1점, 숫돌 6점이 수습되었다.

목조 제품으로는 목간(木簡) 4점과 빗 5점, 목침(木針) 1점, 용도불명의 목제품 7점, 원반형 굴피기 1점, 목주(木柱) 7점, 짚신 2점 등이 있다.

 



와전류로는 당초문 전편(唐草文塼片) 1점, 수키와 3점, 연화문 수막새 2점이 있다.

금속제품으로는 환형철기(環形鐵器) 1점, 봉상철기(棒狀鐵器) 1점, 철도자(鐵刀子) 3점, 철촉(鐵鏃) 1점, 철제수각편(鐵製獸脚片) 1점, 청동제 귀면금구판(鬼面金具板) 1점, 청동제 환병(丸柄) 1점, 용도미상의 청동제유물 1점이 있다.

또한 용도미상의 골각제품 5이 있다. 동물유체로는 소뼈 5점, 사슴뼈 2점, 개뼈 3점, 말뼈 1점, 돼지뼈 1점, 멧돼지뼈 1점이 수습되었다.

이러한 발굴성과를 담은 발굴조사보고서는 건축주가 발굴비용을 제대로 정산하지 않아서 많은 어려움을 겪다가 2002년 6월 15일자로 『慶州 皇南洞 376 統一新羅時代 遺蹟』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나왔다.

발굴조사가 마무리되고 지도위원회에서 유적이 입지한 위치와 목간의 내용, 구리와 유리도가니의 존재, 특히 그동안 유리는 대개 수입품으로 알고 있었는데 자체 제작하였다는 증거물이 확인된 점 등을 고려하여 유적을 현지에 보존조치토록 하였고

문화재위원회에서 문화재보호법 제 44조 제3항(③제1항 단서의 규정에 의하여 허가를 받은 자가 그 발굴을 완료한 때에는 지체없이 그 결과를 문화체육부장관에게 신고하여야 하며, 신고를 받은 문화체육부장관은 발굴된 문화재의 보존ㆍ관리등에 필요한 사항을 지시할 수 있다.<개정 1989ㆍ12ㆍ30, 1993ㆍ3ㆍ6>)에 의거 보존조치가 의결되어 조치사항이 공문으로 하달되었고 그에 따라 경주시에서는 조건부허가되었던 건축허가를 취소하였다.

이 처분에 건축주는 크게 반발하고 경주시장을 상대로 ”건축허가사항 취소 불허가처분 취소소송“이라는 제목의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

건축과에서는 이 사건은 문화재 발굴결과로 인하여 부득이 건축허가를 취소한 것이므로 소송담당을 문화과에서 맡아야 한다고 하였고 결국 그렇게 되었다.

소송을 제기한 건축주를 만나 이 건은 문화재 발굴결과에 따라 문화재관리국에서 결정한 것이므로 책임소재가 문화재관리국이니 소송을 하려면 경주시가 아니라 문화재관리국을 상대로 하여야 한다고 설명하였으나 건축주는 막무가내로 조건부로 건축허가되어 조건을 이행하였는데 건축허가를 취소한 것이니 경주시의 책임이 아니냐고 맞섰다.

그러면서 소송에서 반드시 이길 자신이 있다고 큰 소리를 뻥뻥쳤다. 더 이상 대화가 되지 않아서 그대로 소송을 진행하였다.

소송답변서를 작성하기 위해 원고가 제출한 소장을 읽어보니 나름 대구의 유명한 김모 변호사를 선임하여 작성한 것이었는데 명색이 변호사가 작성한 소장이라는 것이 법리적으로 다투는 내용은 거의 없고 원고의 억울하다는 하소연만 구구절절이 나열한 내용 뿐이었다.

 



속으로 생각하기를 ‘변호사가 이러고도 변호사비를 받아먹는구나’ 라는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심혈을 기울여 소송답변서를 작성하여 계장, 과장, 국장까지 내부결재를 받아서 경주시 고문변호사에게 가져다 보이면서 자세하게 지금까지의 경과를 설명하였더니 원고의 소장과 경주시의 답변서를 읽어보고는 하는 말이 ‘이건 소송꺼리도 안 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하더니 답변서를 한 줄만 쓰고 끝내는데 ‘경주시장이 건축허가를 취소한 사실만 인정하고 나머지는 모두 부인합니다.’라고 하였다.

한편으로는 기가 막히고 놀라워서 ‘이래도 되는 겁니까?’ 라고 하였더니 ‘하하 걱정마시라니까요.’ 라고 하였다.

행정소송은 1심이 고법부터이다. 대구고등법원에서 열린 1심 판결에서 ‘현행법에 명시된 조항에 따라 적법 조치한 것이므로 원고의 소송은 이유없음’으로 원고 패소 판결이 되면서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하라고 결정되었다.

원고는 판결에 불복하고 대법원에 상고하였으나 상고심절차에관한특례법 제4조 제3항 1호(1. 그 주장 자체로 보아 이유가 없는 때) 및 2호(2. 원심판결과 관계가 없거나 원심판결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는 때)에 의거 곧바로 기각되었다.

이후 이 토지는 1997년 9월 30일에 수원시 팔달구에 사는 노모 씨로 소유권이 바뀌었고, 2003년 5월 1일에 사적 제40호 경주 황남리고분군 보호구역으로 추가지정되었으며, 2006년 7월 19일에 경주시에 사는 송모 씨로 다시 소유권이 바뀌었다가 2009년 3월 11일에 경주시의 사적 제40호 경주 황남리고분군 정비사업에 보상편입되어 경주시 소유 공유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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