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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난중일기》 vs. 《징비록》

by taeshik.kim 2020.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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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난중일기亂中日記》엔 임진왜란이 없다. 왜적과 쌈질했단 말은 가끔, 아주 가끔 보이지만 임란에 관한 직접 증언은 없다. 《난중일기》는 서애西厓 찬양록이다.

서애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이 질펀한 스펀지를 밟았을 때 스며나는 물만 같다. 《난중일기》엔 서애의 반대편에 위치한 자들에 대한 비난이 자리한다. 그래서일까? 서애도 답례를 해야 했다.

 

 

난중일기 초고


중앙 정계에서 밀려나 고향 안동으로 내려간 서애는 책 하나를 쓴다. 《징비록懲毖錄》이다. 징비懲毖..지난 일을 경계하고 앞날을 대비한다는 뜻이다. 서애는 참회하는 마음으로 쓴다 했다. 하지만 이에는 그 자신의 실책은 전연 없다. 오직 나는 국가와 왕을 위해 동분서주했는데 간적들 때문에 나라가 누란에 처했다 했다. 이 간적의 중심에는 죽고 없는 율곡도 있다.

그의 칼날에 같은 안동 출신이요 같은 퇴계 문하동기동창생으로 일본은 침략 우려가 없다 보고한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도 우국하는 마음에 일부러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추숭된다. 그러면서 서애는 난리에서 구출한 순신 리를 다름 아닌 내가 파격발탁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한다.

 

 

징비록



《징비록》은 이순신 열전이다. 보잘것 없는 촌놈을 비상히 보아 내가 모든 반대를 무릅쓰고 뽑았노라 말하고 그의 최후를 장렬하게 전한다. 《난중일기》에 대한 답론이 《징비록》이다.

《난중일기》와 《징비록》.


그것은 이후 전개될 죽고 없는 두 귀신, 퇴계와 율곡의 기나길며 피비린내나는 당쟁의 서곡이었다.

(2017. 10. 14)

 

***

 

 

난중일기

 

이순신과 류성룡은 주고받았다. 믿음에 대한 답례였다. 

 

《난중일기》와 《징비록》은 철저한 당쟁의 시각이다. 두 텍스트를 읽을 적에 이 당파성을 잃어버리면 오직 국가와 신민을 위해 이 한 몸 바친 충신열전만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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