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문화 이모저모

《사기史記》 vs. 《한서漢書》, 그 우위론에 대한 비판

by taeshik.kim 2020. 2. 17.
반응형

동아시아 학문의 특징은 주소注疏에 있다. 注疏주소란 注와 疏를 병렬로 합치한 합성어라, 注(주)란 물을 댄다는 뜻이라, 메마른 땅에다가 물을 대서 적셔주는 행위라, 본문 그 자체로는 문리가 통하지 않거나, 뻑뻑한 곳에다가 기름칠을 하는 행위다. 疏(소)란 막힌 데는 뚫어준다는 뜻이다. 요건대 注疏는 그 어떤 것이나, 막힌 텍스트를 뚫어주는 일이다. 한데 이 말이 텍스트에 적용될 적에는 1차 해설과 2차 해설을 의미한다. 어떤 원전이 있어 그것이 어떤 이유로 본문 이해가 쉽지 않을 적에 누군가가 그 해석을 시도한다. 이를 注라 한다. 한데 시간이 흘러 이 注 역시 이제는 이해가 쉽지 않다. 그래서 그 注까지도 다시 해설을 시도한다. 이것을 疏라 한다. 이 《수경주소水經注疏》 역시, 아마 정확한 편찬 시점과 편찬자를 알지 못하나, 대략 한대漢代에 완성된 《수경水經》이라는 책에다가 후대에 주소를 붙여 이룩된 책이다. 주는 북위시대 사람 역도원酈道元(466?~527) 저술이고, 그것을 다시 해설한 소를 완성한 사람은 근대인 양수경楊守敬이다. 이런 주소를 통해 한 줌에 지나지 않는 원전은 한없이 부피를 늘려가게 된다.



비교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 《사기史記》와 《한서漢書》를 견주는 이가 제법이다. 국내 시중에는 일본의 어느 저명한 중국사학사가의 이런 책이 번역돼 있기도 하다. 이 책을 보면 《한서》가 《사기》에 견주어 적어도 당대 이전에는 인기가 있었다 하면서 그 증거로 역대 주석서로 《한서》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을 든다.



《수경주소水經注疏》 본문 일부. 고딕체 한 줄 글씨가 북위시대 역도원酈道元(466?~527)이 흔적이고, 그런 한 줄에 두 줄짜리로 붙은 작은 글씨가 그것을 해설한 근대인 양수경楊守敬 작품이다.



이 논리 언뜻 보면 그럴듯하다. 사람들이 많이 찾으므로 자연 주석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니 주석이 많은 까닭은 실은 원전이 개떡 같은 데서 유래하는 일이 많다. 실제 《사기》와 《한서》의 문장을 비교하면 후자가 지랄이다. 전자는 웬만한 학식만 갖추면 술술 읽힌다. 


《수경주소水經注疏》 본문 일부. 고딕체 한 줄 글씨가 북위시대 역도원酈道元(466?~527)이 흔적이고, 그런 한 줄에 두 줄짜리로 붙은 작은 글씨가 그것을 해설한 근대인 양수경楊守敬 작품이다.



요는 《사기》에 비해 《한서》가 압도적으로 주석이 많은 까닭은 원전의 결함성에서 기인하지 독자의 숫자에서 기인하는것은 결코 아니다. (February 17, 2013) 


****


앞에서 나는 해설 자료 중 하나로 《수경주소水經注疏》 를 들었거니와, 저 텍스트만 해도 다음 세 가지 층위가 있으니


1. 《수경水經》 : 편찬연대, 편찬자 모름. 대략 한나라 무렵에 나온 것으로 추정

2. 《수경주水經注》 : 북위시대 역도원 저, 《수경水經》을 역도원이 해설한 저술 

3. 《수경주소水經注疏》 : 역도원의 《수경주水經注》를 해설한 저술 


이런 주소가 많아지는 까닭은 1. 시간 2. 공간 이 두 원인이 크다. 


먼저 시간이 흘러 옛날 사람이 사용한 말 뜻을 잃어버리거나 바뀌는 일이 허다하다. 그래서 이런 말들은 당대 사람들이 이해할 단어나 어구로 바꿔줘야 한다. 이에서 주소가 등장한다. 


두번째로 공간의 문제가 있으니, 예컨대 저런 텍스트가 한반도로 치고 들어오면, 이해가 더 어렵다. 그래서 해설이 필요하다. 같은 중국대륙이라도 오죽이나 넓은가? 해설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주소注疏란 무엇인가?


번역이다. 


번역을 협소한 뜻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