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문화 이모저모

《신라 seven kings論》(4) 한문을 이두로 해석하는 코미디

by taeshik.kim 2018. 7. 29.
반응형

<영일 냉수리 신라비 윗면>


울진 봉평 신라비나 영일 냉수리 신라비나 모조리 가릴 것 없이 그에 적힌 문장은 한문이다. 거기에 신라식 요소가 보인다 해도, 근간은 한문임은 하늘이 두쪽나도 변할 수 없다. 한문에서 'A等'이라고 하면, 말할 것도 없이 'A와 기타등등'이라는 뜻이다. 이건 천자문만 해도 아는 구문론이다. 


냉수리비에서 보이는 '此七王等'은 이들 일곱 왕과 기타등등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왕이 일곱이 아니냐, 그러니 일곱 왕과 기타 등등이 아니냐 하겠지만, 이들 일곱이 누구인지는 그 바로 앞에 나온다. 그들 중 (갈문)王을 冠稱한 이는 오직 한 명 뿐이다. 나머지는 그 아래에 포진한 신하들이다. 그래서 '갈문왕과 기타등등'이라 한 것이다.


같은 냉수리비에서는 이와 똑같은 구문이 무려 세 군데 네 군데나 나온다. 그래 너희 말대로 일곱 왕들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같은 논리로 같은 비문에 보이는 앞선 시대 두 임금인 '전세이왕前世二王'은 '前世二王等'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 그렇다면 같은 논리로 같은 비문에 보이는 앞에서 말하는 두 사람을 의미하는 '此二人'은 '此二人等'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 그렇다면 같은 논리로 같은 비문에 보이는 앞에서 말하는 일곱사람을 의미하는 '此七人'은 '此七人等'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 하지만 같은 비문에서 '前世二王 / 此二人 / 此七人'으로 각각 등장한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같은 비문에 같은 구문이 보이는데도 저따위 억지를 부리는 이가 아직도 있다. 


나는 냉수리비문이 한문이라 했다. 그럼에도 엉뚱하게도 等을 기타등등이 아니라 복수를 의미하는 '들'에 대한 이두적인 쓰임으로 보고자 하는 욕망이 그득하다. 이는 또 무슨 망발인가? 이는 말할 것도 없이 국어학의 부당한 개입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국어학자들은 等만 보면 들이 아닌가 의심한다. 국어학이 이룩한 성과가 다대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끼친 패악 역시 막대하기만 하다.


무슨 한문을 이두로 해석한다는 말인가? 지증왕시대에는 존재하지도 않은 이두로 한문을 해석하는 코미디가 일어난다.


호응이다. 성문기초영어만 봐도 나오는 호응이다.


<영일 냉수리 신라비 뒷면>


그럼에도 저런 억지 해석에 바탕을 두고서는 지증왕 무렵에 신라에는 동시에 왕이 일곱이 있었다는 주장이 한때 요원의 불길처럼 일었다. 그것이 고사직전인 지금에는 할 수 없이 갈문왕과 기타등등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이면서도 저것 아니라도 당시 신라에서 왕은 변변찮은 위상을 지닌 존재였다는 주장이 여전히 횡행하다.


king과 kingship도 구분하지 못하는 신라사학계다. king과 kingship은 구별할 줄 아는가? 특정한 king이 여러 이유로 그 권력이 빈껍데기 같을 수는 있을지언정 그 자리가 주는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이 권위를 둘러싼 절대의 제반을 바로 kingship이라 한다.


king과 kingship을 혼동할 수는 없다. 혼동하면 역사학 그만둬야 한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