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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 & 漢文&漢文法

가을산불 같은 철쭉

by taeshik.kim 2018.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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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8)


감흥 절구[遣懷絶句] 넷째 수(其四) 


[明] 고린(顧璘, 1476~1545) / 김영문 選譯評 


계곡물 차가운데

창포 푸르고


산속에 봄이 와서

철쭉 붉었네


봄풀은 가을끝 산불인가

깜짝 놀라고


나무들도 한밤 바람

싫어한다네


澗冷菖蒲翠, 山春躑躅紅. 草驚秋盡火, 樹厭夜深風.




나 어릴 때는 진달래를 참꽃, 철쭉을 개참꽃이라 불렀다. 제일 중요한 차이는 참꽃은 먹을 수 있고, 개참꽃은 먹을 수 없다는 점이다. 옛날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사실이기에 호기심 많은 어린 시절에도 감히 개참꽃을 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꼴을 하러 다니며 소가 먹을 수 있는 풀과 먹을 수 없는 풀을 구별하면서 자랐으므로 개참꽃을 사람이 먹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개참꽃을 왜 먹어서는 안 되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이제 참꽃이 지고 개참꽃이 필 때다. 


개참꽃은 이 시 묘사처럼 가을 산불처럼 붉지 않다. 참꽃보다 색깔이 연해서 묽은 분홍색에 가깝다. 하지만 신록이 짙어가는 봄 산에 핀 철쭉은 초록색 초목을 배경으로 피므로 분홍색이 매우 돋보인다. 이 때문에 봄산에 만발한 분홍색 철쭉을 보고 이제 겨우 묵은 풀더미에서 싹을 내민 야초(野草)가 지난 늦가을 온 산천의 초목을 태운 산불이 아닌가 깜짝 놀란다고 표현한 것이다. 야초 주위의 나무들도 마찬가지다. 밤이 깊어 바람이 세차게 불면 개참꽃의 불똥이 나무에 옮겨 붙을까 염려하는 것이 당연하다. 어쩌면 신록을 배경으로 분홍색 꽃불을 뽐내는 철쭉을 풀과 나무가 시샘하는 듯도 하다. 


5월 중순 이후에는 우리 명산 곳곳에 철쭉이 만발한다. 나는 그중에서도 지리산 세석평전 철쭉을 최고로 친다. 대체로 5월 하순에서 6월 초순까지 이어진다. 세석평전은 영신봉과 촛대봉 사이에 펼쳐진 완만한 고원 평전이다. 높이는 거의 해발 1700미터 가깝다. 고원지대 운무 속에 핀 철쭉은 정말 신선세계를 방불케 한다. 거의 20년 가까이 가보지 못했다. 세석평전 철쭉이란 단어를 언급만 하고 있어도 젊은 시절 역마살이 되살아난다. 그립다. 


*** 개참꽃은 독이 있다. 그 독성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내가 어린시절에 목도했다. 진달래인 줄 잘못 알고 따먹은 동네 여동생이 죽다가 살아났다. 죽는다 했다. 그만큼 독성이 심각하다.(태식補) 


*** 작자 고린(顧璘, 1476~1545)은 字를 화옥(華玉), 號를 동교(東橋)라 하는 직예응천부(直隸应天府) 상원현(上元县) 사람이라, 이곳은 현재 남경시南京市다. 명나라 때 정치인으로 벼슬은 공부상서工部尚書에 이르렀다. 


명 헌종憲宗 성화成化 12년(1476)에 태어났으니, 조적祖籍은 소주蘇州 오현吳縣이라, 고조 고통顧通은 홍무洪武 연간에 소주에어 좌천되어 上元으로 옮겼다. 어릴 적에 재주가 있어 같은 마을 진기陳沂·왕위王韋와 병칭해서 “금릉삼준金陵三俊”이라 일컫기도 했는가 하면 보응寶應의 주응등과 더불어 4대가四大家로 불리기도 했다. 


홍치弘治 9년(1496) 진사進士가 되어 광평현지현廣平縣知縣에 제수되고, 정덕正德 4년(1509)에 지개봉부知開封府로 있다가 진수태감鎮守太監 廖堂、王宏忤와 불화해서 체포되어 금의옥錦衣獄에 갇혔다가 전주지주全州知州로 폄적되었다가 나중에 대주부지부台州府知府로 옮겼다. 


고린



이부우시랑吏部右侍郎이 되고 다시 공부工部로 가서 현릉顯陵 준공과 더불어 그 공로가 있다 해서 공부상서工部尚書가 승진하고 이어 남경형부상서南京刑部尚書를 역임했다. 


만년에 치사하고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식원息园을 세우고 빈객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니 빈자리가 없었다 한다. 


세상에서는 그를 일러 동교선생東橋先生이라 한다. 가정嘉靖 24년(1545)에 졸했다. 


《고옥화집顧華玉集》·《부상집浮湘集》·《식원시문고息園詩文稿》·《국보신편國寶新編》·《빙기집憑幾集》·《완동집緩慟集》·《근언近言》 같은 저서가 있다. (태식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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