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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강화 이규보 묘 江華 李奎報墓

by taeshik.kim 2020.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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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묘역 묘표다

 

 

이규보 묘 | 李奎報墓 Tomb of Yi Gyu-bo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5호
Incheon Monument No. 15

뒤쪽 묘역이 이규보 부부가 묻힌 합장분이다. 앞쪽은 여러 모로 보아 비슷한 시대 무덤임이 분명한데, 문제는 이곳에 묻힌 주인공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이규보 동족이 아닐까 짐작해 볼 뿐이다. 


고려의 문신이자 문장가인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1168~1241 묘소다. 고려 무신정권기에 활동한 문인으로 명종 20년( 1190)에 과거에 합격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에 올랐다. 시문에 능했다. 고구려 동명성왕 이야기를 서사시로 엮은 「동명왕편東明王篇」, 몽골군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천도하여 대장경을 조판할 때 지은 「대장경각판군신기고문大藏刻板君臣祈告文」을 남겼다. 이외에도 「백운소설白雲小說」, 「국선생전麴先生傳」 등 다수 저술이 있다. 그의 저술은 후손에 의해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으로 총정리가 이뤄졌다. 

 

이규보 부부 묘역 앞쪽 봉분인데,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석조각은 이규보 묘역의 그것과 일란성 쌍둥이를 방불한다. 문제는 이 세모 모양 석물이 석축단 좌우에 한 쌍이 있는데, 그 기능을 모르겠다. 다른 지역 모역에서도 본 듯하다. 

 

 

This is the Tomb of Yi Gyu-bo (1168-1241), a civil official and great writer of the Goryeo period (918–1392). He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190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As one of the most distinguished writers in Korean history, he left a number of literary works written in classical Chinese, including the Saga of King Dongmyeong, an epic poem about the legendary founding king of Goguryeo. 

이규보 묘역이다. 봉분 구역을 포함해 3단으로 조성한 점은 이 시대 특징이다. 그건 석축단으로 구분했다. 이 석축단은 석재들 마감질을 보니, 묘역 조성 당시의 그것으로 판단되거니와, 모서리를 깎아냈다. 석양 두 마리와 오른쪽 묘표를 묘역 조성 당시 것으로 보는데 나는 자신이 없다. 망주석과 상석 석등은 근래 만들어 갖다 놓은 것임은 대낮과 같이 환하다. 



In front of the tomb mound are a stone table, stone lantern, stone statues of two civil officials, and two stone pillars. In 1967, a ritual house near the tomb was reconstructed by Yi's descendants.

 

이상 국문과 영문 설명은 현지 안내판 설명 중 허탄하거나 표현이 개판인 대목은 지우고 내가 조금 다시 정리한 것이다. 

 

이 석양이 묘역 조성 당시 것인지 나는 자신을 못하겠다. 
이 묘표 역시 조성당시 것인지 나는 단안을 미룬다. 
봉분은 원형이다. 이 시대 전형적인 평면배치는 방형으로 아는데, 그래서 저 배치가 묘역 조성 당시 것인지, 아니면 후대 보수하면서 새로 붙인 것인지 자신이 없다. 

 

한국민족문화대백관 사전 기술은 다음과 같다. 

 

인천광역시 기념물 15호이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길직리에 있다. 묘는 단분으로 하단에 호석이 둘려쳐 있으며 봉분의 둘레는 16m, 높이는 1.8m이고, 묘 앞에 상석과 장명등이, 상석 좌우에는 망주석과 석양石羊 1쌍, 묘갈이 배치되어 있다. 묘 주변의 석물 중 문무석은 매우 고졸하여 당시 유풍을 알 수 있는 귀한 조각이며, 석양은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고려시기의 조각이다. 묘와 약간 떨어진 곳에 재실이 있다. 이규보는 벼슬이 집현전 대학사와 평장사에 이르렀으나 관운官運은 없었다. 북방민족에 시달리는 우리 민족의 기상을 고취시키고자 고구려 건국영웅 동명왕을 서사시로 읊은 「동명왕편東明王篇」을 지었고,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과 「백운소설白雲小說」 등을 비롯하여 이규보 전집 51권을 남긴 문장가이다. (집필 강진갑)

 

 

이건 조선시대인가 만들어 세운 새로운 묘표다. 뒤에 음기로 조성 내력이 있다. 
최근 뗏장을 새로 했다. 
석인인데, 이건 조성당시 것 같다. 
무신정권기 호석을 이리 돌리던가???? 동시대 고려왕릉 몇 군데가 같은 강화에 있는데 이런 식이었는지 아리까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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