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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개간, 산림파괴, 말라리아 (3)

by 초야잠필 2019.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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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연재의 이전 회는-. 


개간, 산림파괴, 말라리아 (1)

개간, 산림파괴, 말라리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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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회에 기생충 감염율이 높을때 우리는 그 나라의 저열한 위생상태를 원인으로 지적하기 쉽다. 


물론 어떤면에서는 그것이 옳다. 


하지만 단순히 열약한 위생상태의 개선이라는 부분보다 훨씬 포괄적인 면에서 기생충감염의 원인을 추적해야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기생충 감염률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이전 연재에서 우리는 조선시대 회충, 편충 감염의 경우 당시 사람들의 열악한 위생상태보다 인분을 작물 재배에 거름으로 이용하는 관행이 더 큰 문제가 된다는 것을 보았다. 




조선시대 밭에 거름을 시비하던 똥 거름 바가지 (농업박물관 장)



하지만 기생충감염이 흔해진다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 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도 쉽게 지력을 유지하여 매년 높은 농업 생산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면 인분 거름 사용의 유혹은 여전히 농부들에게 매우 큰 것이다. 



희귀하게 남은 조선시대 서울 남대문 밖 채소밭 사진 (구한말 이태리 공사의 일기, "꼬레아 에 꼬레아니"에서 전재). 이곳의 채소밭도 도시 안에서 운반된 인분 거름으로 시비했을 것이고 충란에 오염된 채소는 도시로 운반되어 팔려 나갔을 것이다. 



매년 연작 하기 위해서는 비료를 충분히 써야 하는데 도대체 어디서 그 많은 양의 비료를 공급할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사람들의 분뇨 외에는 없다. 많은 인구를 작은 땅에서 짓는 농사로 부양해야 하는 사회에서는 인분 거름이란 이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이처럼 경제적으로 포기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인분 거름을 쓰게 되면 기생충란이 거름으로 재배된 작물을 타고 다시 사람에게 감염되어 회충 감염률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분 거름을 쓰는 이유는 다른 방식으로는 담보하기 어려운 높은 농업 생산성이라는 유혹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분 거름을 쓰는 사회에서 회충 감염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그 무엇이 필요한데 예를 들면 산업화에 따른 화학비료 생산이 바로 그런 것이다. 화학비료를 쓰게 되면 사람 인분이 비료 제작에 필요 없게 되고 기생충란이 비료에 끼어 들어갈 가능성도 거의 사라진다. 


이 때문에 동아시아 사회에서 토양매개성 기생충 감염이 해결되는 것은 충분한 생산능력을 갖춘 비료공장이 한국에 만들어지면서 비로소 가능해 지는것이다. 


실제로 회충, 편충 등 토양매개성 기생충 감염률이 우리나라에서 70년대 이후 극적으로 감소하는 원인 중에는 정부의 효율적인 기생충 구제사업 덕도 있지만 화학비료의 자급자족, 이런 부분의 영향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이는 뒤집어 이야기 하면 북한의 경우 화학비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기생충 문제 해결은 어렵다는 의미도 되겠다). 


말라리아의 경우는 어떨까. 


아래 말라리아 생활사를 보면 회충 편충 등 토양 매개성 기생충의 생활사와 뚜렷하게 다른 점이 눈에 띈다.






회충의 경우 그 기생충에 감염된 사람의 변과 함께 기생충 알이 배출되면 그 알이 토양속에 섞여 있다가 나중에 다시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그 알이 섭취되는 방식으로 계속 감염이 이루어진다면-. 


말라리아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말라리아가 창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모기-매개체 (vector) 이다. 


말라리아는 사람에서 사람으로 감염되지 않는다. 


반드시 모기가 있어야 한다


말라리아를 매개하는 모기는 모든 종류의 모기가 다 그런것은 아니고 아노펠레스 (Anopheles) 모기라는 녀석, 그 중에서도 알을 밴 암컷이 그런 나쁜 짓을 하는 것이다. 




세계 말라리아의 날 포스터. 위에 있는 모기가 암컷 아노펠레스 모기로 소위 말하는 "학질모기"이다.


아래에 말라리아가 모기를 통해 감염되는 과정을 요약해 놓았다.  


(1) 학질모기가 사람을 문다. 

(2) 학질모기는 사람 피를 빨아 포식하는데 그 피 속에 말라리아 원충이 포함되어 있다. 

(3) 이 말라리아 원충은 처음에는 모기 위 속에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침샘으로 이동한다.  

(4) 침생에 들어 있던 말라리아 원충이 다음번 모기가 사람을 물때 다시 사람 몸안으로 이동해 들어가는 것이다. 


이 과정을 잘 묘사한 동영상이 있어 아래 링크해 둔다. 



Malaria_Life_Cycle_of_Plasmodium_HD_Animation_YouT from eLearn.Punjab on Vimeo.



이렇게 보면 모기가 사람을 무는 짧은 순간 동안에 말라리아 원충의 일부는 사람 몸으로, 일부는 말라리아로 이동하는 복잡한 과정이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셈이다. 


결국 말라리아 원충이 후속 세대로 계속 이어져 사람들 사이에 감염되기 위해서는 사람과 아노펠레스 모기 안에서 번갈아 가며 생활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사람 몸안으로 들어온 말라리아 원충은 간과 비장 등 장기에도 머물지만 가장 즐겨하는 곳은 역시 사람 피속 적혈구이다. 

적혈구 안으로 들어간 원충은 마구 분열하여 그 개체수를 늘리는데 이렇게 증식하다가 어느 순간이 오면 적혈구가 더 이상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 벽이 깨지고 이 때 말라리아 원충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 온다 (위 동영상 참조). 



적혈구 현미경 사진. 

핑크색이 나는 원형 세포가 적혈구인데 안에 뭔가 보이는것이 있다. 그것이 말라리아 병원체이다. 


재미 있는 것은 이 적혈구 벽을 깨고 말라리아 원충이 터져 나오는 순간은 인체 내에서 상당히 동기화 된 패턴으로 이루어 진다는것이다. 수없이 많은 적혈구가 일거에 같이 깨져 한 순간에 피 속으로 말라리아 원충이 함께 흘러 나오는데 이 동기화된 적혈구 파괴의 시기가 바로 말라리아에 감염된 환자에서 주기적으로 열이 올라가는 시기와 일치한다. 


말라리아는 앞에서 쓴것 처럼 주기적으로 열이 올랐다가 내려가는 과정을 반복하는데 이 주기에 따라 삼일열, 혹은 사일열이라 부른다 했다. 삼일열이란 결국 적혈구에 숨어들어간 말라리아 원충이 48시간 만에 한번씩 이를 깨고 나오는 것이고 사일열이란 72시간 만에 한번씩 말라리아 원충이 적혈구를 깨고 나오는 과정인 셈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다. 


말라리아를 매개하는 모기가 사라지지 않는 한 그 사회에서 말라리아는 사라지지 않는 다는 것이다.



도시 곳곳에 고인 물은 좋은 모기 유충의 서식지로 말라리아 감염의 원인이 된다 (앙코르 바라이)


이는 마치 우리가 이전 연재에서 인분 거름이 농업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토양매개성 기생충이 사라지지 않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 할 것이다. 


말라리아 감염에 대한 인류의 투쟁은 결국 말라리아 모기와의 전쟁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구한말 말라리아 감염이 그렇게 높았다는 것은 뒤집어 이야기 하면 조선사회는 당시 말라리아 모기와의 싸움에서 패배하고 있었던 것을 의미한다.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곳에는 모기가 들끓기 마련이었으므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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