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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개한테 물려죽은 진흥왕의 태자] (1) 엄마 애인을 눈겨본 딸

by taeshik.kim 2020.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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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진흥왕은 정식 마느래가 박씨 사도부인思道夫人이다. 《화랑세기》에는 이와는 전연 다른 내용이 있다. 사도는 후비後妃다.

그에게는 사도에 앞서 정식 부인으로 맞아들인 이가 있었으니 숙명淑明이다. 숙명이 바람 피우다 폐출되고선 새로 얻은 왕비가 사도다. 숙명은 누구인가? 4세 이화랑二花郞 전이다.

"이화랑은 (초대 풍월주인) 위공魏公의 아들이다. 피부가 옥과 같이 부드럽고 눈은 미소짖는 꽃과 같으며, 음률과 문장을 잘 했다. (그런 까닭에) 12살에 능히 (2세 풍월주인) 모랑공의 (화랑 집단 넘버2인) 부제가 될 수 있었다. (그런 그를 진흥왕 어머니인 지소) 태후가 매우 아꼈다. 그때 황화黃華 숙명 송화松花 세 공주가 모두 공을 따라 배우니 이에 숙명궁주와 정을 통하게 되었다. 그때 태후는 (자기 딸인숙명이 진흥)왕의 총애를 홀로받게 하고자 모든 일을 공주에게 받들게 했다. 하지만 왕은 (숙명이) 어머니가 같은 누이라 해서 그다지 총애하지 않았으며, 공주 역시 그러했다."

 

과부 지소가 관리하는 어장엔 파릇파릇 싱싱한 고기로 넘쳐났다. 쌍끌이 저인망으로 긁으면 젊고 싱싱한 놈들이 솟구쳐 올랐다. 개중 이회랑이란 놈도 있었으니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림 여송은

 



서로 소 닭쳐다보듯 했다는 뜻이다. 한데 그 이유로써 《화랑세기》는 근친혼에 대한 경멸을 지적한다. 이를 볼 적에 근친혼을 경멸하는 도덕윤리가 신라 사회 상층부에 서서히 침투하기 시작했음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진흥은 누구이며 숙명은 누구인가?

진흥은 널리 알려졌듯이 법흥왕 딸인 지소가 진삼촌 입종立宗에게서 낳은 아들이다. 법흥왕이 적자 없이(서자는 꽤 있었다) 죽자, 그 손자로써 왕위에 올랐다. 여담이나 신라시대에는 친가 외가 구분이 크지 않았던 듯하며 그런 까닭에 진흥이 즉위할 수 있었다고 본다.

물론 이 즉위 과정에서 어머니 지소의 눈물겨운 권력투쟁이 있었으니, 이에 대해서는 추후 다른 기회를 엿보고자 한다.

반면 숙명은 어머니가 같은 지소이기는 해도, 아비가 달라 같은 이화랑 전에 의하면 "공주는 아버지가 곧 태종공苔宗公이니 그때 상상上相으로써 나라를 위한 가장 중요한 신하였다"고 한다. 태종은 글자 그대로 이끼 사나이, 곧 이사부다. 上相은 재상 중에서도 우두머리라는 뜻이니 곧 우리한테 익숙한 조선시대 상황을 빌린다면 원로대신, 원훈대신 중의 오야붕이다.

지소가 말년의 피카소나 다름 없는 다 늙은 이사부한테서 씨를 받은 이유는 확실치 않다. 다만 추측컨대 어린 아들 진흥을 위한 바람막이로써, 이사부가 대표하는 권신權臣들의 절대적인 후원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닌가 해 본다.

그 진짜 속내가 무엇이건 진흥과 숙명은 금슬이 좋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위태위태한 관계가 지속한 까닭은 지소태후 서슬이 시퍼랬기 때문이며, 그에 더해 국가 원로대신 중의 원로대신 이사부가 그런 대로 송장 전단계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키우는 어장에서 젤 쓸만한 놈을 훔쳐낸 숙명. 여송은 그림.

 



하지만 그걸 견디기엔 숙명은 너무나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내 사랑 찾아갈래를 외치며 내 남자를 찾기 시작했으니, 그 상대가 바로 엄마의 젊은 애인이었다.

청상과부가 되어, 밤마다 들끓는 애욕을 짓누를 수 없던 지소는 그 밤을 봉사하기 위한 남자 공급을 위해, 새로운 제도를 마음껏 이용하게 되니 그것이 바로 화랑이었다. 이 화랑花郞은 글자 그대로 어리고 꽃다운 젊은이들, 요즘 말을 빌리면 소위 대세남이 득실하는 창고였다.

지소 침소에 드나들며 총애를 받은 청년 중에 이화랑이 있었다. 그는 졸라 잘 생겼다. 피부 좋아 인물 훤해, 거기다가 노래도 잘하지, 악기도 잘 다루지, 더구나 문장력까지 뛰어난 기자였다. 그런 이화랑을 눈여겨 본 이가 있었다. 숙명이었다.

"저 놈을 내 남자로 만들어야지. 엄마한테서 빼사야지"

엄마와의 미남자 쟁탈전에서 마침내 딸이 승리한다. 하긴 엄마로서는 이 친구가 아니라 해도 주변에 젊은 애들로 넘쳐났다.

(2017.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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