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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고려사를 읽다가 - 화가의 대우

by taeshik.kim 2021.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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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oré Daumier, The Painter (1808–1879), oil on panel with visible brushstrokes

 

이광필이라는 화가가 있었다. 고려 무신정권기를 살았던 인물인데, 초상화와 산수화에 능했다고 전해진다. 그런 그의 아들이 9품 군직인 대정에 올랐다. 그런데 이에 딴지를 건 인물이 있었으니...

이광필의 아들이 서경(西京)을 정벌한 공으로 대정(隊正)에 임명되자, 정언(正言) 최기후(崔基厚)가 잘못을 지적하며 말하기를,


“이 아이의 나이가 겨우 20세인데, 서경 정벌 때에는 10세에 불과하였다. 어찌 10세의 어린아이가 종군할 수 있었는가?”
라고 하며 자기주장을 고집하며 서명하지 않으니, 왕이 최기후를 불러 꾸짖으며 말하기를,


“너는 이광필이 우리나라를 빛낸 사실을 생각하지 않는가? 이광필이 아니었다면 삼한(三韓)에 그림의 명맥이 거의 단절되었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에 최기후가 서명하였다.

 

Claude Monet's 1872 Impression, Sunrise inspired the name of the movement



여기에서 중요한 건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최기후가 이광필의 아들이 대정에 임명된 것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나이가 맞지 않는데도 거짓 공을 내세워 관직을 받으려는 상황을 반대했다는 점, 다른 하나는 왕이 그림 실력 또한 華國之才, 곧 나라를 빛낼 재주로 인식하고 끝내 그 임명을 관철시켰다는 점이다. 이로부터 200년 뒤 조선 성종 때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김여석이 또 아뢰기를,


"안소희(安紹禧)는 바로 화공(畫工) 안견(安堅)의 아들이니, 감찰(監察)이 될 수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안소희는 이미 과거에 급제하였으니, 감찰에 제수한들 무엇이 해롭겠는가?"


하였다. 예조 판서(禮曹判書) 이승소(李承召)가 말하기를,


"화공(畫工)의 아들이 어찌 감찰(監察)이 될 수 있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안소희를 개차(改差)함이 옳겠다."


하였다.

 

Magnolia and Erect Rock (玉堂柱石圖) by Chen Hongshou 陈洪绶, Palace Museum, Beijing



<몽유도원도>를 그린 불세출의 화가 안견의 아들이 과거에 급제했다. 그런데 그에게 사헌부 감찰 자리를 주느냐를 가지고 논쟁이 붙었다. 감찰은 정6품, 품계는 낮지만 淸要職에 해당한다. 성종은 내심 안소희를 밀어주고 싶었지만, 그에게 붙은 것은 '화공의 아들'이란 꼬리표. 결국 안소희(만두 아님)는 밀려나고 만다.

 

200년만에 화원의 지위가 '나라를 빛낸' 인물에서 '화공'이 되어 버렸다. 이제 여기서 조금 뒤로 가면 화원에게 과거 자체가 언감생심이 되는 지경에 이르른다.


더 나아가 지금 이 사회에서도 '화가'로 살기란 쉽지 않은 일이 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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