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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sWho in Ancient Korea

김봉휴(金封休)

by taeshik.kim 2018.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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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마지막 경순왕이 나라를 들어 고려에 항복할 적에 항복 문서를 들고 간 신라 관료.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 김부대왕(金傅大王) : 청태(淸泰) 2년 을미(乙未·935) 10월에 사방 땅이 모두 남의 나라 소유가 되고 나라는 약하고 형세가 외로우니 스스로 지탱할 수가 없었으므로 여러 신하와 함께 국토를 들어 고려 태조에게 항복할 것을 의논했다. 그러나 여러 신하의 의논이 분분하여 끝나지 않는지라 왕태자(王太子)가 말했다. "나라의 존망은 반드시 하늘의 명에 있는 것이니 마땅히 충신·의사(義士)들과 함께 민심을 수습해 힘이 다한 뒤에야 그만둘 일이지 어찌 1,000년 사직을 경솔하게 남에게 내주겠습니까?" 왕이 말했다. "외롭고 위태롭기가 이와 같으니 형세는 보전될 수 없다. 이미 강해질 수도 없고 더 약해질 수도 없으니 죄없는 백성들이 간뇌도지(肝腦塗地)케 하는 일은 내가 차마 할 수 없다." 이에 시랑(侍郞) 김봉휴(金封休)를 시켜 국서(國書)를 가지고 태조에게 가서 항복하기를 청했다. 그러나 태자는 울면서 왕을 하직하고 바로 개골산(皆骨山)으로 들어가서 삼베 옷을 입고 풀을 먹다가 세상을 마쳤다. 그의 막내아들은 머리를 깎고 화엄종에 들어가 중이 되어 승명(僧名)을 범공(梵空)이라 했으니, 그 뒤로 법수사(法水寺)와 해인사(海印寺)에 있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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