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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송은의 뮤지엄톡톡

김진사댁 막내아들 장가가던 날.

by 여송은 2019.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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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송은 온양민속박물관 연구원 


경사가 났습니다.

 

그렇게 고운 배필을 만나 장가가고 싶다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다가 드디어 만났습니다.

고고한 자연의 이치를 탐구한다는 명분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녀도 제 배필은 보이지 않더니만

바로 강 건너 마을에 있었습니다.


현감댁 장녀로, 저를 제외하고 이미 모든 이가 제 신부될 분을 잘 알고 있더군요.

외모뿐만 아니라 마음씨 또한 곱고, 그림에도 조예가 깊다고요.

자연의 이치는 지척에 있었나 봅니다.

 

신부집에서 보내온 연길(吉, 신부 측에서 혼인날을 택하여 신랑 측에 보내는 것)을 받고, 신부 집안의 시원시원함에 내심 마음이 좋았습니다. 바로 올 추석 지나고 며칠 뒤입니다.

 

연길을 받고 바빠진 건 오히려 저희 어머니셨습니다. 

신부집에 보낼 함 안에 넣을 선물을 준비하신다고 이리저리 분주하셨습니다. 


진사댁이라 부유할 것이라고 생각들 하시지만 늘 검소하신 아버지 성품 때문에 여유있게 무언가를 사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웬일이신지 어머니께 툭 한마디 내뱉으시는 말씀이 


"아무리 가난해도 며느리를 데려오려면 옷 한벌은 해 입히고 데려와야 예(禮)라 했는데, 은비녀와 은쌍가락지 정도는 넣어야 하지 않겠소." 하시는 겁니다. 무뚝뚝한 아버지도 내심 며느리 될 사람이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봉칫시루

전안례(奠雁禮)를 올릴 때 팥떡을 쪄서 북어 두 마리와 정화수를 올려 놓는 시루로, 붉은 팥은 벽사기복(辟邪祈福)을 의미한다.

 

목기러기

전안례(奠雁禮) 때 사용하는 나무로 만든 기러기로, 신랑은 혼례식에 앞서 기러기와 같이 평생 마음이 변치 않는다는 의미로 신부 어머니께 드리고 절을 한다.

 

 

드디어 저에게도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날이 왔습니다.

늘 먼저 장가가던 벗들을 뒤에서 축하만 해줬었는데, 오늘의 주인공은 저와 제 앞에 수줍은듯 고개를 들지 못하는 신부입니다.

 

기럭아범을 따라 신부집에 마련된 전안청(奠雁廳, 전안례가 행해지는 곳)으로 들었습니다.


아, 기럭아범은 저희집 공식 기럭아범인 숙부가 맡아 주셨습니다. 

첫째 아들을 낳은 이래로 내리 삼형제를 두셨고, 어여쁜 막내딸까지 두신 다복하신 분입니다.

 

 

신행길, 《단원 풍속도첩》, 김홍도(金弘道), 보물 제527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신랑 행렬은 맨 앞부터 횃불 한 쌍, 청사초롱, 기럭아범, 중방, 신랑, 상객 등의 순서로 간다.

 

 

소중히 들고 온 기러기를 건내받아 상 위에 올려 놓고 절을 한 후 드디어 저의 신부 될 분을 마주하였습니다.

사실 저는 처음보지 않았습니다. 혼담이 오갈 때, 궁금함을 참지 못해 막역한 벗과 함께 몰래 보고 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얼핏 보아 곱구나 정도였지만, 오늘 이리 마주하니 '자연의 이치가 이리 지척에 있었거늘' 하고 생각이 듭니다.

 

온양민속박물관 혼례 전경

 

그런데 아까부터 신부가 대례상(혼례상) 위에 있는 닭이 신경쓰이나 봅니다. 수줍은 듯 하다 가끔씩 매서워 보이는 눈빛이 닭에 향하는 것 같습니다. 

 

닭은 예로부터 우리에게 길하고 이로운 동물로 알려졌지요.

어머니에게 듣기로 혼례상 위에 닭을 올리는 많은 이유 중 하나는 닭이 벼슬이 있어 남자에게는 굵직한 관직을 맡으라는 의미이고, 닭이 알을 많이 낳기에 부부간에 자녀를 많이 낳으라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폐백반

신부가 시댁어른들에게 폐백 음식을 차려놓고 예(禮)를 올리는 상이다.

절을 받는 어른들은 자식을 많이 낳고, 다복하게 살라는 의미로 신부의 치마폭에 던져 주었다.

 

 

신부와 서로 절을 하고, 표주박 잔에 술을 따라 술을 돌렸습니다. 신부는 술을 입에만 대었고, 저는 마셨습니다.

이렇게 세 번을 하니 그러면 안 되는데 취하는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아, 여기서 '살아서도 석 잔, 죽어서도 석 잔.' 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합니다. 


여하튼 저는 오늘 절대 취하면 안됩니다. 

오늘따라 술에 약한 제가 야속합니다.

 

우여곡절 모든 혼례절차를 마치고 신부와 저는 잠시 다른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신부집에서 마련한 두루마기로 갈아입었는데, 이를 '관디벗김'이라 부릅니다.

혼례식 동안 긴장하고 있었는데, 관복도 벗고 조금 편히 있으니

취기가 올라오는건지, 긴장이 풀려서 그러는 건지 스륵스륵 잠이 옵니다.

 

첫날밤이 기다리는데 말입니다.

언제 신행갈지도 정해야하는데 말입니다.

아이는 몇 명 낳을지도 정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아무튼, 여러분 저 김진사댁 막내아들 평생 배필을 만나 오늘 장가갑니다! 


이 기사 제1탄은 아래 클릭 


송은이 시집가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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