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재현장

납딱이 빼빼로 약사여래

by taeshik.kim 2019. 5. 18.
반응형


휴일이라 집구석 틀어박히니 애꿎은 ocn 붙잡고 아이언맨이랑 놀다가 자빠다 일나다를 반복하게 되거니와 이래선 아니되겠다 싶어 기차표 끊어 천안아산에 내렸다. 


뭐 그렇다 해서 특별히 갈 곳을 정한 것은 아니로대 내리면서 퍼뜩 생각한 곳이 아산 읍내동 당간지주와 그에서 대략 2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하는 같은 아산 평촌리 석조약사여래입상 납딱이 부처님이었다.


당간지주 거쳐 납딱이 부처님을 찾아갔다.

문화재 지정명칭은

아산 평촌리 석조약사여래입상
牙山坪村里石造藥師如來立像
Stone Standing Bhaisajyaguru Buddha in Pyeongchon-ri, Asan



보물 제536호라, 아산시 송악면 평촌리 산1-1에 소재한다.

인근엔 요새 용담사라는 절이 있어 대웅전과 요사채가 있기는 한데 인기척은 없고 녹음기로 틀어놓은 불경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며 정적을 깬다.

10여년 만에 찾았으니, 더구나 그땐 집사람과 해가 다 진 녘 어둠이 깔린 때라, 그때 자세한 기억은 거의 없고, 대신 이 거대 석불 뒤편으로 요사채 비스무리한 무허가 건물이 있지 않았나 하지만, 이젠 주변이 깔끔히 단장되어 이 일대는 오직 이 불상만 또렷하다.

아마 용담사에서 관리를 별도로 하지 않나 하는데, 그 절에서 심었을 법한 붓꽃이 한창이라, 거대한 불상과 묘한 조화를 빚는다.

저 불상 녹록치 아니한 크기는 저 옆에선 사람과 비교하면 충분히 가늠하리라 본다. 


저 친구가 땅꼬마 피그미족이 아닐진대 높이 상당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리라.


왜 납딱이 빼빼로라 하는지는 측면 뒷면 모습으로 충분하거니와 

저 길쭉이 부처님 고추선 모습이 실은 경이다.


배례석 있을 자리에 뭐가 있었는지..아마 석등이 있던 흔적 아닌가 하지만 단안은 미룬다.

저 양반 발꼬락은 폥귄의 그것이라 고려시대 석불에 보이는 그 전형을 따른다.


약합을 쥐셨으니 영락없는 약사여래라

주름 표현 여전히 생생하다.

안내판 설명을 보면 이러하다.


아산 평촌리의 석조약사여래입상은 거대한 화강암을 다듬어 조각한 불상으로 평촌리 산중턱의 엣 절터에 있다. 상체가 짧고 하체가 길어 다소 불균형한 듯한 모습이지만 얼굴이나 옷주름의 조각 솜씨가 돋보인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이 붙어 있으며 그 위에 상투 모양으로 머리[육계]를 큼지막하게 얹어 두고 있다.

양쪽 귀는 어께까지 길게 늘어져 불상의 자비로움을 더하고 있으며, 입술은 다른 부분보다 작고 얇게 표현된 점이 인상적이다.가슴 부분에서 모은 두 손은 약 그릇을 안고 있는데, 이를 통해 모든 중생의 질병올 구원하는 약사여래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양 어깨에 걸쳐진 옷이 발목까지 덮여 있는데, 좌우대칭을 이룬 옷주름의 표현이 독특하다.


선으로 표현된 상반신의 옷 주름은 평행한 띠 주름인데 좁은 간격으로 일정하게 배열되어 있다.

하반신은 신체 정면에서 가닥으로 구분되어 U자형으로 조각되어 있고, 양 무릎에는 동심원 모양의 옷 주름이 섀겨져 있다.

이러한 표현은 통일신라시대 불상에서 유행하던 양식을 형식화한 것으로 모인다. 특히 무릎에 표현된 옷 주름은 삼화령 미륵삼존불과 영주 석교리 석조여래입상(보물 제116호) 등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에서 간혹 나타나던 독특한 수법이다. 

사실적 표현에 충실한 얼굴은 통일신라시대의 특징을 보여준다. 그러나 좌우대칭으로 규칙적인 옷 주름, 짧은 목과 움츠린 듯한 어깨, 꼿꼿이 서 있는 자세 등은 다소 형식화가 진행된 것으로 볼 수 있어, 평촌리 입상은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불상 옆에는 용담사龍潭寺 사적비史蹟碑가 있는데, 용담사라는 절을 신라 애장왕哀莊王 때에 원효元曉가 처음 지었고, 고려 광종光宗 때 혜명조사惠明祖師가 건립하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The Stone Standing Bhaisayaguru Buddha in Pyeongchon-ri, Asan is located at the site of a temple on the mid-slope of a hill. The lower part of the body is disproportionately long. The exquisite skill used in carving the face and the creases of the robe is particularly noteworthy.

The turban shell-shaped tufts of hair are displayed, along with a large-sized yukgye (protuberance on top of Buddha's head). The long ears drooping down to the shoulders make the statue look more benevolent. The fact that the lips are portrayed as being smaller than the other body parts is something noteworthy.

The two hands clasped together close to the bosom, holding a medicine bowl, show that this is a representation of the Bhaisajyaguru Buddha. The symmetrical robe covering the entire body loolks unique.

The creases on the upper part of the robe display parallel lines, while the creases near the knees are expressed in concentric circles, a pattern that was prevalent during the Unified Silla Period (668-935), and are similar to those of the Maitreya Buddha Tríad at Samhwaryeong Pass and the Standing Buddha in Seokgyo-ri, Yeongju (Treasure No. 116).

The realistic looking face displays the charactcristic features of stone standing Buddhas of the Unified Silla Period.

However, researchers think that this one was made during the Goryeo Period (877-1394) based on the formalized designs of the symmetrical robe creases, the short neck, the rather shrunken shoulders, and the upright stance.

Siruated nearby is the Stele for the Construction of Yongdamsa Temple, which was founded by the Buddhist monk Wonhyo during the reign of King Aejang (r. 800-809) of Silla and reconstructed by Buddhist monk Hyemyong during the reign of King Gwangjong (r: 949-975) of Goryeo.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