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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 & 漢文&漢文法

대숲이 머금은 절대고독

by taeshik.kim 2018.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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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56)


죽리관竹裏館


[당唐] 왕유王維 / 김영문 選譯評


그윽한 대 숲에

나 홀로 앉아


거문고 타다가

또 긴 휘파람


숲 깊어 다른 사람

알지 못하고


밝은 달 다가와

비춰주누나


獨坐幽篁裏, 彈琴復長嘯. 深林人不知, 明月來相照.


근대는 빛과 함께 왔다. 모든 빛(文明)은 어둠과 야만을 적대시한다. 우리는 밤을 몰아낸 찬란한 빛 속에서 산다. 그윽하고[幽] 깊은[深] 대숲[竹林]은 사라진지 오래다. 죽림에 숨어 살던 현인들도 이제는 만날 수 없다. 혼자 태어나 혼자 죽으며 하나의 생명만으로 살아가는 인간은 절대적으로 고독한 존재다. 현대인은 자신의 고독을 보듬기 위해 산으로 강으로 몰려 가지만 이제 우리 산천 어디에도 고독을 음미할 장소는 없다. 산도 강도 욕망에 굶주린 암수 군상들의 시끄러운 캬바레에 불과할 뿐. 혼자서 휘파람 불다가 귀신과 만나는 곳을 아시는가?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깊은 숲, 밝은 달만 다가와 내 고독을 비춰주는 계곡을 아시는가? (2018.06.02)



현란한 조명, 꽉 찬 관중, 열광의 함성.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BTS나 Queen의 콘서트 광경이다. 빛과 소란이야말로 현대인의 삶 자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하지만 이 시가 묘사한 ‘죽리관’ 독주회는 관중이 하나도 없다. 아니 거문고 소리를 듣고 다가온 밝은 달만 혼자 독주회를 감상한다. 깊은 숲 속 거문고 소리는 오히려 정적을 강화한다. 현대인이 잃어버린 정적이다. 


현대는 빛과 함께 왔다. 소란도 빛을 따라 왔다. 우리는 어둠과 정적을 몰아낸 찬란한 빛과 시끄러운 소란 속에서 살고 있다. 그윽하고(幽) 깊은(深) 대숲(竹林)은 사라진지 오래다. 죽림에 숨어 살던 현인들도 이제는 만날 수 없다.


혼자 태어나 혼자 죽으며 하나의 생명만으로 살아가는 인간은 절대적으로 고독한 존재다. 현대인은 자신의 고독을 보듬기 위해 산으로 강으로 몰려 가지만 이제 우리 산천 어디에도 고독을 음미할 장소는 없다. 산도 강도 욕망에 굶주린 암수 군상들의 시끄러운 캬바레에 불과할 뿐. 


혼자서 휘파람 불다가 귀신과 만나는 곳,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깊은 숲, 밝은 달만 다가와 내 고독을 비춰주는 계곡으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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