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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송은의 뮤지엄톡톡

대식오라버니에게, 온주 올림.

by 여송은 2020.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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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아래, 온주와 대식오라버니 (1)

https://historylibrary.net/entry/%EC%9D%80%ED%96%89%EB%82%98%EB%AC%B4-%EC%95%84%EB%9E%98-%EC%98%A8%EC%A3%BC%EC%99%80-%EB%8C%80%EC%8B%9D%EC%9D%B4

 

은행나무 아래, 온주와 대식오라버니 (2)

https://historylibrary.net/entry/%EC%9D%80%ED%96%89%EB%82%98%EB%AC%B4-%EC%95%84%EB%9E%98-%EC%98%A8%EC%A3%BC%EC%99%80-%EB%8C%80%EC%8B%9D%EC%98%A4%EB%9D%BC%EB%B2%84%EB%8B%88%EC%B5%9C%EC%A2%85%ED%9A%8C

 

지난 이야기

대식이는 온주 집의 하인입니다. 어렸을 적부터 온주는 대식이를 잘 따랐고, 대식이도 온주를 잘 챙겨주며 친남매 처럼 지냈습니다. 혼기가 차니 대식이는 현실적인 부분을 생각하여 온주를 멀리하기 시작하였고, 온주는 예전과 다른 대식이가 서운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온주는 부모님의 권유로 양주로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먼 곳에서 가끔씩 고향이 그립고 대식이가 그리웠지만 그래도 시집 간 곳에 정을 붙이고 지내려 하였습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온주의 서방님은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으로 갔다 돌아오는 길에 변을 당해 세상을 떠났고, 온주의 배는 점점 불러왔습니다. 그렇게 몇해가 지났을 까요. 온주는 오랜만에 고향에 들러 자주가던 은행나무 언덕에 딸아이와 올랐습니다. 예전 모습들을 아련히 떠오르며 생각이 잠기려던 그때, 저 멀리 낯익은 모습이 보입니다.  대식오라버니...

 

 

대식오라버니에게.

 

 

 

대식오라버니, 강녕히 지내셨나요?

 

저는 제 딸 아이와 놀아주느라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굴 닮았기에 그렇게 호기심이 많은지, 하루종일 따라다니며 종알종알 물어 옵니다.

 

오라버니께 오늘은 꼭 서신을 써야지 하고, 벼루를 꺼냈다 들여놓기를 몇 번을 하였는지 모릅니다. 오늘은 웬일인지 딸 아이가 일찍 잠자리에 들어 모처럼 조용히 먹을 갈아 봅니다.

 

 

그런데 먹을 갈다 문득 벼루를 보니, 어느새 봄이 와있었네요.  

이렇게 손 끝까지 봄이 와 있었는데, '언제 봄이 오나...' 바보같이 기다렸습니다.

 

 

 

 

벼루

硏 위원석 17.0x22.0x2.8

-

먹을 가는 데 사용하던 이 벼루는 위원석 자체가 지니고 있는 색이 잘 드러나 있다.

벼루 위쪽에는 학과 석류를 아래쪽에는 매화를 새겨 장식하였다. 먹을 가는 부분인 연당硏堂은 해를, 먹물이 모이는 곳인 연지硏池는 달을 형상화여 만들었다.

 

 

 

 

저는 이렇게 봄이 올랑말랑 할 때쯤이면 오라버니가 생각납니다.

 

항상 가장 먼저 저에게 봄을 보여주고싶다며, 마을 뒷산이며 들이며 데려가 주셨잖아요. 

그때가 고작 입춘지났을 무렵이니 어찌나 추웠던지요. 춥다고 하면 오라버니가 집에 돌아가자 할까봐, 볼이 시뻘게져도 손이 꽁꽁 얼어도 아무말 안하고 따라다녔었죠. 오라버니랑 노는게 참 즐겁고 재밌었나 봅니다.

 

 

*입춘 立春

음력 1월, 양력 2월 4일경

입춘은 24절기 가운데 첫 절기로, 이날부터 새해의 봄이 시작된다. 따라서 이날을 기리고, 닥쳐오는 일년 동안 대길·다경하기를 기원하는 갖가지 의례를 베푸는 풍속이 있다.

'입춘에 장독(오줌독) 깨진다.' 라는 속담이 있는데, '입춘 무렵의 추위가 매섭다.'라는 뜻이다.

  

 

 

어느 해인가 입춘이 지났는데도 흰쌀같은 눈이 펑펑 내리던 날이 있었죠.

 

그때도 오라버니가 가장 먼저 봄을 보여주겠다며 저를 데리고 나갔죠. '이렇게 눈이 펑펑 내리는데, 봄이라니?' 반신반의 하며 안방에 있던 어머니 휘양을 머리에 뒤집어 쓰고 따라 나섰었죠. 

 

 

 

 

규방책거리

한지, 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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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따뜻한 안방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앞쪽에는 책과 화로, 다양한 모양의 합이 보이고, 뒤쪽으로는 표범무늬 병풍과 용머리 횟대에 화려한 겨울 외투와 방한용 모자가 걸려 있다. 머리에 폭 뒤집어 쓰는 이 방한용 모자는 '휘양'이라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남바위'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남바위보다 길이가 길어 목덜미와 어깨까지 감싸 더욱 따뜻하게 쓸 수 있다.

 

 

 

 

한참을 오라버니 등만 따라 눈 덮힌 길을 걸어가는데, 갑자기 '다 왔다!' 하고 멈추더라고요.

 

사실 오라버니 등에 가려 무엇인지 보지 못했지만, 코로 먼저 봄을 보았지요. 눈 속에서도 지지 않는 그 고고한 향이 오라버니 어깨 너머로 흘러왔습니다.  

 

 

 

 

 

납매

눈 속에서도 노란 꽃을 피운다 하여 '황설리화黃雪裏花'라고도 불린다.

*사진 : 호남문화재연구원 이영덕원장님 페이스북

 

 

 

매서운 한겨울 추위를 이기고 눈 속에서 피었다기에는, 꽃잎은 너무나도 여리고, 순수해보였어요.

대신, 추위를 이겨낸 그 강인함은 꽃의 향에 담겨있던 걸까요?

 

겉모습은 순수하고 맑아보이지만, 속은 단단한 강인함이 있는 이 꽃이 퍽 마음에 들었습니다. 참 아름다웠어요. 가끔씩 오라버니 어깨너머로 맡았던 그 노오란 꽃 향이 생각이 납니다.  

 

 

올해는 벌써 경칩이 다가오니, 어렵겠지요?

올 겨울즘 온양에 내려가려고 합니다. 저희 딸에게도 그 향을 보여주려해요.

 

 

 

*경칩 驚蟄

양력 3 5일경

우수 춘분 사이에 들며, 날씨가 따뜻하여 각종 초목의 싹이 트고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땅위로 나오려고 꿈틀거리는 시기이다. 흔히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나는 날이라고도 한다.

 

 

 

 

 

장도

刀, 은,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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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집을 갖춘 작은 칼이다. 장도는 남녀 구분 없이 애용했던 장신구로 남자는 허리띠나 옷고름에, 여자는 치마 속이나 노리개에 매달아 몸에 지니고 다녔다.

이 장도는 칼집과 칼자루에는 박쥐문양을 섬세하게 새겨 넣었으며 칼집 바깥쪽에는 개구리 장식이 붙어있는 휴대용 젓가락이 달려 있다. 은으로 만든 젓가락은 음식을 먹는 것 외에 음식물의 유해 여부를 판단하는데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오라버니에게 서신을 쓰고 있으면, 해맑았던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간 듯 합니다. 오라버니와 뛰어놀던 그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우리 딸 아이가 그 때 저의 나이 즘 되었군요. 시간 참 빠르다는거 새삼 또 느낍니다...

 

 

대식오라버니, 요즘 알수 없는 고뿔이 유행이어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는데, 부디 강녕히 지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그 때 꽃 앞에서 제가 물었던 물음에 이제는 답해주세요. 오라버니가 생각하기에 저는 어떤 꽃을 닮았나요?

 

매화를 보니 문득 어렸을적 그리운 고향 모습과 함께 오라버니가 생각났습니다. 올 겨울, 딸아이와 함께 내려가겠습니다. 강녕히 지내세요.

 

 

온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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