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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대중고고학 문을 연 무령왕릉

by taeshik.kim 2020.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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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 박정희 지침

 

고고학과 문화재를 관광과 착목한 경주관광개발계획 전주곡은 무령왕릉 발견 발굴이었다. 무령왕릉 발굴은 대히트였다. 하지만 놓친 게 있었다. 대중매체, 특히나 발굴과정을 생생히 담은 영상을 촬영하지 못했다.

이 점이 두고두고 정권에는 한이 됐다. 무령왕릉 발굴단장 김원룡이 당시 문화부 장관 윤주영한테 불려가서 쿠사리 찐밥을 먹었다. 테레비 왜 안 불렀느냐? 이걸 이해해야만 이듬해 닻을 올린 경주관광개발계획을 이해한다.

 

무령왕릉 발굴에 운집한 취재진. 난장판이었다. 



무령왕릉 실패를 거울삼아 천마총 황남대총 발굴은 티비가 동원됐다. 그 발굴소식은 대한뉘우스를 타고 전국으로 전파됐다.

오늘 신라문화동인회 내 발표 중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2015. 10. 11)

***

천마총 발굴현장을 순시하는 박정희

 

이런 반성은 무령왕릉 발굴 직후 박정희 정부가 의욕으로 추진한 경주관광개발계획과 그 일환으로 신라유적 발굴이 왜 언론과 결합하게 되었는지를 해명하는 가늠자다. 비록 엄격한 통제가 시종 이뤄지긴 했지만, 천마총 발굴을 필두로 이후 황남대총 발굴, 황룡사지 발굴, 안압지 발굴은 그 성과는 국민한테 알려야 하는 의무가 부과되었으며, 언론 역시 민족문화창달이라는 헌법이 부여한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기 시작했다.

고고학이 국민생활에 파고드는 계기는 역설적으로 무령왕릉을 디딤돌로 삼는 이유가 예서 말미암는다. 무령왕릉 발굴이 지닌 다대한 의미 중 하나로 이 대목을 빠뜨릴 수는 없다. 이른바 언론고고학이 탄생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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