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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도이가하마 유적(土井ヶ浜遺跡)과 도래계(渡來系) 야요이인(弥生人) (2)

by 초야잠필 2019.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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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박물관 야외에 마련되어 있는 돔 구조물. 내부에 발굴 현장이 보존되어 있다.


돔 내부로 들어가는 길. 원래 모래 언덕이었다고 한다. 


발굴된 도이가하마 유적 전경 디오라마. 야요이시대 묘지였던 유적 전체 넓이는 동서 약 260미터, 남북 약 70미터 정도라고 하는데 그 중 일부만 발굴된 상태라고 한다. 발굴된 구역 중에서도 일부에 돔을 만들어 내부를 보존한다. (at 도이가하마 인류학 박물관)


돔 내부. 바닥은 모래밭이다. 발굴된 인골들이 당시 모습대로 재현되어 있는데 총 80개체 분이다. 모두 레플리카라고 한다.


도이가하마 유적은 박물관 외부에 건설된 돔 안쪽에 보존되어 있다. 인골은 발굴 당시 모습 대로 재현되어 있는데 물론 진품은 아니다. 인골이 발굴된 곳은 원래 모래 사장으로 모래안에 포함되어 있는 칼슘 성분에 의한 염기성 pH 때문에 뼈가 잘 보존되었으리라 한다. 

원래 이 지역 사람들은 이곳에서 사람 뼈가 발견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으로, 이 뼈는 몽골이 내습했을 당시 전사자의 뼈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고고학자의 전문적 조사 결과 이 뼈는 원래 추정보다 시대가 훨씬 거슬러 올라가는 사실을 알게 되어, 죽은 사람들도 원나라 내습 때 싸움에서 죽어 현장에 묻힌 사람들이 아니라 더 이른 시기에 죽어 이곳에 묻힌 사람들로 판명되었다. 전체적인 매장 양상으로 볼 때 이 구역은 야요이인 공동묘지 같은 곳임을 알게 되었다. 

도이가하마 유적에서 발견된 무덤 중에는 단순 토광묘土壙墓도 있지만, 판석版石으로 조립한 석관石棺도 있는 등 다양한 형태의 매장방식이 공존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아래 사진에서 그 편린 몇 가지를 볼 수 있다.

1953년 부터 2000년까지 이 지역에 대한 발굴은 그간 19차례 정도 계속되어 300개체가 넘는 야요이시대 인골을 수습했다고 한다. 이는 단일 유적으로는 지금까지 가장 많은 수의 야요이시대 인골이다. 이러한 학술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1962년에는 일본 국정사적으로도 지정되었다. 


돔 내부 발굴 현장에 남아 있는 석관묘. 


머리뼈만 모아 이차장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아래에 두명의 남자 어른 개체가 보인다. 


투명한 발판 위로 걸어가며 아래를 관찰 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재미있는 점은 이 유적 발굴을 지휘한 책임자가 고고학자가 아니라 큐슈의대 해부학교실 교수인 가나세키 다케오 (1897-1983) 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쿄토의대를 졸업하고 대만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 전후 귀국하여 큐슈의대 해부학교실 교수로 활동하였는데 고인골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야요이시대에 대륙으로부터 도래인이 일본으로 건너와 이들이 현대 일본인의 조상 중 하나가 되었다는 주장을 처음으로 한 사람이다. 

해부학과 체질인류학을 기반으로 폭넓은 학문 분야을 섭렵한 사람으로 일본 인류학사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긴 거장인데 1953년에서 1958년까지 총 5번에 걸친 도이가하마 초기 발굴을  지휘한 것이다. 


가나세키 다케오 (金関丈夫) 교수 

(위키피디아): https://ja.wikipedia.org/wiki/%E9%87%91%E9%96%A2%E4%B8%88%E5%A4%AB

(큐슈박물관): http://www.museum.kyushu-u.ac.jp/publications/special_exhibitions/WAJIN/212.html


가나세키 교수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 북큐슈北九州와 야마구치현山口縣 북부 지역 등지에서 발굴한 야요이시대 인골을 바탕으로 한 연구에서 이 인골이 이전 조몬시기의 인골 형태와는 다르고 오히려 대륙 인골과 비슷하므로 야요이시대 개시와 함께 일본에 전래된 벼농사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도래인으로 이들이 기존의 조몬인을 대체, 동화함으로써 (도래-혼혈설; 渡来・混血説) 현대 일본인이 탄생했다. 

이 가설은 학계에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야요이인의 확산. 

후쿠오카와 야마구치 현 서북쪽 해안지대에서 시작한 야요이 문화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모습을 담았다. 가나세키와 그 후계자의 주장에 의하면 이 문화의 막을 열어젖힌 사람은 다름 아닌 대륙에서 도래한 사람들로 이들은 기존의 조몬인을 구축하거나 동화하면서 빠른 속도로 일본 열도 전역에 야요이 문화를 전파시켰다는 것이다. 

(큐슈대 박물관 "왜인의 형성" 에서: http://www.museum.kyushu-u.ac.jp/publications/special_exhibitions/WAJIN/wajin.html). 

지도에 도이가하마 유적이 보인다. 


다양한 형태의 묘제가 확인되는 도이가하마-.


도이가하마 유적에서 발견된 인골에 대한 디테일한 조사가 진행되면서 흥미로운 부분도 보고되었다. 아래 사진을 보자. 


20세 여성으로 추정되는 피장자 인골과 함께 8개월 정도 되는 태아의 뼈가 함께 발견되었다. 

사망자는 아마 임신 중이었던 듯 하다.


나란히 묻힌 인골 두 개체. 두 사람은 성인 남녀로 판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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