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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돈 많은 과부 만나 출세한 화랑 문노

by taeshik.kim 2019.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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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노文弩는 아버지가 신라 재상을 지낸 비조부比助夫라는 사람이고, 엄마는 대가야 문화공주文華公主라, 그런대로 괜찮은 혈통이랄 수 있지만, 신라로 넘어와서는 빌빌 쌌다. 비조부 아들이라 하지만, 서자인데다, 대가야는 신라에 대들다 쫄딱 망하는 바람에, 그 대접이 순수하게 나라 전체를 몽땅 받친 금관가야랑 달랐다. 


이런 한계를 스스로 절감한 때문인지, 문노 본인도 출세에는 전연 관심이 없이 오로지 칼잡이로 일생을 소일하니, 칼잡이로 소문이 나니, 쫄개들이 수하로 몰려들었으니, 개중에는 사다함이란 어린 친구도 있었다. 




거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런 칼잽이 성향 무인들이 그렇듯이, 문노 역시 의협심 하나로 똘똘 뭉친 사람이라, 그에게도 오야붕이 있었으니, 세종世宗이라는 사람이 바로 그의 주군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지증~진흥왕 시대를 호령한 일세의 영웅 이사부였고, 어머니는 진흥왕 어머니인 지소태후였다. 당대 최고의 명문가 자제였으니, 세종의 말 한마디에 자신의 목숨을 건 사람이 문노였다. 


당대 최고의 격검擊劍의 명수 문노는 어린시절에 이미 전장을 누볐으니, 약관 17세 때인 개국開國 4년, 551년 김무력이 이끄는 대 고구려 정벌전쟁에 따라 나서 공을 세웠고, 개국 7년, 557년에는 국원으로 나가 북가라를 쳤다. 하지만 아무런 포상도 받지 못했으니, 이는 출세에 관심 없던 그의 성향이 지대한 영향일 미친 때문인 듯하다. 


이런 그를 어떤 경로를 통해서인지 소문을 들은 세종이 찾아와 스스로 몸을 굽히고는 형이 되어 달라 하니, 그 간절함에 감복하고 문노는 마침내 세종을 주군으로 섬기게 된다. 




하지만 이 일은 그를 더는 재야의 고수로 놓아주지 않는다. 권력투쟁의 격랑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세종의 여인이 미실. 그 정치 야욕이 대단했던 미실은 신라 정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키게 되거니와, 세종은 미실이라면 죽고 못 사는 사내였다. 다만, 문노는 미실을 탐탁치 아니하게 여겼다. 그럼에도 주군이 워낙 죽자 사자 하니, 말도 못하고 끙끙 앓을 뿐이었다. 


이러는 와중에 정변이 발생해, 진흥을 이은 진지가 황음무도하자, 그를 폐위하는 친위 쿠데타가 일어났으니, 이 친위 쿠데타는 다름 아닌 진지의 왕비 사도가 주도한 것이었다. 남편을 몰아내고자 하는 사도는 미실을 끌어들였고, 미실이 가담하니, 그의 남자 세종이 들어갔으니, 세종이 가담하자 문노 역시 가담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문노는 이 친위쿠데타에서 실제 군대를 이끌고 반대파들을 숙청했다. 일순 권력의 핵심 주류로 진입한 그는 이를 발판으로 마침내 풍월주에 취임했으니, 한데 문제가 생겼다. 홀아비였다. 부인이 있어야 했는데, 안주인이 없으니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그에 더해 또 하나 문제가 있었다. 문노는 골품骨品이 없었다. 간단히 말해 칼잽이요, 권력 주류이긴 했으나, 족보가 없었다. 주군 세종 역시 이 문제로 고민을 거듭했으니, 영 가오가 잡히지 아니했다. 사정이 이랬지만, 이 문노란 친구, 자신한테는 맹목적 충성을 받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매사에 고분고분하지는 아니해서 장가 갈 생각이 도통 없었다. 


이 문제로 고민을 거듭하던 세종과 미실은 떵떵 거리는 집안 여식과 짝을 지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후보자 물색에 나선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권력 실세라 해도 족보도 없는 문노한테 순순히 딸을 줄 가문이 없었다. 


세종과 미실한테 그런 고민을 해결해 줄 만한 절실한 후보가 나타났다. 윤궁允宮이라는 여인이었다. 


그렇다면 윤궁은 누구인가? 아버지가 일세의 영걸 거칠부였다. 막강한 후광을 등에 업고는 법흥과 입종의 동생인 적통 왕자 진종眞宗한테 시집간 듯한데, 그가 죽자 이번에는 금태자, 곧 진지왕의 후궁이 되었다. 진지가 왕위에서 쫓겨나니, 갈데없는 윤궁은 집으로 돌아와 과부로 지내는 중이었다. 




돈 많은 과부, 거기에다가 누구에게도 부럽지 않는 신라의 최상위 클라스 가문. 남편 말고는 모든 걸 갖춘 30대 과부 윤궁이야말로 문노한테 부족한 모든 것을 단 한 방에 채워줄 최상의 카드였다. 


문노는 과부 윤궁이 애초에 마음에 썩 들지는 않은 듯하다. 무엇보다 본인이 장가가는 데는 관심이 없었고, 과부가 30대 중반에 이른 나이도 그렇고, 무엇보다 독신을 고집하다 뒤늦게 당대 최고 가문의 과부한테 장가간다는 걸 남들이 어찌 받아들일지 안 봐도 비디오였던 까닭이다. 


한데 막상 혼담이 오가자 과부 윤궁이 몸이 달아올랐다. 이래저래 수소문 해 보니 문노가 한미한 혈통이기는 해도, 남들이 다 짐승남이라 하는데다 먼발치로 여러 번 지켜보니, 몸매 죽여, 칼싸움은 최고라, 한마디로 완벽남 그것이었다. 저런 남자는 내것으로 만들고자 말겠다는 정념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어찌어찌해서 주군 세종한테 개끌리듯 혼례장에 끌려나온 문노는 신방을 차리고는 윤궁을 맞아들이기는 했으나, 천하를 칼 한 자루로 호령한 이 사내도 막상 얼어붙고 말았다. 모든 면에서 자기랑은 비교도 아니되는 당대 최고 가문의 여자, 것도 재상 거칠부의 딸을 떡 하나 마주하고 보니, 방에서도 마누라 앞에서 “예, 예” 하고 굽신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거칠부의 딸이 이제 마누라가 되자, 이러쿵저러쿵하던 말들도 쑥 기어들어갔다. 문노를 하찮게 보던 시선도 눈에 띠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마누라 윤궁이 단 한방에 눌러버린 것이다. 이렇게 되니, 마누라가 서서히 이뻐 보일 수밖에....




마누라가 이뻐 보이니 세상이 달라졌다. 나도 이젠 벼슬도 좀 해야겠다고 마음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쿠데타 주역이라 이제는 관직에도 진출하고, 관직이 높아지니, 그에 따라 부상이 주어졌다. 마침내 골품을 얻은 것이다. 


여자를 몰랐고, 벼슬을 몰랐던 문노는 돈 많고 권력 있는 과부 만나 출세까지 거듭한 데다, 슬하에 아들 셋을 두었으니, 개중 막내아들 금강金剛은 만인지상 일인지하 상대등까지 올랐다. 금강은 김유신 직전 상대등이었다. 


많은 남자가 돈 많고 명 짧은 과부를 선호한다지만, 돈도 많고 권력도 높고, 명이 길어도 윤궁 정도면 왔따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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