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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 & 漢文&漢文法

매화, 오백년간 보고 싶은 님

by taeshik.kim 2019.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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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250)


유후촌 『매화백영』 시에 화답하다[和劉後村梅花百詠] 75번째


[宋] 방몽중(方蒙仲) / 김영문 選譯評 






옛 친구들 스러지고

새 친구 드물지만


오로지 매화만

곳곳에서 의연하네


흰 머리 자라서

삼천 길 될 때까지


고매한 꽃 오백 년 간

싫도록 보고 싶네


舊友凋零新友少, 惟梅到處只依然. 願言白髮三千丈, 飽看高花五百年.



금둔사



매화는 추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고고하게 일찍 피는 품성 때문에 지사(志士)의 고결한 절개를 상징한다. 남북조시대부터 눈속 매화를 읊은 시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수당(隋唐) 이후에는 더욱 많은 시인들이 매화의 깨끗하고 곧은 기상을 노래했다. 


또 송대 이후로는 ‘사군자’를 읊거나 그리는 문인들이 늘어나면서 ‘매화백영(梅花百詠)’이란 제목을 걸고 시를 짓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적지 않은 문인들이 ‘매화(梅花)’라는 한 가지 소재로 100수의 서로 다른 연작시를 지었다. 송대의 진관(秦觀)과 유극장(劉克莊), 원대의 풍자진(馮子振), 명대의 축윤명(祝允明), 이강(李江), 중봉대사(中峰大師), 청대의 도덕훈(陶德勳) 등이 모두 ‘매화백영’ 시를 창작했다. 



금둔사



뿐만 아니라 이미 다른 사람이 지어놓은 ‘매화백영’에 화답하는 시를 짓는 시인도 나타났는데, 송 유극장의 시에 화답한 방몽중(方蒙仲), 원 풍자진의 시에 화답한 청 왕부지(王夫之), 명 중봉대사의 시에 화답한 이확(李確) 등이 그들이다. 


이 시는 송 방몽중이 유극장(유극장의 호가 後村임)의 ‘매화백영’에 화답한 시다. 제목에 ‘화(和)’ 자가 붙었다고 모두 화운시(和韻詩)는 아니다. 이 두 사람의 시를 비교해봐도 같은 운목의 운자를 쓰지 않았다. 시 형식에서도 유극장의 ‘매화백영’은 칠언율시인데 비해 이에 화답한 방몽중의 시는 칠언절구다. 



낙안읍성



매화를 사람으로 여겨 사귐의 대상으로 삼는 일은 역사에서 찾아보기 어렵지 않다. 매화, 대나무, 소나무를 ‘추위 속 세 벗(歲寒三友)’으로 부르는 경우가 그것이며, 북송의 은일처사 임포(林逋)는 심지어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아들로 삼는(梅妻鶴子)’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게다가 우리나라 조선시대 대학자 퇴계 이황은 매화를 존경하며 ‘매형(梅兄)’이라고 불렀다. 


나이 들어 친한 벗들이 세상을 떠나고, 새 벗을 사귀기도 어려운 처지에서 젊어서부터 사귀어온 오랜 벗 매화만이 변함없이 시인을 반겨준다. 같은 색깔, 같은 향기, 같은 자태로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세속의 벗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하지만 인생은 백 년도 채우지 못하는 법(生年不滿百), 인간은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난다. 



낙안읍성



백발이 삼천 길 될 때까지 길게 자라도록 살아서 적어도 오백 년 동안 이 고결한 친구와 벗하고 싶지만 이 소망은 이루어질 수 없다. 인간의 삶이 유한하므로 해가 갈수록 매화와의 사귐이 더 아쉽고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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