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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모든 이별은 슬프다" 일찍 떠나지 못해 후회스럽다는 아르센 벵거

by taeshik.kim 2021.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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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이상 장기 독재하기는 알렉스 퍼거슨이나 아르센 벵거가 마찬가지지만 감독 은퇴 이후 그렇게 헌신한 클럽과의 관계에서 두 노친네는 확연히 다른 길을 걷는다.

퍼거슨이 곧바로 맨유 보드진으로 진입하고 현재도 선수 영입이나 감독 선임을 비롯한 구단 운영에 깊이 개입하니 근자 사례로 호날두 본인이 실토했듯이 맨시티로 이적하려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맨유로 돌려세운 이는 퍼거슨이라는 사실이다.

 

벵거 아웃을 외치는 구너스 



하지만 벵거는 2018년 에미리츠 스타디움을 떠나고서 현재는 FIFA에서 중요 직책을 맡아 월드컵 격년개최 개혁안을 도출하며 언론지상을 장식하나 유의할 점은 은퇴 이래 지난 삼년간 단 한 번도 런던을 찾지 않았다는 대목이다.

오죽 저짝에서 클럽 관련 행사가 많으며 그런 자리에 왜 아스널이라고 레전드 매니저인 그를 초대하지 않았겠는가?

나는 내심 그가 집권 말기에 적지 않은 상처를 받은 까닭이라 의심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저럴 수가 없는 까닭이다. 더구나 그의 은퇴가 확정될 무렵 아스널은 그에게 보드진 한 자리를 제의했지만 그는 그라운드를 떠날 수 없다는 이유 등등을 들어 거절하고는 런던을 떠났으니 말이다.

간단히 말해 그와 아스널의 이별은 아름답지 못했다. 특히 구너스 팬들은 그에게 몹쓸 짓을 했으니 20년 넘게 구단에 헌신하며 아스널 황금기를 이룩한 그를 경멸하며 경기장 곳곳에는 Wenger out이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막상 떠난다니 고맙다는 구너스 



떠날 시점엔 비록 스타디움에서 박수갈채를 받기는 했지만 그에게 팬들이 다시 박수를 보내기는 그가 그 시즌을 끝으로 감독직에서 내려온다는 발표를 하고 나서였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데, 그 무렵 어느 인터뷰에서 그는 벵거 아웃을 외치던 팬들이 이제는 박수를 보내지 않느냐고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그 모습에서 환멸을 봤다.

철권통치를 자랑한 퍼거슨 역시 오죽 굴곡이 많았는가? 그럼에도 성적이 아주 좋지 않을 때도 퍼거슨 아웃이라는 구호는 없었다. 더구나 이 노인네 성정은 신사 같은 벵거와는 달리 불 같아서 걸핏하면 선수들한테 흉기나 다름 없는 물건을 집어던지기도 하고 프렌차이즈 스타 데이비드 베컴이 유명 여가수랑 사귀고 머리스타일을 튀는 쪽으로 바꿨다 해서 헌신짝처럼 레알에 팔아버리기도 했다.

비록 그런 행태에 불만이 있기는 했겠지만 어느 누구도 퍼거슨 아웃을 외치지 않았다. 구단을 위한 헌신을 알기 때문이라 나는 본다.

 

아스널을 고별하는 벵거 



벵거 집권 초중기는 그야말로 영광이 점철했다. 03-04 시즌에는 지금도 깨지지 않는 무패우승을 이룩했고 무수한 타이틀을 안겼으니, 다만 하나 그런 그에게스 챔스 타이틀만 없다.

그 극강의 전력을 구가하던 시절 챔스 결승에 오르기는 했지만 옌스 레만이 퇴장당하는 불상사에서 1대2로 져 분루를 삼키기도 했다.

아르센 제국은 아스널이 하이버리를 떠나 지금의 에미리츠스타디움을 건설하기 시작하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부족한 재원 마련을 위해 주축선수들을 하나둘씩 팔아제끼고 마침내 티에리 앙리와 세스크 파브레가스, 그리고 로빈 반 페르시가 떠나면서 그의 제국도 붕괴했다.

지금도 많은 이가 반 페르시의 맨유 이적을 선수 탓으로 돌리지만, 문제는 그가 왜 같은 epl 라이벌로 이적했느냐 하는 이유라, 이는 반 페르시 본인도 여러 번 이야기했듯이 구단이 미래를 제시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숨겼지만 반 페르시는 선수단 보강을 요구했지만 구단은 아무런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를 기회로 잽싸게 잡은 이가 퍼거슨이었다. 마침 퇴락 기미가 있던 맨유는 계약 만료가 다가오는 반 페르시에 접근해 영입에 성공했으니 6개월 남은 그를 벵거는 라이벌팀에 팔아버릴 수밖에 없었다.

 

라이벌이었지만 상호 존중을 잃지 않은 벵거와 퍼거슨 



그를 팔 때, 그리고 팔고 나서 벵거는 반 페르시가 해외 다른 구단, 예컨대 psg 같은 데로 갔으면 했다 했다. 이 말의 맥락을 사람들은 읽지 못했다.

그도 어쩔 수 없었으니 보란듯이 맨유로 이적한 반 페르시는 그 자신 다시 epl 득점왕에 오르고 맨유에는 epl 타이틀을 안겼으니 이 모습을 바라본 벵거의 심정은 어땠겠는가?

아르센 제국의 몰락은 철저히 구단주 탓이다. 짠돌이 미국인 구단주 크란케 이 영감에서 비롯한다.

아주 가끔 외질과 같은 초특급 스타를 영입하기는 했지만 언제나 단발이라 자체 육성한 어린선수들도 좀 크기만 하면 팔아치웠다.

나는 저 무렵에 벵거가 미련없이 아스널을 떠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끝까지 게속 자리를 지키다 나중에는 우리가 아는 그 험한 꼴들을 당했다.

물론 혹자는 왜 아르센 본인이 왜 더 강하게 구단에 대해 선수영입을 몰아부치거나 요구하지 못했을까 하겠지만, 이 점에서 나 역시 조금은 아쉬움이 있어, 그의 인터뷰를 죽 지켜보면서 내가 조금 의아했던 점이 그의 발언들은 때로는, 아니 아주 자주 감독이 아니라 구단 경영진으로서 한다는 인상을 짙게 받곤했다.

간단히 말해 저런 말은 감독이 할 말은 아닌데??? 하는 느낌을 자주 받곤 했다는 뜻이다.

 

벵거와 딘 


저와 같은 현상은 그 구단과 자신을 일체화할 때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라,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아 저 사람은 단순히 head coach가 아니라 진짜로 manager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했더랬다.

같은 축구 감독이라 해도, 퍼거슨이나 벵거 급을 우리는 매니저라 부른다. 그렇지 아니하는 감독들은 그냥 헤드 코치 정도로 부르고 만다.

헤드 코치가 뭔가? 코치진 중에서 그들을 감독을 최고 책임자라는 뜻이며, 그에는 매니저라는 관념이 없다. 매니저 정도로 부르는 감독은 구단 경영에도 간섭하며 참여한다. 그 점에서 벵거는 천상 매니저였다.

그런 그가 최근 the Telegraph와의 인터뷰를 통해 아스널 시절을 회고하며 짙은 회환이 담긴 말들을 쏟아낸 모양이다. 내가 예상한 딱 그대로다.

이 인터뷰를 간단히 추리자면, 그 자신이 좀 더 일찍 아스널을 떠났어야 한다는 회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왜 안 떠났을까? 그 말이 해답이다.

"저는 저 자신을 완전히 클럽과 동일시했죠. 그게 제가 저지른 실수였죠. I identified myself completely with the club - that was the mistake I made"

 

FA컵 우승 때인 듯


말은 이어진다.

"제 치명적 약점은 내가 지금 속해 있고, 과거에 속했던 거기를 너무 사랑한다는 것이죠 제가 그게 후회스러워요. 다른 자리를 찾아 떠났어야 했죠. My fatal flaw is I love too much where I am... where I was. I regret it. I should have gone somewhere else."

다음 논급은 어찌 옮겨야 할지 자신이 없어 그대로 원문만 제공하지만, 러브 스토리 결말은 언제나 슬프다는 말이 어째 가슴을 친다.

"All the rest is purely emotion, and that is less important. It is the end of your life - at least of one life - like a funeral. The end of a love story is always sad."

"가끔 이런 생각을 해요. 무패 우승한 스 기즌에 뭔가 잘못되지 않았을까? Sometimes I wonder - was something broken after that Invincible season?'

 

뭔가 판정에 불만인 듯


"2007년은 중요한 포인트였죠. (제가 아스널 부임 이후) 처음으로 보드진에서 긴장이 돌았죠. 클럽에 충성할 것인가 아니면 데이비드 딘을 따를 것인가 하는 문제로 고통스러웠죠. 2007 was a decisive point. It was the first time I could feel there were tensions inside the board. I was torn between being loyal to the club and being loyal to David [Dein]."

그가 말한 데이비드 딘이란 그를 절대로 지지한 아스널 이사로, 그 무렵에 아스널을 떠났다.
결국 그는 남았다.

그 사이 프랑스대표팀 감독 제의도 있었으며, 잉글랜드 대표팀을 맡아달라는 제안도 두세 번 있었다고 한다. 레알 마드리드 감독 제의도 두 번 왔다. 유벤투스에서도 손을 내밀었고 파리생제르망은 익히 알려진대로 그에게 감독 제의를 했다.

이건 잘 드러나지 않는데 심지어 맨유에서도 감독 제의가 왔단다.

 

아스널에서 늙었다


이 인터뷰가 왜 나를 격발하는가? 그가 저에서 겪었다는 저 굴곡이 어쩌면 내 자화상이기 때문이 아닐까?

나 역시 끊임없이 자문했다.

"좀 더 일찍 문화재를 떠났어야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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