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漢詩 & 漢文&漢文法

모진 추위에 생각하는 버드나무 봄

by taeshik.kim 2019. 2. 3.
반응형

한시, 계절의 노래(262)


모진 추위 세 수[苦寒三首] 중 첫째 


[南宋] 양만리(楊萬里, 1127 ~ 1206) / 김영문 選譯評 



저번주말 남도 어느 바닷가 양지바른 곳이다. 벌써 봄이 시퍼렇게 피어오른다.




심한 더위엔 오랫동안

눈 덮어썼으면 생각하나


모진 추위엔 버드나무에

봄 돌아오길 소원하네


저녁 되어 비낀 햇살

그리 따뜻하진 않으나


서쪽 창에 비쳐드니

심신이 흡족하네


畏暑長思雪繞身, 苦寒卻願柳回春. 晚來斜日無多暖, 映著西窗亦可人.



저번 주말 남도 어느 해안가 양지바른 곳. 봄은 이파리에 오른다.



겨울에 더러 아파트 베란다에 나가 해바라기를 즐기곤 한다. 여름에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그렇다고 북유럽 사람들처럼 발가벗고 누워 있는 건 아니니 과한 상상은 마시라. 온몸에 스며드는 햇살이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다. 시골에서 자란 분들은 창호지 격자문에 비쳐드는 노란 햇살을 본 적이 있으시리라.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빛이 아닌가 한다. 


이 시 셋째 구와 넷째 구에도 그런 느낌이 잘 살아있다. 서쪽 창으로 비낀 저녁 햇살의 실제 온도가 그렇게 높지는 않겠지만, 사람의 심리에 와닿는 따뜻함은 봄날 그 이상이다. 요즘은 시골에도 창호지를 바른 문을 찾아보기 어렵다. 있다 해도 처마 앞에 긴 차양을 설치한 탓에 햇살이 직접 방안에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앞 거랑에서 썰매를 타다가 논둑 밑에 앉아 쬐던 겨울 햇살도 따뜻하기로 치면 둘째 자리를 사양한다. 거기에 작은 모닥불이라도 피우면 얼음에 젖은 신발과 양말이 금새 마를 정도다.


모든 현대식 난방설비가 아무리 성능이 좋다 해도 태양이라는 난로보다 뛰어날 수 없다. 가령 일주일만 흐린 날이 계속된다고 가정해보자. 메스컴에서는 당장 이상기온이 뭐니 특집 보도를 하며 내일이라도 빙하기가 닥쳐올 것처럼 호들갑을 떨 터이다. 태양은 자연과 인간을 존재하게 하는 근본 에너지원이다. 



논두렁에 오른 봄



지구에서 전개되는 거의 모든 자연 질서는 태양과 관련되어 있다. 『천자문』에 “추위가 닥쳐오면 더위는 물러간다(寒來暑往)”라는 대목이 있다. 본래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 나오는 말이다. 『주역』의 점술 원리는 천지자연의 운행질서에 바탕을 두고 있다. 매우 단순하다. 어떤 서양 스님 말씀처럼 너무나 “심플(simple)”하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이 유명한 시구들이 모두 『주역』의 원리를 설파한다. 『주역』은 신비화해서도 안 되고 신비화할 것도 없다. “하늘(乾), 못(兌), 불(離), 우레(震), 바람(巽), 물(坎), 산(艮), 땅(坤)”의 엇섞임이 그냥 자연과 인간의 일상이다. 모든 진리는 일상으로 귀결된다.


여름에 불볕더위가 계속되면 겨울의 빙설을 생각하기 마련이며, 동장군이 위세를 떨치면 봄날의 따뜻한 햇살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인지상정이다. 이 시는 몹시 추운 날 서쪽 창에 비쳐든 저녁 햇살을 받고 행복해하는 일상의 인지상정을 아무 과장 없이 묘사했다. 


시를 읽는 사람 마음도 안온하고 흐뭇해진다. 디오게네스도 자신에게 왕림한 알렉산더 대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햇볕을 가리지 말고 저리 비켜서시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