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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무주 용포리 노고산 봉수 발굴조사(상보)

by taeshik.kim 2020.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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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무주군·전라문화유산연구원 《무주 용포리 노고산봉수 문화재 발굴조사 약식보고서》(2020. 12)에 의하며 그것을 절록한다. 

 

구글어스로 본 노고산유적

 

Ⅰ. 조사개요

  1. 조 사 명 : 무주 용포리 노고산 봉수 발굴조사
  2. 조사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용포리 산54번지 일원
  3. 허가번호 : 제2020-1580호
  4. 조사기간 : 2020년 08월 10일 ~ 2020년 12월 10일(실조사일수: 16일)
  5. 조사목적 : 종합정비
  6. 발 주 처 : 무주군
  7. 조사기관 : (재)전라문화유산연구원
  8. 조사면적 : 249㎡
  9. 조사단 구성      
     단      장 : 천선행(원장)
     책임조사원 : 천선행(원장)
     조  사  원 : 박춘규(조사연구2실장) 
     준조사원 : 이용욱(연구원)                 :     
     보  조  원 : 손예린(연구원)

 

노고산 유적

 

 10. 조사경위 및 경과 
2000년대 초반 군산대학교박물관에서 진행한 전북 동부지역 가야문화유산관련 지표조사를 통해 처음 확인되고 2018년에 발행된 전북가야사 및 유적 정비 활용방안 연구용역 보고서에도 현황이 재확인됐다. 무주군은 전북가야사 발굴조사 및 정비사업 일환으로 동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를 계획하고, 이를 바탕으로 향후 복원정비 등 유적 보존과 활용방안 수립에 필요한 기초자료를 확보하고자 했다.

 

이에 2020년 8월 10일 무주군과 발굴조사 계약을 한 (재)전라문화유산연구원이 동년 11월 17일에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마무리 시점인 동년 12월 9일 유적 처리방안 및 성격 파악을 위한 학술자문회의를 열어 봉화대와 불을 피운 시설, 그리고 봉화대를 보호한 시설로 추정되는 석렬石列 존재를 확인했다. 

 

노고산유적 석렬

 

Ⅱ. 조사내용

노고산 봉수는 무주읍 용포리 산45번지 일원 노고산(551m) 정상부에 위치한다. 용포리는 금강 지류인 남대천과 적상천, 삼류천 등이 합류하는 곳이라 수륙교통 요지로 곳곳에 봉수와 산성이 분포한다. 노고산 봉수를 기준으로 북동쪽에는 추동마을이 삼류천 주변으로 형성되며, 북쪽으로는 금강을 따라 요대마을이 위치한다. 현재 노고산 봉수가 있는 정상부는 절벽지대인 동쪽부를 제외하면 북동쪽, 북서쪽, 남쪽과 연결되는 등산로가 자리하지만 사람 왕래는 거의 없다. 

 

노고산 봉수는 전북 장수를 시발로 무주군을 거쳐 충남 금산군까지 연결하는 봉수로상에 위치한다. 북쪽으로는 가당리 수로봉 봉수, 읍내리 향로봉 봉수와 남쪽으로는 굴암리 조항산 봉수, 방이리 구리골산 봉수, 삼락리 지장산 봉수와 연결된다(8km 안팎). 노고산 정상에 봉화대가 있었다는 마을 주민 전언이 있다. 

 

노고산유적 축대 석렬

 

조사면적 249㎡는 평면 방형에 가깝다. 표토층 아래로 암반쇄석물이 포함된 회색사질점토층-풍화암반층·자연암반층(생토층)이 확인됐다. 연대(???) 안쪽으로는 회백색사질점토 다짐층과 흑갈색 사질점토층이 단면 ‘U’자형으로 드러난다. 또한 연대와 2차 기단 사이에는 연대 안쪽의 회백색사질점토 다짐층과는 점질에서 차이가 있는 회백색사질점토층이 드러나기도 했다. 

 

방호시설은 정상부 외곽에 위치한다. 자연암반층 또는 풍화암반토 등을 다듬은 후, 그 위에 다듬지 않은 부정형 깬돌을 이용해 최대 4단으로 쌓은 것으로 보이며, 그 안쪽에는 석재와 흙을 채워 평탄면을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평면 말각장방형 모습을 띠며, 방호시설 외곽으로는 봉수 폐기 후 무너진 석재 등이 표토층 아래 또는 섞여서 확인된다. 남쪽과 북쪽 지점 기단은 4~6단이 남은 상황이며, 동쪽 지점 기단은 자연암반층 또는 암반쇄석물 위에 1단 정도가 보인다. 잔존규모는 장축 15m, 단축 9m. 

 

노고산유적 평면도



기단시설은 방호시설 안쪽으로 300cm 떨어져 위치한다. 자연암반토를 다듬은 후, 그 위에 소형 깬돌을 이용해 기초를 마련하고, 중간 크기 깬돌 등으로 축조했다. 상부에 드러난 석재는 1단만이 남았고, 바깥쪽으로 무너진 석재가 다량 확인되기도 한다. 3차 기단과 연대 사이는 소형의 암반쇄석물과 회백색토로 채웠다. 잔존규모는 장축 11m, 단축 6m.

 

봉화대는 조사지역 최중심부에 위치하며 평면 장방형이다.자연암반토을 다듬은 후, 그 위에 소형 할석을 기초로 이용했으며, 중형 할석 등을 이용했다. 내부에는 장타원형 수혈유구가 잔존하며, 회색사질점토를 이용한 다짐토를 내부에 채웠다. 다짐토 내부에는 일부 목탄 흔적이 확인되며, 상부에 드러난 석재는 1단만 남았다. 잔존규모는 장축 7.8m, 단축 4.7m.

유물은 2차 기단석렬을 조사하는 과정 중에 출토된 토기편이 있다. 저부편 1점, 동체부편 3점이며, 외면에는 종방향 선문이 조밀하게 타날되었다. 

 

출토토기류. 6세기 초반 가야토기로 분류한다. 



평면형태 및 축조방법, 유물 등의 조사결과를 통해 살펴봤을 때, 최초 삼국시대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무주군과 인접한 장수군에서 발굴조사가 진행된 장수 원수봉 봉수, 장수 영취산 봉수, 장수 봉화산 봉수에서는 용포리 노고산 봉수와 유사한 형태 기단시설이 확인되며, 내부에서는 삼국시대 토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점은 무주군과 장수군에 걸친 봉수로 등이 동일한 세력에 의해 조성되었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

 

김태식 평

 

관건은 크게 두 가지로 본다. 

 

첫째 축조시기 

둘째 유적성격

 

첫째 축조시기와 관련해 이번 발굴성과는 오직 삼국시대, 특히 6세기 초반 무렵 가야토기로 분류할 수 있는 삼국시대 토기만이 출토했다는 점에서 그것을 출토한 유적 또한 삼국시대, 혹은 가야시대 흔적으로 보아야 한다. 이는 전북 동북지역에서 확인한 이른바 봉수유적 연대판정에도 긴요할 수 있다. 이번 발굴 가장 큰 의미는 이것이라고 본다. 

 

둘째 유적성격이 문제거니와, 저 유적을 과연 봉수대로 볼 수 있느냐 하는 데 대해서는 나는 판단을 유보한다. 그러기에는 이것이 봉수대다! 하는 명확한 흔적을 내가 동의하기는 힘든 까닭이다. 

 

저에 대해서는 반론이 적지 않거니와, 예컨대 그 입지 여건으로 볼 적에 와치타워 watch tower 같은 성격으로 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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