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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미라와 북극 (8)

by 초야잠필 2019.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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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 (서울의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학연구실)


*오늘로 제 블로그 연재가 100회를 넘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University of Alberta 팀의 연구 결과-특히 납중독에 관한 이론에 대한 반박은 중독이 정말 항해기간 동안 섭취한 깡통음식에 의해서만 이루어졌겠는가 하는 점이었다. 특히 뼈로 검출한 납의 축적량은 단기간-항해기간에 해당하는 2년-보다는 보다 장기간에 걸쳐 축적된 결과였던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좀 더 믿을 만한 결론을 위해서는 뼈보다는 선원의 연부조직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기회는 1984년에 찾아왔다. King Island 주변 Beechey 섬이라는 곳에는 프랭클린 원정대가 난파하기 전에 사망한 선원의 무덤이 있었는데 원정대의 정확한 사망원인 분석을 위해 이 무덤의 발굴 허가가 난 것이다. (이미 죽어 땅에 묻힌 원정대원의 사망원인 분석이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겠지만 영미권 국가에서 정확한 사망원인을 밝히지 못한 경우 이를 밝히기 위해 의학적 부검은 필수적인 측면으로 강조되는 부분이 있다. 아무래도 우리와는 문화적 풍토가 다르다 할 것이다.) 




이 무덤을 발굴한 결과-. 선원들은 한 세기가 넘게 그대로 영구동결층에 만든 무덤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이들의 보존상태는 그야말로 완벽했다고 할 수 있는데 너무 생생하게 보존되어 보는 사람에 따라 혐오감을 줄 수도 있으므로 여기에는 사진의 링크만 아래에 첨부한다. 


https://usercontent1.hubstatic.com/8774794.jpg


이 섬에 묻힌 선원 세 명의 부검을 통해 얻은 결론은 앞에서 얻은 뼈에서의 결과와 일치했다. 머리카락에서도 매우 높은 납 축적이 확인되었으므로-. 적어도 이들 선원들은 머리카락이 자라는 기간 동안은 확실히 다량의 납을 섭취한 것이다. 항해 중 선원들이 납을 많이 섭취할 기회란 결국 깡통의 납땜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은 물론이다. 


영구동결층에서 그대로 미라화해 버린 선원에 대한 부검 결과는 학계에 보고되었다. 대체로 극지에서 형성되는 다른 미라와 크게 다르지 않은 보존 상태를 보여주었는데 부검 당시 얻은 결과는 극지에서 형성된 사람 시신의 보존과 관련하여 법의학 등 관련 학자들에게는 귀한 자료가 되었다. 


이 학술보고 결과는 Springer에서 단행본으로 1996년에 출판되었다. 


https://www.springer.com/gp/book/9783211826591



20세기 들어 밝혀진 프랭클린 원정대의 최후의 모습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그린랜드에서 마지막으로 확인된 프랭클린 원정대는 캐나다 북쪽 해안지대로 접근했다. 여기서 북위 77도까지 북상했다가 후퇴, 전술한 Beechey 섬에서 겨울을 난 것이 1845년. 이때 앞에서 말한 선원 3명이 사망하여 이 섬에 묻혔다. 


그 후 2년간 프랭클린 원정대 경로는 위 그림 4번 (Beechey섬)에서 5-6번(King William 섬)으로 이동한 것 뿐이다. 그리고 King William 섬에 갇혀 두번째 겨울을 맞다가 마침내 배를 포기하고 어디론가로 이동해 버린 것이다. 이때까지도 선원들은 원정대로서의 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다고 할 수 있다. King William 섬에 원정대의 남은 인원 중 가장 선임자가 자신들이 배를 버리고 이동한다는 것을 적은 메모를 남겼기 때문이다. 이들이 싣고간 식량 양으로 볼 때 일찌감치 오래 전에 식량은 모두 소모되었을 것이다. 


절망속에서 무려 2년을 더 북극해에서 버틴것이다. 이들은 실날 같은 희망이나마 구조대를 기다리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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