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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변형은 종기가 아니다

by taeshik.kim 2019.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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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 우리 문화재 현장에 통용하는 변형이라는 말이 좋게 다가오는 일은 없다. 

그리하여 언제나 말하기를 이 문화재는 창건 당시 모습에서 잦은 변형을 겪었다고 하면서, 그 무수한 변형들을 무엇인가 정상적인 것들을 방해하거나 훼방한 비틀기로 간주한다. 

그런 까닭에 우리네 문화재 현장에서 변형은 언제나 우리가 수술을 통해 바로잡거나 제거해야 할 종기로 통용한다.  

더불어 그런 까닭에 변형은 언제나 훼손과 동의어다. 


이런 변형관觀, 곧 변형에 대한 생각은 그런 까닭에 변형 저편, 훼손 이전 상태를 필연적으로 이상향으로 상정한다. 

이 이상향을 우리네 문화재 현장에서는 원형이라는 말로 치환하며 무한한 찬사를 바친다. 그곳은 서방극락정토요 천국이다.  


원형이라는 말이 성립가능한지는 잠시 차치하고, 이 원형은 거의 해당 문화재가 그 자리에 등장한 첫 시기의 모습을 말한다고 봐도 대과가 없다. 

이를 한국 문화재현장에서는 거의 예외없이 원형으로 간주한다. 


이 원형이 국내 문화재현장에서는 학문 분파별로 보면 거의 고건축학계 전유물처럼 통용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원형을 가장 많이 팔아먹는 부류가 고건축학계다. 

혹자는 고고학계를 들기도 하나, 의외로 고고학계는 이 원형 논쟁 혹은 원형을 둘러싼 토론에서 배제되어 있다. 

뭐 성곽을 예로 들건대, 그 원형을 둘러싼 논쟁은 언제나 고건축 혹은 그 이종사촌들인 정비업계 사안이지 결코 고고학 사안은 아니다. 


건축이면 건축이지 고건축은 뭔가하면, 그네들이 주로 연구대상으로 삼는 것이 오래된 건축물이라 해서 이리 이름하곤 하는데, 고古건축이라는 명칭에서 벌써 이 건축업자들은 필연적으로 원형을 팔아먹는 구조일 수밖에 없는 숙명을 안는다.  

이들에게는 해당 건축물 중에서도 古한 것만을 추려내서 그것을 원형이라 간주하면서, 그것을 돌아가야 할 이상으로 삼는다. 

따라서 이들에게 이 창건기 모습과 치환한 원형에 변화를 가하는 그 어떠한 행위도 변형으로 간주되기 십상이라, 실제 무수한 현장에서 이런 변형들은 종기로 취급되어 가차없이 수술대에 올라 성형수술을 받는 지경에 이른다. 


오늘 문화재청에서는 고성 최동북단 감시초소(GP)」등 4건 문화재 등록이라는 제하 보도자료를 배포했거니와, 이를 보면 해당 문화재위원(근대분과)이라는 자들이 현장을 조사하고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에 제출한 조사보고를 보면 다음과 같은 항목이 들었으니 


원형보존·변형 및 노후화 상태


이를 통해서도 우리네 문화재현장에서 원형이라는 괴물이 어떠한 위력을 발휘하는지 여실히 본다. 

이 항목에 대해 현지 조사를 했다는 문화재위원 셋 중 한 명은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 최초의 건립시기부터 지금까지 여러 차례의 증개축이 있어 왔지만 원래의 구조를 훼손, 철거하면서 이루어지지는 않은 것으로 보임. 단, 주요 구조부위는 대체적으로 남아 있으나 예를 들어, 내무반의 가구, 감시장비 제어실의 장비들, 철조망 등 이곳에 구비되었던 최후의 모습들 중 제거된 요소들이 있음


"최초의 건립시기부터 지금까지 여러 차례의 증개축이 있어 왔지만"?

왜 역접인가? 

이 대목이 순접이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가 있는가? 

예컨대 이 대목은 이렇게 기술될 수도 있다. 


(이들 감시초소는) 처음 건립된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간단없는 개보수가 이뤄졌다. 당연히 그 시대 요구에 맞춰 그에 걸맞는 옷을 끊임없이 갈아입은 것이다. 이런 간단없는 개보수는 이들 감시초소가 태동해서 살아움직인 그 시대의 생생한 흔적들이다. 

 

변형은 떼어내야 할 종기가 아니다. 그것은 수술대에 올라 흉터조차 남지 않아야 할 군더더기가 아니다. 

변형을 없애고 창건기로 돌아가 그렇게 남은 앙상한 뼈다귀만이 원형일 수는 없다. 

원형은 성립할 수도 없고, 성립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문화재를 좀먹는 악성 종양이다.  


문화재는 원형이라는 창건기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그것은 시종일관 현재에 못 박아야 한다. 

지금, 여기를 기준으로 과거와 미래를 오가야 한다. 

문화재가 존재하는 이유는 현재 때문이지 과거 때문도 아니요 미래 때문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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