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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송은의 뮤지엄톡톡

보은 삼년산성(報恩 三年山城)

by 여송은 2021.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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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일 : 2021년 5월 1일(토)

날   씨 : 흐림, 때때로 비 

장   소 : 보은 삼년산성 
기   분 : 뿌듯해요 

 

충청북도 보은군에 있는 삼년산성(三年山城)에 다녀왔다. 

삼년산성~~삼년산성~~ 이름은 많이 들어 봤는데, 내가 여기를 다녀 올 줄이야?! 

 

『三國史記』 에는 성을 쌓는데 3년이 걸려 '삼년산성(三年山城)'이라 부른다 기록되어 있고, 『세종실록지리지』충청도/청주목/보은현에는 '오항산석성(烏項石成)'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 · 『충청도읍지』에는 '오정산성(鳥頂山城)'으로 기록되어 있다.

삼년산성 배치도
삼년산성 배치도

【답사코스】 1.8km
1번(서문지)-3번(아미지)-4번(암각자)--->
11번(서북치성)--->6번(보은사, 화장실)--->
10번(북동치성) ---> 9번(동문지) --->
8번(남동치성)--->7번(남문지) 

 

【소요시간】

2시간 30분
(천천히 걷고, 이야기 듣고, 사진 찍고, 열심히 보느라) 

 

산성 한 바퀴를 도는 동안 날이 맑았다, 추웠다, 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했다.

 

삼년산성 서쪽 성벽(산성 밖에서 본 모습)
삼년산성 서쪽 성벽(산성 안에서 본 모습)


왜 삼년산성을 쌓았을까?
삼년산성은 신라가 삼국통일의 전초기지로 쓰려고 심혈을 기울여 축조한 요새였다. 자비 마립간 13년(470)에 완공했는데, 성을 쌓는 데 화강암 약 1천만 개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5세기 한반도는 백제와 신라가 연합해 고구려의 남진을 저지하던 시대였고, 그래서 견고한 성이 필요했기에 산성을 축조했다고 한다.

‘蛾眉池(아미지)’ 라는 글자가 새겨진 암각자 / 암각자 맞은 편에 눈썹모양(반달모양)의 연못이 있다.

 

아미지(蛾眉池) / 지금은 풀만 무성히 남아있다. 서문지를 들어서자마자 서쪽 성벽 뒤로 바로 보인다. 여기서 채석해서 석성에 쓰일 돌을 얻었다 한다. 설마 여기에서 모두 수급은 아니겠지?? 석성의 둘레가 1.8km정도 이고, 높이가 보통 8m에서 높은 곳은 20m되는데...

 

납작납작 판판한 돌로 쌓았다. 이렇게 평평한 돌로 쌓은 것이 삼국시대 신라 석성의 특징이라 한다. 다른 신라 석성을 보지 못했음으로, 직접 보고 확인해 봐야겠다. 중간에 줄이 맞지 않거나 색이 다른게 보이는데 무너져 후에 새로 쌓은 것이다.

 

무너진 석성으로 드러난 내부 / 겉면은 납작한 돌을 줄맞추어 쌓았는데 속은 조금 덜 납작한 돌들로 덜 줄맞추어 쌓았다.

 

 

동문지 / 동문지는 산성에서 가장 긴 동쪽 성벽 중앙에 있다. 여기에는 성벽을 관통하는 수구(水口)가 있다.

 

동문지 안내판
동쪽 성벽 / 전체 높이가 약 20m정도라 한다.


성벽의 경사도가 거의 80도(?) 정도 되어보인다. 경사도가 크고, 성벽도 높아 보고 있으면 아찔하다.
와 정말 어찌 저렇게 성을 쌓았을까.
납작돌들이 촘촘히 쌓여있는데, 보면 앞면을 맞춰 쌓아 면에 매끈매끈하다. 갈코리 같은것도 하나 걸릴 것 같지 않아 숨이 턱 막힌다.

동쪽 성벽

 

이렇게 보니 성벽 높이가 실감이 난다. 어마어마하게 높구나?


중요한 물구멍!
역시 어딜가나 건물에서는 물빠짐이 가장 중요하다.
만약에 산성안에 물이 빠지지 않고 고인다면?
당연히 물이 고여 지반이 약해지고, 성이 무너지겠지?
또 고인 물이 한겨울 액체가 얼으면서 팽창해(초등3 과학에 나와요), 성이 무너지겠지?
이래저래 물은 잘 빼내줘야 한다.

아래 사진은 동쪽 성벽을 관총하는 수구이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곳으로 흐르기때문에 당연히경사지게 만들었고, 속 안을 보면 경사에 턱을 주어 만들었다. 턱을 준 이유는 혹시 저 구멍을 통해 적이나(몸집이 정말 작아야 할듯?) 들짐승이 들어 올 것을 대비해서라 한다. 턱이 있어 몸이 걸리기 때문에 구멍을 통과하지 못하고, 뱀 같은 연체 동물만 통과할 수 있다.

동쪽 성벽에 있는 수구(水口)

구멍 모양이 오각형이다.
사각형으로 만들기가 훨씬 시웠을 텐데, 오각형이다.
이 모양에도 과학의 원리가 숨어있는데, 이렇게 구멍을 오각형으로 만들면 빈공간(삼각형)이 생겨 공기압때문에 물이 더 잘 빠져나간다고 한다. (오...그렇군)

어두운 구멍 사이로 빛이 보이는가?

갑자기 저 수구가 낙엽에 의해 뭐 여러가지 이유에 의해 막혀 수구 앞쪽이 물이 고여 난리 난 상황이 그려졌다. 물이 고이고 또 물을 빼고도 한동안은 질퍽질퍽 진흙탕일 것 같은 아수라장 상황.

“야!!!! 수구 막혔다! 저기 뚫어야 하는데 마땅한 거좀 가져와봐!!”

“넵!!”

“야 장난하냐? 너는 호미를 가져오면 쓰것냐?? 너가 해볼래?? 확 진짜!!”


보은 대야리 고분군

고분군
삼년산성과 양성산성 주변 고분군은 신라가 5세기 후반부터 6세기경 추풍령로와 계립령 西路를 이용해 금강 상류지역을 거점 영역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와 관련된 된 기록이 『三國史記』 新羅本紀에서 확인된다. 자비마립간대부터 소지마립간대의 축성기사를 통해 선산-상주(도나성, 답달성)지역을 기점으로 소백산맥을 넘어 충북 영동(광석성, 좌라성)-옥천(구례성, 사시성, 굴산성)-보은(삼년산성)-청주(前 청원 ; 일모성) 일대에 산성을 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소지마립간대 483년과 488년에 두 차례에 걸쳐 일선군에 순행한 사실이 이 지역의 중요성을 엿 볼 수 있고, 『三國史記』 地理志에 일찍부터 三年山郡(보은) · 古尸山郡(옥천) · 屈山縣(청산) · 吉同郡(영동) · 召羅縣(황간) 등이 모두 신라의 영역으로 기재되어 있는 점이 확인된다.

무너진 성벽
무너진 선을 보면 가로로 S자이다. 이유가 있을까?

 

튄다 (성벽 아니고 바닥)


오래 보아야 보인다?
산성 유적은 나한테 생소한 분야이고, 솔직히 내 관심선 밖의 문화유적이었다. ‘그 시대에 이렇게 높은 성을 쌓았구나.’ ‘힘들었겠다...’ 정도?
너무할 정도로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역시 많이 보고, 관심가져야 조금씩 보이는 것 같다. 이제 나는 산성에 대해 아주 조금씩 관심의 싹이 움틀움틀 트고 있다. 산성초보자!

역시 나한테는 ‘어떻게 쌓았는지’ 보다도 ‘산성을 왜 쌓았는지’, ‘그래서 이 산성을 그 시대에는 어떻게 활용했는지’가 더 관심사항이긴 하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이해하고 또 나만의 이야기로 풀으려면 아직도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지금은 정직하게 발굴 보고서 보고 현장에서 직접보고 확인하고, 기초를 다지고 있다.

여러분들에게 산성으로 이런 발굴보고서 내용들과 그 외 것들을 잘 녹여(?) 나만의 문화유적 이야기를 들려드릴 날을 꿈꿔본다.

삼년산성 찔레순 입에 물고


***
충북 보은군 보은읍 성주1길 104 (보은읍 어암리)

보은삼년산성

충북 보은군 보은읍 성주1길 104

map.kakao.com

 

보은 삼년산성(報恩 三年山城)
- 사적 235호(지정일 : 1973. 5. 25)
- 명칭변경 2011.7.28.(삼년산성 →보은삼년산성)
- 소재지 : 보은군 보은읍 성주1길 104(어암리)
- 규 모 : 약 1.8km
- 시 대 : 삼국시대(신라)

**참고자료
● 충청북도 · 한국성곽학회, 2007, 『韓國 中部內陸圈 山城郡의 基礎資料 調査報告書』
● 충청북도, 2008, 『한반도 중부 내륙지역 산성 Ⅰ 삼년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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