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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상관완아묘上官婉兒墓 Tomb of Shangguan Wan'er

by taeshik.kim 2019.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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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완아묘(上官婉兒墓) Tomb of Shangguan Wan'er


In September 2013 it was announced that archeologists in China had discovered the tomb of Shangguan Wan'er near the airport at Xianyang, Shaanxi province. The tomb was badly damaged, perhaps deliberately according to Chinese archeologists, and only a very few burial goods were discovered inside, including some sculptures of people riding horses. The identity of the tomb's occupant was determined from an epitaph discovered in the tomb, which was inscribed "Epitaph of the late imperial consort (Zhaorong) Madam Shangguan of the Great Tang dynasty" (大唐故昭容上官氏銘) on its lid.

Shangguan Wan'er (664?–21 July 710) was a concubine/imperial consort to two emperors of the Tang dynasty. Caught up in court intrigues and executed in 710, she is famous for her talent as a poet, writer and politician. When Wan'er was 13 years old, she became a secretary of Wu Zetian, who was then the empress of Emperor Gaozong and later became an empress in her own right. At age 42, when Wan'er became imperial consort to Wu Zetian's son Li Xian, later known as Emperor Zhongzong, she was given the imperial consort rank of Zhaorong (昭容). 


2013년 함양에서 발굴되어 화제였던 상관완아上官婉兒 묘지명이 작금(2018) 비림박물관 턱별전에 나왔다. 상관이 복성이요, 이름이 완아인 무즉천 시대 저명한 여류시인이요 여성 정치인으로 무수한 염문을 뿌렸다.
묘지명 덮개엔 '大唐故昭容上官氏銘대당 고 소용 상관씨 명'이라 썼다.
황제 후궁으로 관직을 썼다.


상관완아 묘지 발굴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중요하다 본다.


첫째, 묘는 발굴 결과 이미 조성 직후 어느 시기에 관에 의해 조직적으로 파괴됐을 가능성이 크다. 이른바 官方에 의한 훼묘毁墓다.

둘째, 이 훼묘 과정에서 상관완아 시체는 어디론가 누군가가 꺼집어 내어 버리고 거기에다가는 느닷없이 소뼈를 갖다 넣었다. 무덤에서 발굴된 뼈를 분석했더니 소뼈가 동정되었다. 왜 하필 소뼈일까? 이것 역시 궁금증을 증폭케 한다.


셋째, 이런 훼묘가 일어난 동기는 여러 분석이 있다. 상관완아는 나중에 현종이 되는 이륭기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무씨 집안을 도륙할 때 태평공주와 연합전선을 형성했다.

이 쿠데타에 상관완아는 희생됐다. 이륭기가 처단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륭기가 정권을 잡았을 초창기에는 정권은 이륭기와 태평공주가 양분했다.


태평공주는 자기 편인 상관완아가 비록 난에 희생되었지만, 그를 위해 후한 장사를 치러주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태평공주(아마 이륭기의 고모가 아닌가 기억한다)가 이륭기한테 대어들다가 일망타진된다. 이 무렵에 상관완아 묘 역시 훼손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상상도 가능할 것이다.

넷째, 이것이 나로서는 놀라운데, 그의 무덤이 발견된 사실이 공개되자, 이 집안 후손임을 주장하는 하남 상관씨 가문이 들고 일어나 당국에 대고는 "묘지를 보존하라. 보존이 여의치 않으면 하남으로 묘를 옮기게 해달라"고 공개적인 요청을 하기에 이른다.


중국이 확실히 바뀌었다. 모택동 공산주의 혁명과 더불어 자취를 감춘 종족 의식이 드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 징조로 본다. 중국도 이젠 한국사회 고고학이 맞닥뜨리는 이런 문제들을 곳곳에서 봉착할 것이다.

다섯째, 구제발굴이었으므로, 조사완료와 더불어 없어질 운명이었던 그의 묘는 역시 상관완아라는 이름이 지닌 위력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더 종족의 반발 때문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섬서성 정부가 나서 현지보존을 결정하고는 묘지 공원을 조성해 개장했다.


현지엔 그의 이름을 딴 유적 공원이 이미 들어섰다고 한다. 이 소식을 미리 접했더라면, 이번에 들려볼 걸 그랬다.

자, 이것 하나만으로도 상관완아 묘가 단순히 중국의 유산이겠는가? 세계사, 동아시아 보편 유산 아니겠는가?


나는 그 무수하게 국내 고고학이 파제낀 무덤 중에는 파묘 혹은 훼묘한 흔적들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하곤 했는데, 중국 당국 발표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생생한 보기가 다름 아닌 상관완아묘에서 튀어나왔다.

첨부사진은 비림박물관에서 개최 중인 특별전 출품작 내지 그 안내판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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