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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sWho in Ancient Korea

서동(薯童)

by taeshik.kim 2018.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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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제30대 무왕(재위 600~641)을 가리키는 즉위 전 이름일 수 있다. 글자 그대로는 마를 캐는 아이라는 뜻인데, 실제 어릴 때는 마를 캐는 일을 했기 때문에 이렇게 일컬은 것이 아닌가 한다. 다른 이름으로 말통이 있는데 이는 마동의 변형일 가능성이 있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 2 무왕(武王) : 제30대 무왕(武王)은 이름이 장(璋)이다.  그 어머니가 과부(寡婦)가 되어 서울 남쪽 못 가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못 속의 용(龍)과 관계하여 장을 낳았던 것이다.  어릴 때 이름은 서동(薯童)으로 재주와 도량이 커서 헤아리기 어려웠다.  항상 마[薯여]를 캐다가 파는 것으로 생업(生業)을 삼았으므로 사람들이 서동이라고 이름지었다.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셋째공주 선화(善花; 혹은 선화善化)가 뛰어나게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는 머리를 깎고 서울로 가서 마을 아이들에게 마를 먹이니 이내 아이들이 친해져 그를 따르게 되었다.  이에 동요를 지어 아이들을 꾀어서 부르게 하니 그것은 이러하다. 선화공주(善化公主)님은 남몰래 정을 통하고.서동방(薯童房)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동요(童謠)가 서울에 가득 퍼져서 대궐 안에까지 들리자 백관(百官)들이 임금에게 극력 간해서 공주를 먼 곳으로 귀양보내게 하여 장차 떠나려 하는 데 왕후(王后)는 순금(純金) 한 말을 주어 노자로 쓰게 했다.  공주가 장차 귀양지에 도착하려는데 도중에 서동이 나와 공주에게 절하면서 모시고 가겠다고 했다.  공주는 그가 어디서 왔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그저 우연히 믿고 좋아하니 서동은 그를 따라가면서 비밀히 정을 통했다.  그런 뒤에 서동의 이름을 알았고, 동요가 맞는 것도 알았다.  함께 백제로 와서 모후(母后)가 준 금을 꺼내 놓고 살아 나갈 계획을 의논하자 서동이 크게 웃고 말했다.  "이게 무엇이오?"  공주가 말했다.  "이것은 황금이니 이것을 가지면 백 년의 부를 누릴 것입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마를 캐던 곳에 황금을 흙덩이처럼 쌓아 두었소." 공주는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면서 말했다.  "그것은 천하의 가장 큰 보배이니 그대는 지금 그 금이 있는 곳을 아시면 우리 부모님이 계신 대궐로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좋소이다." 이에 금을 모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용화산(龍華山) 사자사(師子寺)의 지명법사(知命法師)에게 가서 이것을 실어 보낼 방법을 물으니 법사가 말한다.  "내가 신통(神通)한 힘으로 보낼 터이니 금을 이리로 가져 오시오." 이리하여 공주가 부모에게 보내는 편지와 함께 금을 사자사(師子寺) 앞에 갖다 놓았다.  법사는 신통한 힘으로 하룻밤 동안에 그 금을 신라 궁중으로 보내자 진평왕(眞平王)은 그 신비스러운 변화를 이상히 여겨 더욱 서동을 존경해서 항상 편지를 보내어 안부를 물었다.  서동은 이로부터 인심을 얻어서 드디어 왕위에 올랐다. 

☞무왕(武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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