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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소호 김응원(1855~1921)의 휘호揮毫

by taeshik.kim 2020.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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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강 김규진이 빗자루가 아닌 대붓으로 몇 미터가 넘게 '휘호'한 것과는 정반대의 '휘호'를 만난다. 이 글씨는 해강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소호小湖 김응원金應元(1855~1921)이 가로가 5cm 남짓 되는 종이 위에 쓴 것이다. 이런 종이는 단책短冊이라 해서 일본인들이 단카短歌나 하이쿠俳句 같은 자기네 시를 적기 위해 따로 만든 것이다. 먹을 엷게 우려 구름을 피우고 금박을 좀 뿌려 그럴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거기에 소호는 소동파 칠언절구 한 수를 예서로 정밀하게 적어넣는다.

태화산 서남쪽 몇 번째 봉우리던가
떨어지는 꽃잎 흐르는 물이 끝없네
도인은 다만 둥굴레 캐고 돌아갈 뿐
푸른 산에서 사슴 뿔은 못 보았던가


太華西南第幾峰
落花流水自重重
道人只採黃精去
不見靑山鹿養茸

2. 김응원은 흥선대원군의 청지기였다는 이야기가 전할 정도로 출신은 한미했지만 그만큼 권력에 가까웠다. 그는 빼어난 서화로 근대 한국 서화계를 주름잡았고, 특히 난초로는 대원군 이후 당대 제일로 꼽혔다. 그에게서 난을 배운 사람 중에는 일본인도 적지 않았는데, 조선총독부 2인자인 정무총감 야마가타 이사부로山縣伊三郎(1858~1927)도 있다. 그래서였는지 소호는 그림 좀 안다는 일본인들에게 인기있는 화가였다. 소호의 글씨, 특히 예서를 보면 그를 서예가로도 평가해주어야 하지 않나 한다.

***

이상 국립박물관 강민경 선생 글을 에디팅해서 옮긴다. 아래 글을 함께 참고하라. 

 

해강 김규진 휘호도

 

 

해강 김규진 휘호도

1. 근대의 서화가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1864-1933)이 1920년 무렵, 금강산 구룡폭포 옆 바위에 새길 '미륵불彌勒佛' 석 자를 써달라는 주문을 받는다. 보통 큰 글자가 아니었으므로, 해강은 특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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