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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시인이 예술가인 척 해서는 안 된다는 나태주

by taeshik.kim 2019.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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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는 연애편지, 시인은 서비스맨"

송고시간 | 2019-12-12 14:04

등단 50주년 기념시집 '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 출간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시인 나태주 하면 흔히 이 구절을 떠올리거니와, 그의 시는 쉽다. 수사 혹은 문학이 주는 그 이상야릇, 알듯말듯 빌빌 꼬는 말이 없다. 내가 그를 숙독하지는 아니했지만, 지하철 비름빡에서도 대뜸 만나 대뜸 읽어내려가도 술술 따라간다. 


해방되는 1945년에 태어났으니, 그의 나이는 곧 광복과 궤를 같이한다. 초중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며 시인을 하는 사람들한테서는 묘한 특징이랄까 하는 대목이 있는데, 그 직업 때문인지 몰라도, 대체로 알아듣기가 쉽다. '홀로서기' 서정윤이 그런 경향을 대표한다. 일약 국회의원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역임한 '접시꽃 당신' 도종환 역시 초등학교 교사 출신이라 그런지, 그의 시 역시 쉽다. (그나저나 서정윤은 불미스런 일에 휘말렸는데 우째됐는지 모르겠다) 


이런 교사 혹은 그 출신 시인들은 자칫 훈육으로 흐르는 경향이 없지는 아니하나, 나아가 '홀로서기'니 '접시꽃 당신'이니 하는 이른바 명편들이 훈육의 요소가 없다고 하지 아니할 수는 없으나, 봄날 함박눈처럼 포근하다. 

 

가끔 대학교수 생활하면서 시를 쓰는 사람이 있는데, 이 친구들은 먹물 흉내 낸답시고 그 자신이 듣고배운 각종 문학사조 끼워넣어 빌빌 꼬는 일이 많음을 본다. 


나태주는 천상 선생 같다. 실제 초등학교 교사였다. 




사람 바빠 죽겠는데

열심히 집안일 하고 있는데

뜬금없이 전화를 거시는 당신


지금 창밖에 눈이 날리고 있다고

꽃이 피어났다고

더러는 달이 떴다고

전화로 불러내시면

도대체 날더러 어쩌란 말인가요?


지금 설거지하고 있는 중인데

지금 김치를 썰고 있는 중인데

마음이 울적하다고

보고 싶다고 자꾸만 그러시면

도대체 날더러 어쩌라는 건가요?


부디 당신 안의 그 여자와

사이좋게 잘 지내기 바래요

자주 울적하고

자주 쓸쓸하고

자주 울먹거리는 변덕쟁이 그 여자

새파란 입술을 가진 그 여자와

봄이 와도 울지 말고 쓸쓸해하지 말고

부디 잘 살기 바래요. 


(당신 안의 여자, 《문학청춘》, 2012 여름호)


어디 하나 어려운 구석 없다. 


등단 50주년을 기념한 시집 《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 발간에 즈음해 그가 기자들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그는 말한다. 


"시는 연애편지이고 시인은 서비스맨입니다."


라고. 


"시인은 이 시대의 대단한 예술가인 척해서도 안 되고, 빗장을 잠그고 '내가 제일'이라고 해도 안 돼요. 나와서 축복해주고 위로해주는 자가 돼야 합니다."


이 말에서 나태주가 생각하는 시와 시인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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