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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안성 죽산 봉업사지와 죽산역사문화도시

by taeshik.kim 2018.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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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역사문화도시(竹山歷史文化都市)’ 조성(造成) 제안(提案)을 환영하며 


                                                                      김태식 연합뉴스 


이번 학술대회 주인공인 봉업사지奉業寺址를 토론자는 서너 번 답사 형식을 빌려 찾은 적 있다. 개중 한때는 낙조落照였다고 기억하거니와, 이곳 우람한 오층석탑 너머로 떨어지는 일몰日沒은 장관이었다는 기억이 생생하다. 이 봉업사지가 한때는 번영을 구가謳歌한 巨刹이었음은 석탑石塔 말고도 그 전면 당간지주幢竿支柱가 우뚝이 증언하거니와, 또 한때는 이곳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동종銅鐘을 주조鑄造하던 흔적까지 고스란히 나왔다는 기억도 생생하다. 



안성 죽산 봉업사지 일대 전경



이번 학술대회에 즈음해 양윤식 박사 발표문을 접하면서 토론자로서 의외인 점이 봉업사지가 아직 사적事跡이 아니라는 사실의 ‘발견’이었다. 봉업사지는 발굴조사 성과를 토대로 2003년 경기도기념물로 지정되었을 뿐, 기타 더 강력한 절터 보존정책은 구비되지 않은 상태가 계속 중이다. 이런 사실이 왜 의외였을까? 토론자는 당연히 봉업사지가 사적인 줄로 알았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알았는가? 이런 곳이 사적이지 않으면 어디가 사적이란 말인가?


이 점이 양윤식 박사도 기이한 모양이다. 발표문 ‘맺음말’을 보면, 사적이 아닌 봉업사지의 현실을 2016년 사적으로 지정된 경주 인왕동 사지(仁旺洞寺址)의 처지와 비교한다. 토론자는 이 대목이 매우 중대하게 다가온다. 인왕동 사지는 절터 이름도 모른 채, 다만 중심 번영 연대가 통일신라시대라는 사실과 더불어 그 주축 구역이 발굴되었다는 점을 근거로 다소간 논란이 있었지만, 경북도문화재자료에서 사적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봉업사지는 인왕동 사지에 견주어 그 이름이 명확히 드러났고, 더구나 이곳에 고려 태조太祖 왕건王建의 진영眞影을 봉안奉安한 곳이었고, 인왕동 사지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완벽한 석탑과 온전한 당간지주를 구비했다. 그럼에도 왜 봉업사지는 사적이 아닐까? 이 점이 새삼 의아스럽기만 하다. 



봉업사지 오층석탑



물론 그것이 사적이 되지 못한 이유로 짐작되는 요인이 없지는 않다. 이럴 때 항용 문화재 당국에서는 사역寺域 범위가 확인되지 않았음을 흔히 들곤 하는데, 봉업사지 역시 틀림없이 이런 이유가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본다. 왜냐 하면, 이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유서 깊은 절터가 같은 이유로써 계속 사적 지정이 보류되는 까닭이다. 


그 추정이 정확하다고 가정하고서 토론자는 그런 이유를 흔히 내세우는 문화재 당국에 반론을 제기함과 더불어, 그것이 내세우는 문화재 보존정책의 근간에 의구심을 표하고자 한다. 첫째, 사역! 사역! 이라 하는데, 사역寺域이 왜 그리 중요한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사역은 시대에 따라 언제나 넘나듦이 있을 수밖에 없어 그 범위를 확정할 수 없다. 누가 사역을 확정한단 말인가? 둘째, 전체 사역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 도대체 그곳이 사적이 될 수 없는 근거는 하늘에 있는가 땅에 있는가? 전체 사역을 확인해서 무얼 할 것이며, 아니라 한들, 예컨대 봉업사지의 경우 석탑과 당간지주 있는 구역이 사역이 아니라 할 것인가? 오층석탑이 있는 곳이 사역 중심구역임은 그것이 옮겨진 증거가 없는 한 명명백백하거늘, 현재까지 드러난 사역만이라도 당연히 그 역사성을 고려해 당연히 사적으로 지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셋째, 사역을 절대 잣대로 삼는 저 논거는 필연적으로 책임지지 못할 마구잡이 발굴조사를 양산하는 지름길이 된다. 전체 사역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거의 필연적으로 사역으로 추정되는 거의 모든 대상지를 발굴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발굴한 곳들이 한두 곳이 아니다. 그렇게 발굴된 곳 사정은 어떠한가? 제대로 경관까지 고려할 이상적인 정비가 이뤄진 곳은 국내를 통틀어 단 한 곳도 없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무분별한 발굴을 부르는 사역 중심 문화재 지정 방침은 철회되거나, 시급히 교정되어야 한다. 넷째, 그런 까닭에 사역 중시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방침은 필연적으로 정작 보호받아야 할 역사가 무분별한 주변 개발에 노출되는 역효과를 빚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작 보호받아야 할 core area가 전체 area가 확인되지 않거나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경시되는 역설을 이제는 청산해야 한다. 


양 박사 이번 발표는 오늘 학술대회 core라 할 만하다. 무엇이 봉업사지인가를 뛰어넘어 그것을 어떤 관점에서 어떤 그림으로 보존하고 활용해야 하는지 그 핵심을 짚은 까닭이다. 토론자가 양 박사 발표에서 특히 주시하는 대목은 첫째, ‘죽산역사문화도시’ 조성이라는 큰 그림에서 접근하려 했다는 점이고, 둘째, 이를 위한 기반으로 안성시 도시계획을 구상 수립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한 점 두 가지다. 





봉업사지가 주축을 형상하는 죽산 지역은 안성시 동쪽 지역이다. 기초자치 단체 중심으로 십수년째 전국 문화재 현장을 답사 중인 토론자한테 안성은 실로 묘해서, 이 분야 종사자들이 그런 말을 많이 하는데, 실제 내가 봐도 ‘경기도의 경주’가 맞다. 그만큼 이상하리만치 역사유적이 밀집한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지는 차치하고, 그런 안성에서도 코어가 바로 죽산이다. 발표자도 정리했듯이 죽산竹山에는 봉업사지가 한창 번성할 무렵과 같은 고려시대에 속하는 흔적이 주변에 산재한다. 왜 죽산인가는 아마도 이번 대회 공동주최자인 한백문화재연구원 서영일 원장이 대답할 문제인 듯하지만, 아마도 교통로라는 관점에서 그만큼 중요한 곳이었기에 이런 현상이 빚어지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천만다행으로 이런 죽산에는 아직 개발의 광풍이 비켜난 것으로 안다. 고즈넉한 농촌사회 풍광을 유지하는 이 일대는 역으로 이 지역 역사유산에는 그것을 재가공하기엔 장애물이 그만큼 적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발표자가 힘주어 강조했듯이, 이 일대 문화유산이 포진한 양상을 보건대, 이들을 봉업사지를 중심으로 역사문화벨트로 엮어야 하며, 그래야만 봉업사가 지닌 위상도 제대로 드러나리라 본다. 이 역사문화벨트를 양 박사는 ‘죽산역사문화도시’라 하는데, 토론자 역시 발표자 제안에 전적으로 찬동한다. 


이때 중요한 대목이 이를 위한 도시계획 구비 완비와 ‘경관景觀’이니, 고고학 현장에서 고고학도가 중심이 되는 유산 정비와 관련해 이 두 대목은 간과되기 쉬운 ‘덕목’이다. 아무래도 고고학이 도시계획과는 아직은 동떨어진 느낌이 짙다. 더불어 ‘경관’을 ‘조경造景’과 혼동하기도 하며, 그래서 나무 심고 화단 가꾸며 잔디 심는 일이라 생각하기 쉬우나, 경관은 그 유적을 빛내게 하는 교향곡이며, 그 지휘자다. 건축학도 출신답게 양 박사는 이 두 가지 덕목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부디 발표자가 지적한 이런 덕목들을 앞세운 죽산역사문화도시가 조성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이상은 안성시(시장 우석제)와 재단법인 한백문화재연구원(원장 서영일)이 2018년 11월 22일 안성시 죽산면 소재 동안성시민복지센터에서 개최한 '안성 봉업사지 활용과 보존' 학술대회의 양윤식 박사 '봉업사지 보존관리'에 대한 토론문이다. 이에서 내가 특히 강조 혹은 비판하고 싶었던 대목은 파란 색깔 부분이다.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가 요새 하는 꼴이 저렇다. 사적지정이 그들의 고유영역이고 중요한 업무 중의 하나임은 부인할 수 없다. 한데 지금 하는 꼴이 한심하기 짝이 없어, 전국에서 밀려드는 사적 지정 요구에 대응 혹은 조절할 명분이랍시면서, 저 따위 말도 되지 않는 '사역'이라는 논리를 내세우기 시작했다. 


이 일이 한심한 까닭, 혹은 그것이 빚어내는 부작용은 저에서 그런대로 네 가지로 나누어 지적했거니와, 저 논리를 양산하는 구조가 더욱 한심하기 짝이 없어, 문화재청 담당 직원 한두 명이 전문가랍시며 한두 명 대동하고 현장에 나타나 쑥 둘러보고는 그 보고서랍시며 문화재위원회에다가 제출하면서 "사역이 불확실하므로 사적 지정을 보류함이 타당하다고 사료됨" 이 따위 한 줄 붙여 제출하는 것이 전부다. 문화재위원회 역시 거수기라, 찍소리 못하고, 문화재청 하자는대로 따라간다. 


그 중요한 문화재행정 중 하나가 이리도 쓱딱 진행되어 버린다. 사역? 밀려드는 사적지정 신청 요구에 아우성이라는 그 고충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나, 말이 되는 논리를 내세워야 할 게 아닌가? 


이런 현상이 비단 절터에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전국 문화재 현장에서 다 보인다는 점에서 새로운 사회현상으로 대두한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있다. 그것이 이제는 새로운 문화재 현장의 새로운 민원양상이다. 종래엔 문화재 지정을 반대한다고 난리였지만, 이제는 문화재 지정을 안해준다고 난리다. 


그렇다면 우리네 문화재 행정은 어떤 수준인가? 단언커니와 전자에 사로잡혀 단 한 발짝 진전이 없다. 시대는 변했는데, 그 시대 추세를 따르지 아니하고, 문화재행정은 여전히 전근대적 발상에 머물며, 말도 안되는 논리, 다시 말해 전체 사역이 확인되지 않았느니 하는 논리를 내세운다. 뭐, 사역을 다 밝혀야 문화재 지정을 하니 이 등신들아? 


결국 이것이 문화재를 또 다른 공공의 적으로 만드는 일임을 문화재청을 필두로 하는 문화재 당국은 알아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전국에서 우후죽순으로 벌어지는 사적 지정 신청을 위한 학술대회가 아니라, 저런 사회욕구에 대응하는 문화재 당국의 고급지고 그럴 듯한 문화재 행정의 논리 개발이다. 어디 되먹지도 않은 사역 운운하는 반대 논리를 내세운단 말인가?


너희들 공청회 좋아하잖아? 공청회 붙여라. 전국적인 사적 지정 신청 현황에 대응하는 새로운 문화재 행정 방안..뭐 이런 주제로 말이다.뭐 문화재로 못살겠다 후달리다 이젠 지정해달라 전국에서 매달리니 어깨 힘들어가니? 뭐 사적 지정 불가 혹은 보류 꽝꽝 때리니 괜히 우쭐해지고 그렇지? 아서라 망한다. 그러다 또 망한다. 시대 흐름을 못읽는 자 도태하기 마련이다.


저걸 빌미로 몇몇 문화재위원 놈이 어깨 힘준 채 전국을 활보한다. 각종 민원이란 민원은 다 만들어내는 지경이다. 


한마디 더 덧붙인다. 저 학술대회가 진행되는 그 시각. 봉업사지 현장에서는 트렌치 발굴조사가 이뤄지고 있었다. 무슨 트렌치 조사냐 했더니 그 조사단 관계자가 이르는 "전체 사역 확인을 위해서"라고 한다. 이게 무슨 꼴인가? 사역 분포 범위가 확실치 않다는 이유로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가 사적 지정을 요리조리 피해가니 이 꼴이 벌어진다. 이게 당신들 원하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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