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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억울한 기생 홍련, 생식기 표본에 투여한 포로노그라피

by taeshik.kim 2021.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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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어느 지인(본인이 익명 요청) 글이다. 앞 제목은 台植이 임의로 부쳤다.

몇 년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일제강점기부터 전하는 여성의 생식기 표본이 있다고 하여 화제가 되었다. 언론과 시민단체의 문제제기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해당 표본을 폐기・화장했다.

이 표본은 예전부터 명월관의 기생의 사체에서 적출한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고 그 주인공은 바로 명월관의 기생, 명월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러던 중,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일본 나가노의 마츠모토시립박물관 소장품에 나오는 ‘홍련(紅蓮)’이 명월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덧붙여 홍련은 명월관의 대표 기생으로 명월이라고 불렸고, 그림으로 볼 때 명월관 기생 명월이와 상당히 부합된다고.

그는 마츠모토시립박물관까지 찾아가 박물관 관계자를 면담하고 그림 앞에서 제를 올리는 한편 돌아와서는 한 사찰에서 성대한 천도제를 벌였다.




홍련은 일본의 화가 이시이 하쿠테이(石井柏亭, 1882~1958)의 작품이다. 지난 2001년 일본에서 연수 받던 시절 마츠모토 시립박물관 전시실에서 이 그림을 본 적이 있다.

이 작은 도시(?)에 조선의 풍경이 남은 것을 신기하다 생각했다.

이시이 하쿠테이는 1918년과 1920년 조선을 여행하고 여러 점의 그림을 남겼는데, 홍련은 그 가운데 하나다.

이시이는 여행 기록을 엮어 이듬해인 1921년 絵の旅(작화여행)(日本評論社, 1921)로 출간했다. 그 기록 중에는 홍련도 등장한다.

“조선인(朝鮮人)은 실증을 잘 내 새로운 곳이 생기면 손님이 그쪽으로 옮겨가는 모양이다. 대성관(大成館)도 후에 등장한 3층의 우신관(又新館)에 약간 눌리는 듯하다. 요전에 김홍련(金紅蓮)이란 기생을 그렸던 화춘관(華春館)이란 요리집도 이미 한물갔다 한다.”(p.72.)

이시이는 1918년 평양의 화춘관에서 홍련을 그렸다. 1920년에도 평양에 들러 요리집 평판을 들었다.

그의 기록에서도 볼 수 있듯 홍련은 1918년 작품으로 서울의 명월관 소속이 아니라 평양의 화춘관 소속이었다. 그리고 활동가는 구전에 따르면 이시이도 홍련과 사랑에 빠졌다고 했으나 사실 그림의 모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다시 말해 명월관의 명월이와는 어떤 관계도 없다. 단지 두 사람 모두 기생었다는 사실 외에는.

마츠모토시립박물관 관계자가 왜 이 기록을 확인주지 않았을까 모르겠다.

생식기 표본의 폐기는 인간존엄 생각하게 하는 상징적 조치였다. 그러나 이것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을 보면 한 활동가의 공명심이 빚어낸 헤프닝으로만 볼 수 있을까.

생식기 표본도 엽기적이지만, 그것이 기생의 것이라는 구전도, 그리고 초상이 남았다고 해서 ‘바로 그녀’라고 주장하는 것도 엽기적이긴 매양 마찬가지다.

“생식기”에 “기생”을, 거기에 다시 “특정인 누구”를 얹는 과정은 포르노그라피의 욕망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여전히 인터넷에서는 이 잘못된 정보가 돌아다니고 있다. 여하튼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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