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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중국에서 발견된 세종시대 경연본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완질

by taeshik.kim 2020.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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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조 경연본 '자치통감강목‘ 완질 발견

- 국외소재문화재단 보도자료 [2014.12.30] -

 

 

자치통감강목 59권 59책

 

조선 제4대 임금인 세종(재위 1418~1450)대 경연(經筵)에서 사용됐던 ‘자치통감감목(資治通鑑綱目)’ 완질(59권 59책)이 중국 상하이(上海)도서관에서 발견됐다.

 

상하이도서관 소장본은 1420년(세종 2)에 만들어진 동활자인 경자자(庚子字)로 간행한 ‘자치통감강목’으로, 조선에서 처음 간행된 판본인데다 동일한 인쇄본의 전래가 드문 귀중본(보물급 문화재)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   

경자자본(庚子字本) ‘자치통감강목’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하 재단)이 지난 10월 16일부터 24일까지 진행한 중국 상하이도서관 및 푸단(復旦)대학도서관 소장 한국전적 조사과정에서 확인됐다.

 

국내의 경우, 국립중앙도서관과 청주고인쇄박물관,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호림박물관 등지에 경자자본 ‘자치통감강목’이 전하지만, 모두 1~2책 또는 5책만 남은 결본이다.

 

자치통감강목 59권 59책과 전적카드



경자자본(庚子字本) ‘자치통감강목’은 중국 상하이도서관 소장본인 11항(行) 21자(字)본 계열 외에도 11항 22자본 계열 등 현재 2종이 전한다. 이와 관련, ‘세종실록’을 보면 1421년(세종 3) 3월 24일자에 세종이 주자소(鑄字所)에 술을 하사하며 “‘자치통감강목’을 인쇄하라 명하고, 집현전으로 하여금 잘못된 곳을 교정하게 하였는데, 경자년(1420년) 겨울부터 임인년(1422년) 겨울에 이르러 일을 끝냈다”는 기록이 전한다.

 

11항 21자본인 이 책이 인쇄된 시점은 1428년(세종 10) 이전으로 추정되는데, 국내에 낙질로 남은 책의 마지막권에 1428년에 변계량이 쓴 발문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번에 발견된 ‘자치통감강목’에 찍힌 인장(장서인)들을 통해, 세종 대 경연에서 사용되었다가 임진왜란(1592~1598) 때 일본군에 약탈당한 뒤 상하이도서관 소장 선본(善本·귀중본)이 되기까지 전적의 이동경로를 파악할 수 있게 된 점이 가장 큰 성과다.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을 떠돈 ‘자치통감강목’의 유랑의 역사에서 우리 문화재가 겪은 아픔을 확인할 수 있다. 

 

미양문고, 경화, 안평지기, 경연, 남양후학홍섬퇴지장 등이 찍힌 자치통감 서

 
  
우선 대부분의 책에 날인된 ‘경연(經筵)’ 인장은 이번에 발견된 ‘자치통감강목’이 세종 대 경연 소장본이었음을 말해준다. 또한 책의 일부에는 ‘안평지기(安平之記)’와 ‘경화(景和)’란 인장이 날인되어 있는데, 이 장서인에 대해서는 보다 깊이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조선왕실의 경연 소장본이었던 이 책은 이후 청주한씨(淸州韓氏)와 남양홍씨(南陽洪氏) 집안에 소장되어 있다가 임진왜란 때 왜군에게 약탈돼 일본으로 유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책에 날인된 ‘서원한씨(西原韓氏)’ ‘숙창희경(叔昌熙卿)’ 및 ‘남양후학홍섬퇴지장(南陽後學洪暹退之章)’이란 인장을 통해, 청주한씨 한숙창(1478~1537)과 남양홍씨 홍섬(1504~1585) 등이 경자자본 ‘자치통감강목’을 소장했음을 알 수 있다. 

한숙창은 소혜왕후(인수대비)의 아버지기이기도 한 좌의정 한확(韓確, 1403~1456)의 증손자이다. 한확은 세조의 집권을 도와 정난공신과 좌익공신 1등에 책봉되기도 하였다. 또 선조 대 영의정을 지낸 홍섬은 바로 한숙창의 장남인 참판 한자(韓慈)의 사위다. 인장에 나오는 ‘희경’과 ‘퇴지’는 각각 한숙창과 홍섬의 자이다.   

조선왕실의 경연도서였던 이 책은 경연에서 유출되어 청주한씨(한숙창)와 남양홍씨(홍섬)를 거쳐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유출되었다. 이는 ‘비요문고(尾陽文庫)’로 날인된 장서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비요(尾陽)은 나고야(名古屋)를 뜻하는 옛 명칭이며, ‘비요문고’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2~1616)의 아들로 오와리(尾張·나고야)의 초대 번주였던 도쿠가와 요시나오(德川義直, 1601~1650)가 소장했던 장서에 주로 날인되었던 인장이다.

 

서원한씨, 숙창희경이 찍힌 5권



그 후 이 책은 중국의 저명한 장서가인 쉬수(徐恕, 1890~1959)에 의해 소장되었다. 경자자본 ‘자치통감강목’에서는 그의 장서인인  ‘악저서씨장본(鄂渚徐氏藏本)’을 발견할 수 있다.

 

일본에 있던 전적이 중국으로 전래된 경위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다만 일본에서 유학했던 쉬수는 10만여 책을 수집, 소장하였고 사망 후, 대부분의 책을 국가에 기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사위원인 옥영정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고문헌관리학전공 교수는 “상하이도서관에서 발견된 ‘자치통감강목’은 보존상태가 양호한데다 59권 전체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조선초기 금속활자인쇄술 연구에 귀중한 자료”라며 “이 책의 발견으로 조선 초기 서적간행, 서적의 유입과 장서 등에 새로운 연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신승운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원장은 “이 전적은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완질이 갖추어져 국가문화재급의 귀중도서라 할 수 있다.”고 평가하였다. 

 

문산선생별집 서

 

상하이도서관 조사에서는 ‘자치통감강목’ 외에도 1455년(세조 1) 을해자본(乙亥字本)으로 간행된 ‘문산선생별집(文山先生別集)’과 16세기에 초주갑인자로 간행된 ‘문선(文選)’ 32책, ‘분류보주이태백시(分類補註李太白詩)’ 16책 등이 확인되었다. 이 전적들 역시 인쇄본이 매우 드문 편이다.

 

부록 1책만 남은 ‘문산선생별집’은 남송 최후의 재상으로 원나라에 대항하다 순절한 문천상(文天祥, 1236~1282)의 문집인 ‘문산선생문집’의 별집이다. 문산은 중국에서 충절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는 문천상의 호이다.

재단은 상하이도서관과 푸단대학교도서관에서 각각 188종, 1344책과 64종, 424책 등 총 252종, 1768책의 한국전적을 조사하였다. 특히 상하이도서관 한국전적 가운데 조선 초기부터 후기까지의 다양한 금속활자본이 포함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재단은 상하이도서관과 푸단대학도서관 소장 전적의 조사 결과를 정리하고 보완연구를 진행하여 2015년에 조사보고서를 발간할 예정이다.

 

 

자치통감강목

<옥영정> 


□ 개요
중국 상하이(上海)도서관소장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은 남송의 주희가 북송의 사마광이 편찬한 '자치통감(資治通鑑)' 294권을 저본으로 59권으로 편찬한 강목체 사서(史書)로 15세기 초 조선에서 금속활자본으로 간행한 책이다.

 

'자치통감강목'은 송나라 주희가 사마광이 지은 '자치통감'을 '춘추‘의 체재에 따라 편찬한 역사서로서, 큰 제목으로 강(綱)을 세우고, 세부항목을 목(目)으로 구별하여 편찬한 책이다.

 

송나라 주희가 '자치통감강목’을 편찬한 주요한 동기는 본래 '자치통감‘의 분량이 너무 많고 내용이 방대하여 읽기 어려우므로 간명하고 핵심적이며 알기 쉬운 역사서의 편찬이 필요한 것이었다. 아울러 '자치통감'은 정통(正統)과 명분관념(名分觀念)이 약하고 서법(書法)도 불완전하므로 개정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조선에서 처음 간행된 '자치통감강목'은 1428년(세종 10) 이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자자본(庚子字本)이다. '자치통감강목'의 경자자본은 2종이 현전하는데 11항 21자본 계열과 11항 22자본 계열로 나뉜다. 상하이도서관소장본은 11항 21자본 계열이다.

 

경자자본 간행 이후에도 최초의 연활자(鉛活字)인 병진자(丙辰字)로 강(綱)을 인쇄하고 목(目)과 주석은 초주갑인자로 인쇄한 책이 발간되었으며 이는 1438년(세종 20년) 간행의 병진자본 사정전훈의(思政殿訓義) '자치통감강목'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조사된 '자치통감강목'은 전체 59책이 모두 남아 있다. 1420년(세종 2년)에 만들어진 동활자인 경자자로 간행된 책이다. 인출된 시점은 1428년(세종 10) 이전으로 추정되는데, 국내에 낙질로 남은 책의 마지막권에 1428년에 변계량이 쓴 발문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세종실록' 권11, 세종 3년(1421) 3월 24일조에'자치통감강목'을 찍어내라 명하고 집현전으로 하여금 잘못된 곳을 교정하게 하였으며 경자년(1420) 겨울부터 임인년(1422) 겨울에 이르러 일을 끝낸 것으로 기록된 사실이 있다.

 

금속활자 조판과 인쇄방법이 이 시점에 상당히 개선되어 세종은 이 날 주자소에 술을 하사하기도 하였는데, 이때 간행된 '자치통감강목'과 현존본에 관한 보다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 서지적 특징 
경자자를 사용하여 인행(印行)한 판본 중의 59권 59책 완질이다. 표지는 중국식으로 개장하였다. 12개의 종이포장지에 11개까지는 5책씩, 마지막 12개째는 4책으로 포장하였다. 경자자본의 판식은 사주쌍변(四周雙邊) 반관(半郭) 22.8 x 14.7cm이며 계선이 있고 11항 21자로 주쌍행(註雙行), 상하흑구(上下黑口), 내향흑어미(內向黑魚尾)로 책의 크기는 32.8 x 18.8 cm 이다.

 

편찬체제는 각종 서문(序文)과 표문(表文), 목록서문(目錄序文), 자치통감거요역서(資治通鑑擧要曆序), 호안국(胡安國)의 자치통감거요유서(資治通鑑擧要補遺序), 1172년 주희가 쓴 자치통감강목서례(資治通鑑綱目序例), 집람서(集覽序), 자치통감강목집람서례(資治通鑑綱目集覽敍例) 등이 권수에 수록되고 이어서 본문이 시작되고 권59로 끝난다.

 

또한 조사본 '자치통감강목'에는 ‘경연(經筵)‘의 인장이 대부분 날인되어 있어서 이 책이 세종시기의 경연소장본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이후로 청주한씨(한숙창), 남양홍씨(홍섬)를 거쳐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유출된 것으로 확인된다. 이는 ‘비요문고(尾陽文庫)’로 날인된 장서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비요(尾陽)은 나고야(名古屋)를 뜻하는 옛 명칭이며, ‘비요문고’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2~1616)의 아들인 도쿠가와 요시나오(德川義直, 1601~1650)가 소장한 장서에 주로 날인되었던 장서인이다. 이 장서인의 실물은 현재 도쿠가와미술관(德川美術館)에 소장되어 있으며, 이 인문이 1대 번주인 도쿠가와 요시나오가 수집한 장서의 일부와 2대 번주인 도쿠가와 미쓰토모(德川光友, 1625~1700)의 수집장서에 날인되어 있다. 


일본에서 중국으로 이 책이 전래된 경위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이 있는 조사가 필요하다. 다만 중국의 저명한 장서가인 쉬수(徐恕, 1890~1959)에 의해서 이 책이 수집된 것은 확실해 보이는데 이는 이 책에 날인된 또 다른 장서인인 ‘악저서씨장본(鄂渚徐氏藏本)’을 통해서 확인된다.

 

그는 10만여책을 소장하였으며 대부분의 책을 국가에 기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가치 
주자학의 전래와 함께 조선조에서도 '자치통감강목'이 중시되어 조선시대 초기에만도 수차례 간행되었다. 특히 금속활자에 의한 간행이 두드러져 금속활자 인쇄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책이다.

 

경자자는 국내에 인본의 전래가 드문 귀중본이다. 표지는 중국식으로 개장하였지만 본문은 당시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이어서 그 가치를 더한다.

 

세종대왕 당시의 경연 소장본으로 이 책의 전래경위 또한 매우 흥미롭다.

 

경자자는 국내에 동일한 인본으로 국립중앙도서관, 청주고인쇄박물관, 서울대규장각한국학연구원, 호림박물관, 개인 소장본 등이 있다. 이 중에 호림박물관 5책을 제외하고 대부분 1책~2책으로만 남은 결락본이다.

 

'자치통감강목'은 역사학·정치학·행정학·서지학 등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조선시대 전기의 금속활자인쇄술 연구에도 크게 활용될 수 있는 자료이며 무엇보다도 국내에 그 전래가 드물고 59권 전체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책의 발견으로 조선초기 서적간행, 서적의 유입과 장서 등에 새로운 연구가 가능할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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