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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개미집의 소굴, 공주 장선리 토실유적

by taeshik.kim 2019.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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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오늘, 나는 전라북도 정읍 일대를 둘러보게 되었다어찌하다 이 코스가 잡혔는지는 지금은 기억에 없지만, 아마 부여쪽 무슨 발굴현장을 가다 이곳을 들렸던 듯하디. 

우선 나는 그날, 어찌하다 탄천휴게소에 들리게 되었고, 그 자리서 휴게소를 건설하다 발견한 장선리 유적을 조우했다. 

나로선 이 현장이 더욱 감회가 새로웠던 까닭은 발굴 당시 이곳을 찾은 기억이 선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때만 해도 이른바 토실土室이 선명했으니.. 

그때까지만 해도 희귀하기만 한 이른바 토실이 그득한 이 현장에 흥붕한 서울대 최몽룡 교수가 마침 문화재위원이었고, 이 발굴 지도위원이었던 까닭에 그의 강력한 주창에 따라 현장은 보존되었다. 

그 현장이 나중에 어떤 식으로 관리되는지 까마득히 잊고 있다가 실로 우연히 조우하게 되었으니 감회가 조금은 다를 수밖에...

현장은 아쉽기 짝이 없다. 토실이 어떤 곳인지 알 수 있는 곳은 단 한 곳도 없고, 현장에는 아래에서 보듯히 덩그러니 안내판 설명으로 대치되고 있었다.



장선리 토실 유적이 어떤 곳이며,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아래와 같은 설명문에 잘 드러나리라 본다. 

장선리 토실유적 공간활용 추정개념도

공주 장선리 유적은 천안-논산간 고속도로 상·하행선 휴게소 부지를 조성하는 중에 확인된 유적이다.

하행선 휴게소부지 가운데 발굴조사가 실시된 약 17,000㎡의 면적에서는 청동기시대 생활유적과 분묘유적, 마한의 생활유적 및 조선시대유적이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원형의 수혈주거지로서 인접하고 있는 부여 송국리유적과 문화맥락을 같이하며, 주거지와 저장 구덩이의 배치관계는 당시의 생활상이 농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마한의 생활유적 중 토실土室은 지하에 하나 또는 여러 개를 연결하여 개미굴과 같은 행태를 하고 있다. 

이는 중국 사서인 《삼국지三國志》의 "거처는 초가에 토실을 만들어 사는데, 그 모양이 마치 무덤 같고 그 문은 윗부분에 있는데 온 집안 식구가 그 속에 함께 산다[居處作草屋土室、形如家、其戸在上、舉家共在中]"라는 기록과 일치한다. 

그 외에 장방형長方形의 수혈주거지와 수십 기의 다양한 생활유적이 조사되어 당시 촌락의 규모나 성격, 주거양식 등을 유추할 수 있다. 

공주 장선리 토실 유적은 문화사적·고고학적으로 삼국시대초기 주거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며, 청동기시대 유구와 중첩되어 있어 이 지역에서의 주민 및 생활상의 시대적 변화를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 


Gongju Jangsoen-ri remains is the remains that was found while constructing service area site on both north and south bound lanes on Cheonan to Nonsan expressway.  Within the service area site investigation and excavation were taken in about 17,000 ㎡ of the area and found lifestyle remains and the burial mound remains of the Bronze Age, lifestyle remains of Mahan and the Joseon Dynasty remains as well. 

Buyeo Songguk-ri remains, also the layout relationship of a dwelling and a storage pit shows the life at  the time has close relevance to agriculture. 

Also TO-SIL ( a room made of soil ) , one of the lifestyle remains of Mahan, is in a form like an ant tunnel by connecting one or several rooms. This corresponds with the Chinese history book the "Record of the Three Kingdoms" had written, "The dwelling is formed with TOSil covered with thatched roof which looks like tomb. The door is on upper part of the TO-SIlL and all family members lived within it together."

Besides a rectangular pit dwelling and dozens of various lifestyle remains were investigated to analyze the size and character of village, living type and more. 

Gongju Jangsoen-ri TO-SIL remains is the important data in studying the early Three Kingdom Period in terms of cultural as well as archasological, and it is overlapped with the Bronze Age sites thus, this remains represents the residents and changes of lifestyle by time period of this particular area well. 

(영어 안내판은 일단 그대로 따른다. 군데군데 비문법적 표현이 보인다.) 


현장에는 토실이 확인된 곳을 덮어 놓은 채 그 표식만 해 놓고, 일부 청동기시대 주거지로 판단되는 곳에서는 초가로 간단히 표시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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