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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저 조그만 위원석渭原石 벼루에 담긴 사연

by 버블티짱 2022.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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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벼루라는 물건을 쓰는 사람도 많지 않고, 쓰더라도 문방구에서 파는 먹물 부어놓는 용도로만 알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제법 가까운 옛날만 하더라도 벼루는 어지간한 집이면 누구나 갖춰놓는 것이었다.

 

글씨나 그림을 작作하려면, 하다못해 간단한 편지를 쓰려고 해도 물을 부어 먹을 갈아 먹물을 만드는 벼루는 있어야 했으니까. 문방文房의 네 가지 보물 중에 벼루가 왜 들어가겠는가. 

 

그런 만큼 좀 아는 사람들은 좋은 벼루가 무엇인지 따졌다. 진흙을 구워 만든 징니연澄泥硯이나 기와벼루인 와연瓦硯, 도자기벼루인 도연陶硯, 심지어 나무로 만든 목연木硯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벼루는 돌로 만들기 마련이다.

 

당연히 좋은 돌로 만들어야 좋은 벼루라고 할 수 있는 법, 솜씨 좋은 조각은 그 다음이다.

 

벼룻돌 중의 최고라는 단계석端溪石 중에서도 특별히 좋은 돌은 아무 조각도 없이 판판하게만 한 판연板硯으로 만든다니, 벼루에 조각이란 어쩌면 옷이나 화장 정도의 의미이지 않을까도 싶다.

 

 
 
 
우리나라에 선비며 서화가며, 글 하는 이가 많았으니 그들이 필요로 하는 벼루가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러니 좋은 벼룻돌이 난다고 알려진 곳도 제법 되고, 산지별 품평을 한 기록도 없지 않다. 남포석藍浦石, 종성석鍾城石, 안동마간석安東馬肝石, 고산석高山石, 대동강석大同江石... 
 
 
그중에서도 최고로 꼽히곤 하는 돌이 저 압록강 자락의 평안북도 위원渭原에서 나는 위원석이다.
 
 
돌이 하도 아름다워 위원화초석이라고도 하고 단계석에 견줄 만하다 해서 위원단계석이라고도 한다. 퇴적암 계열인데 녹색과 붉은색 켜가 층층이 쌓여있어 조각하면 눈에 확 띄고 먹을 갈면 발묵이 그렇게 잘 된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이북 땅, 거기서 벼루가 더 나는지도 알기 어렵다.
 
 
 
 
 
잘 쓰진 못하지만 붓글씨를 익힌 적도 있고 해서 좋은 벼루를 몇 구해두려고 하는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일본에 가있다가 돌아온, 손바닥보다는 좀 더 큰 위원석 벼루 하나를 보게 되었다.
 
위원읍에 옥양당玉陽堂이라는 벼루가게가 있던 모양으로, 옥천玉泉이란 호를 쓰던 장인이 깎았다.
 
일본 취향을 겨냥해서 만들었는지 빈틈없이 들어맞는 뚜껑하며 자연석 느낌 내려고 일부러 거칠게 만든 모양새가 우리 미감은 아니다(어쩌면 일본 장인일지도).
 
녹색 켜를 살짝 남겨 대나무에 그라데이션을 남긴 감각은 칭찬할 만 하지만 말이다.
 
 
 
 
 
사놓고 한번도 안썼는지 벼루면은 아직도 빤질빤질하다. 뒤에는 옛 라벨이 그대로 붙어있는데 번호가 8001번이란다.
 
일제강점기 옥양당을 거쳐 팔린 위원석 벼루가 못해도 팔천 개를 넘겼다는 얘기인데, 그 벼루들은 다 누가 썼고 어디로 갔을지! 
 
 
 
 
 
비슷한 벼루 중에 '위원공립보통학교 근제' 뭐 그런 라벨이 붙은 것도 봤는데, 일종의 특성화를 시키려고 그랬는지 아니면 다른 속셈이었는지 학생들에게 벼루 깎는 일을 아예 정식 필수과목으로 만들어 강제했다고 한다.
 
일제 때 위원석 벼루의 성가聲價를 짐작케 하지만 참 씁쓸하다고 해야 할까 화가 난다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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