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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전체 398개 글자인 울진봉평신라비

by taeshik.kim 2018.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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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경북 울진군죽변면 봉평(鳳坪) 2리(里)에서 발견되고, 지금은 그 발견 지점 인근 봉평신라비관에 전시 중인 울진봉평신라비는 높이 240센티미터인 변성화강암 사면 통돌 중 앞면만 대략 편평하게 다듬어 글자를 새겼으니, 판독자에 따라서는 10행 397자 또는 10행 398자로 본다. 10행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으며, 행마다 글자수는 들쑥날쑥이다. 


비를 건립한 시기는 524년, 신라 법흥왕 11년이니, 그 내용은 차지하고 오늘은 비석에 적힌 총글자수가 398자임을 다시금 명백히 하고자 한다. 다시금이라 하는 까닭은 나로서는 이에 대해 이미 여러 번 강조했으며, 오늘은 그 재방인 까닭이다. 


제시하는 봉평비면 사진은 그 마지막 구절이 포함된 곳이라, 이에서 관건은 '世中◎三百九十八'라는 마지막 구절이라, 이에서 관건은 ◎ 글자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종래 이 글자는 압도적으로 아들 '子'로 읽었지만, 이 사진이 명백히 보여주듯이 이 글자는 글자 모양으로 봐도, 그리고 문맥으로 봐도 글자 字일 수밖에 없다. 


첫째, 글자 모양을 보면 이 글자가 子 혹은 字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으니, 관건은 갓머리 '宀'가 있느냐 없느냐에 모아진다. 사진이 명백히 보이듯이 분명히 '宀'가 있으니, 이 글자는 字일 수밖에 없다. 


둘째, 이는 문맥으로 봐도 字일 수밖에 없으니, 다름 아니라 이 비문에 적힌 총글자수가 398자이기 때문이다. 이 398자에는 '世中字三百九十八'까지 포함한다. 


그렇다면 왜 이 비문은 총글자수를 명백히 밝혔는가? 

이것이 법률 조문인 까닭이다. 법률 조문은 한 글자가 어찌 되느냐에 따라 그 내용이 때로는 왕청나게 달라지기 마련이라, 그런 까닭에 법률 조문은 단 한 글자도 고치지 못한다고 이미 상앙이 《상군서(商君書)》에서 강조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 비문 성격을 둘러싼 논쟁 역시 해결 기미를 마련한다. 이 비문은 법률이다. 전체가 법률 조문이다. 

판결문이 아니다. 판결문은 그런 법률을 근거로 해서 특정한 사례에 대해 내린 판단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판결문과 법률은 왕청나게 다르다. 


저 문구를 우리가 '世中字三百九十八'로 확정함으로써, 전체 비문 성격까지도 우리는 파악하는 지남철을 확보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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