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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

차천로(車天輅)가 가야금 타는 추향에게 준 시

by taeshik.kim 2019.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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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 타는 기생 추향에게 주다[贈琴娘秋香] 


차천로(車天輅, 1556~1615)

  

열두 봉우리 무산이 꿈속에도 쌀쌀해

아롱진 창문엔 등불 하나만 깜빡이네 

옛 곡조 튕기며 〈금루의〉 노래하더니

시름겨워 찌푸린 채 난간에 기대었지

비녀 위 나란히 나는 제비 부럽기만

거울속 홀로 춤추는 난새 더욱 가련타

연지파에 남긴 옛 자취 찾아 왔건만

발자국 덮은 무성한 이끼 차마 못보겠소 


十二巫山夢裏寒, 半窓明滅一燈殘. 

手調舊曲歌金縷, 眉蹙春愁倚玉闌. 

却羡雙飛釵上鷰, 更憐孤舞鏡中鸞. 

臙脂坡下尋遺迹, 屐齒苔痕不忍看. 


(《오산집(五山集)》 속집 권2) 



  

[해설]

차천로(車天輅)가 전라도 장성땅 기생 추향에게 준 것으로 그녀의 시권 첫머리에 있던 “강월생명계영한(江月生明桂影寒)……”의 원운으로 추정된다. 


1행의 열두 봉우리 무산[十二巫山]은 십이무봉(十二巫峰), 무산십이봉(巫山十二峰)이라고도 하는데 오늘날 중국 사천성(泗川省) 기주부(夔州府) 무산현(巫山縣) 동쪽에 있는 명승이다. 전국시대 초(楚)나라 사람 송옥(宋玉)이 지은 《고당부(高唐賦)》에서 이르기를 


“옛날 선왕(先王 회왕(懷王))이 일찍이 고당에서 노닐다가 피로하여 낮에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어떤 부인이 말하기를 ‘저는 무산(巫山)의 여자로 고당의 객이 되었습니다. 임금께서 고당에 와서 노닌다는 말을 들었사오니, 잠자리를 모시고 싶습니다.’ 하니, 선왕이 그로 말미암아 정을 나누었다. 그 여인이 작별하면서 말하기를 ‘저는 무산의 남쪽 고구(高丘)의 어귀에 살면서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아침이나 저녁이나 양대(陽臺)의 밑에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라고 했으니, 


이에서 비롯하여 운우(雲雨)가 남녀의 정교(情交)를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예서는 그리운 정인[情人]을 이른다. 


3행의 〈금루의(金縷衣)〉는 악곡(樂曲) 이름이라, 〈금루곡(金縷曲)〉이라고도 한다. 《천중기(天中記)》에 따르면 당나라 함통(咸通) 연간에 회남(淮南) 이공(李公)이 강에서 놀 때 뱃사공이 상앗대를 잘못 놀려 이공의 시녀(侍女) 옷에 물이 튀기자 이공이 안색을 붉혔다. 마침 자리를 함께한 막좌(幕佐) 배여경(裴餘慶)이 이공에게 시를 지어 바치기를 “아황처럼 고운 얼굴에 비단옷이요, 물총새 깃털 장식 옥비녀에 스치네. 물방울 튀겨 비단 저고리 젖었으니, 아마도 무산 신녀가 저녁 비에 돌아왔나.〔半額鵝黃金縷衣 翠趐浮動玉釵垂 從敎水濺羅襦濕 疑是巫山行雨歸〕”라고 하였다. 


5행의 ‘비녀 위 나란히 나는 제비’는 대가리를 제비로 장식한 연채(燕釵), 곧 옥연채(玉燕釵)를 이른다. 


6행을 보건대, 남조南朝 송나라 범태(范泰)가 쓴 〈난조시서(鸞鳥詩序〉 에 따르면, 옛날에 계빈왕(罽賓王)이 준묘산(峻卯山)에 그물을 쳐서 난새 한 마리를 사로잡고 무척 아꼈는데, 그 새가 삼년 동안 한 번도 울지 않았다. 그러자 그 부인이, “듣자 하니, 새는 같은 부류를 보면 운다고 하던데, 거울을 걸어 비치게 하면 어떨까요?” 하고 제안했다. 왕이 그 말대로 했더니, 난새는 거울에 비친 그림자를 보며 구슬피 울어서 그 소리가 하늘에까지 울렸다. 그러다가 새는 펄쩍 한 번 날아오르더니 그대로 죽어버렸다고 한다. 여기서는 난새처럼 변치 않고 정인을 그리는 것을 이른다. 또한 난경(鸞鏡)은 경대(鏡臺)를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7행의 연지파(臙脂坡)는 연지파(燕脂坡)라고도 하는데, 한나라 때 장안(長安)의 기방(妓坊)을 이르는 말로 나중에는 기방(妓房)을 이르는 말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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