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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천안 천흥사論] (3) 왕건이 성거산 오색구름을 본 수헐원愁歇院

by taeshik.kim 2021.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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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앞서 고려 태조 왕건이 지금의 위례산을 바라보고는 신이神異한 오색 구름이 위에 이는 모습을 보고는 신성한 기운이 노니는 곳이라 해서 그 산을 성거산聖居山이라고 부르게 했다는 기록을 접했거니와

 

그 오색 구름을 본 장소를 신증新增에서 이르기를 직산현 서쪽 수헐원愁歇院이라 했다는 대목이 있음을 기억할 것이다. 이곳에서 그가 동망 산상東望山上, 곧 동쪽으로 산 꼭대기를 바라보았다 했으니, 곧 죽어도 수헐원이라는 데는 이 성거산(위례산)을 기준으로 서쪽에 있어야 하며, 아울러 이곳에서 위례산이 보여야 한다.

 

이에 수월헌이 분포할 만한 대략의 범위를 지도에서 그리면 아래와 같다.

 

 

위례산, 곧 성거산을 기준으로 수헐원이라고 동글배기 친 어드메쯤에 수헐원이 있었을 것이다. 더 범위를 좁힌다면 수월원은 원院이라는 명칭을 볼 적에 그곳이 역원驛院이니, 도로상에 위치해야 한다. 주막도 있었을 것이며, 당연히 숙박시설도 갖춘 곳이다.

 

그렇다면 수월원은 어디일까? 이곳 사정을 내가 속속들이 알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이 대목이 수상 쩍어 가벼운 마음으로 천안시청 학예연구사 김은정한테 물었더니 대뜸 나온다는 반응이

 

"헛? 수헐리요?"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말에 놀라 "수헐이라는 지명이 지금도 있단 말인가?" 되물었거니와, 그랬다. 지금도 이 근방에는 수헐리라는 데가 있었다. 수헐이라는 지명은 까마득히 사라진 줄 알었더니 아니었다.

 

그러고선 다시 천안시청 홈페이지를 두들기니 수헐리愁歇里가 보이거니와, 그 설명은 이랬다.

 

직산군 서변면의 지역으로 시름세, 수흘리라 부르는데 고려 태조 왕건이 이곳에 있는 원에서 쉬면서 동쪽의 산을 바라보니 오색구름이 영롱함을 보고 신선이 사는 산이라 하여 제사를 지내고 근심을 풀어 잘 쉬어 갔으므로 시름세 또는 수헐이라 하였다 하며 그때 제사 지내던 산은 신이 사는 산이라 하여 성거산(聖居山)이라 하였다고 한다. 수헐리 이곳은 고려초 이전부터 길손이 쉬어가는 원이 있었던 곳이며 수헐의 지명도 오래된 것 같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에도 그대로 수헐리라 하여 성산면에 편입되었다가 성산면의 면명이 직산면으로 개칭되었고, 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직산읍 수헐리가 되었다.

거리막 : 시름세 동남쪽 큰 길가에 있는 마을.
마룻들 : 시름세 앞에 있는 큰 들. 옛날 서해 바다물이 이곳까지 들어왔다고 하며 나루터였다는 전설도 있다.
찬샘골 : 시름세 동쪽에 있는 골짜기. 찬물 나는 샘이 있다.

탑골 : 시름세 북쪽에 있는 골짜기 탑이 있다.
수헐원터 : 시름세에 있는 수헐원 터. 고려 태조가 이곳에서 쉬면서 성거산에 제사를 지냈고, 조선 4대 세종대왕 23년(1441) 3월 19일에 소헌왕후 심씨가 온양온천에 거동할 때 비가 와서 땅이 질고 날이 추워 세종대왕이 사람들과 말이 피곤함을 염려하여 이곳에 머물면서 진무(鎭撫) 두 사람에게 명하여 술과 밥을 싣고 다니며 연도의 사람들을 구제하였다고 한다.

 

비록 전승이나 여로 모로 검토가 필요한 대목이 있으니, 예컨대 이를 보면 수헐원은 터가 남아있는 듯하며, 탑골은 또 어디를 가르키며, 마룻들이라는 데는 바닷물이 들어왔다는데, 이걸 보면 앞서 본 직산 일대 산 중에서 왜 하나가 망해산望海山인지도 해명할 듯 싶다.

 

현지에서는 수헐리를 시름세라 한다는데, 하긴 수헐愁歇이란 말은 글자 그대로는 근심을 풀며 쉬는 곳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수헐리는 어디인가? 현재의 지명을 기준으로 수헐리는 아래와 같다.

 

 

이를 보면 수헐리는 드넓은 평야지대에 위치하며, 덧붙여 그런 까닭에 그 동쪽으로 우뚝 솟은 위례산이라든가 성거산, 그리고 태조산을 한 눈에 조망할 것으로 본다. 다만 이는 내가 현장에서 확인한 것은 아니므로, 판단은 유보한다.

 

그건 그렇고, 이를 보면 이 수헐리가 앞서 대략 우리가 그린 수헐리 분포지점에 위치함을 본다. 보다시피 수헐리를 기준으로 위례산, 곧 성거산은 정동쪽이라 할 지점에 위치한다.

 

수헐리만 떼어보면 아래와 같다.

 

 

이쪽 어딘가에 아마도 수헐원이 있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남북으로 난 도로변 어디일 것이다.

 

아래는 천안 출신 한국관광공사 대선배님인 장필순 선생이 인용한 규장각 소장 어느 조선후기 직산 일대 지도인데 위례산성이라 해서 그것이 위치한 곳을 성거산으로 지목하거니와, 이때도 위례산이 성거산이었음을 직감한다. 

 

 

그건 그렇고 사산巳山, 곧 다른 문헌에는 흔히 사산蛇山으로 지목하는 산 서쪽 기슭에 위치하는 현치縣治를 기준으로 그 동쪽 성거산 일대를 일동면一東面 이동면二東面 삼동면三東面 하는 식으로 행정구역을 구분한 사실이 재미있거니와

 

이동면과 남면南面 사이에 휴류암鵂鶹岩? 으로 판독할 만한 바위 표시가 있으니, 이것도 확인할 만하고 성거산 일대를 넘어 동쪽으로 가는 고갯길로 무슨 탄치呑峙며, 扶 무슨 峙 같은 데가 보이거니와, 이것이 옛길일 것이다. 

 

이런 것들을 모조리 현장 확인해야 할 성 싶다. 

 

암튼 왕건이 성거산, 곧 지금의 위례산을 바라보며 오색 구름을 보았다는 수헐원 그 위치를 우리는 확인했으므로, 다음은 이 수헐원이 다른 데서는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는지를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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