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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

최천약이 만들었다는 개구락지

by taeshik.kim 2020.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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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개구리였을까?]

숙종~영조 때 조선의 과학기술은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특히 자명종 개발로 이름을 날린 사람으로는 전라도 동복의 나경적(羅景績)과 서울에 거주하던 최천약(崔天若)과 홍수해(洪壽海)가 두드러진 사람이었다. 최천약의 기록을 보면 그가 전주에서 희안한 개구리를 만들었던 모양인데 이게 뭔지 도저히 상상을 못하겠다. 황윤석(黃胤錫, 1729~1791)의 《이재난고(頤齋亂藁)》에 실린 부분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

진주(晉州)의 풍수가(風水家) 문재봉(文再鳳)의 말이, 최천약(崔天若)은 웅천(熊川) 사람이고 홍수해(洪壽海)는 기장(機張) 사람인데 모두 공교한 기능을 지녀 왜관(倭館)에 들어가 금속, 목재, 흙, 돌을 공야(攻冶)하는 방법을 전수 받아 익혀서 갖가지 것에 정밀하고 기발하였는데, 윤종(輪鐘)과 화기(火器)가 더욱 기발하여 세상에서 크게 기용되었으나 모두 하급 관리에 제수되었다. 혹자는 왜놈보다 솜씨가 더 좋다고 하였다. 최천약이 전주부(全州府) 대장간에 이르러 구리 개구리[銅蛙]를 주조하였는데, 뱃속 화약에 불을 붙이고 물을 넣어두면 스스로 도약하고 오줌을 쌀 수도 있었다. 이로 말미암아 이름이 알려져 홍수해도 따를 수 없다고 하였다.[晋州地師文再鳳言 崔天若熊川人 洪壽海機張人 並有巧且能 入倭舘 傳習金木土石攻冶之法 種種精絶 而輪鐘火器尤妙 爲世大用 俱沾末官 或云 倭人者過也 天若至全州府冶家 鑄銅蛙 腹中引火藥貯水 亦能自躍自尿 由是知名 壽海亦所不及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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