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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코로나 포박한 550살 거북이

by taeshik.kim 2020.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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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550 year young Turtle Captured by Corona-19




바커스 아줌마들과 노인네들 독무대라는 탑골공원은 그 이름이 원각사랴는 절에서 비롯한다. 그 내력은 아래를 참조토록 하고, 가끔은 내가 그 거북이가 궁금해 근자에만 해도 두어번 찾았다가 번번이 낙담하고 말았으니

코로나19에 락다운lockdown 때마다 빗장이 채워진 까닭이다.




그러다가 어찌하여 오늘 그 빗장을 무삼일로 연다기에 시간 맞춰 갔더니 용케 몸 들이민다.

위선 유리가 포박한 십층석탑 친견하곤 무사함을 확인하곤 이내 발길 거북이로 돌리니 저 아래 지하에서 등허리에 그 무거븐 빗돌 받친 거북이 끄떡없이 쇼트한 머리 고추 세우곤 이제 왔냐 핀잔한다.




이 거북 태어난 해가 조선 성종 2년, 1471년이라 올해 550살이다. 아 좀 많다 하겠지만 이 분야 독보 경주 태종무열왕이 부리는 그 거북은 660년 생이라 올해 1.369세라 그에 견주면 애송이 하룻강아지라

저 화강암 돌덩이가 무에 팬데믹이 무섭겠는가?

함에도 애꿎은 중년 거북 코로나에 포박되어 신음하니 훌훌 털고 바커스 아줌마도 좋고 시국 성토하는 팔순 송장 뇐네들도 좋으니 나 좀 사람 냄새 맡게 해달라 애원한다.




그랬다.

아무나가 넘쳐날 땐 몰랐다가 포박당한 그대 보니 그대 비로소 사랑이고 포근이었소.

다시 오마 하는 말 남기고 돌아서는데 다시 보는 그날 바커스 한 박스 선물하리다.



대원각사비大圓覺寺碑
Monument of Wongaksa Temple


지정번호 : 보물 제3호 / 시대 : 1471년(성종 2)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2가 38-3번지


조선 성종 2년, 1471년 아버지 세조世祖가 원각사를 창건한 경위를 적어 세운 비석이다.

불심이 돈독했던 세조는 양주 회암사에서 분신分身한 사리를 보고 감동하여 1465년(세조 11) 흥복사興福寺 터에다 원각사를 지었다. 이어 1467년(세조 13)에 13층 석탑이 완성되자 연등회를 열고 낙성식을 거행하였으며 그 전후사정을 적은 비석을 조성하게 하였다.

거북이 모양 받침돌을 만들고 그 등 위에 연잎을 새겨 비석 몸돌을 세울 자리를 만들었다. 몸돌은 머릿돌인 이수首와 한 돌로 만들었다.

비석 전체 높이는 494㎝이며 거북은 화강암으로, 몸돌과 머릿돌은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당대 문장과 글씨로 이름난 사람들이 비문을 맡았다.

김수온金守溫이 앞면 글을 짓고, 성임成任이 그 글을 썼으며, 서거정徐居正이 뒷면 글을 짓고, 정난종鄭蘭宗이 그 글을 썼다.

연산군 대 궁궐에 인접한 민가를 철거하면서 원각사는 빈 절이 되었다. 근대에 들어 공원으로 변모한 이곳에는 십층석탑(국보 제2호)과 이 비석만 남아 원각사 옛 흔적을 보여준다.



Designation : Treasure No. 3 / Period : 1471 (2nd year of King Seongjong's reign)
Location : 38-3, Jongno 2-ga, Jongno-gu Seoul





Monument of Wongaksa (Temple) was erected in 1471 (2nd year of King Seongjong's reign) to record the particulars of the foundation of Wongaksa on this monument.

King Sejo, who was a devout believer of Buddhism, built Wongaksa at the site of Heungboksa (Temple) in 1465 (11th year of King Sejo's reign), after being amazed by the incarnated sarira at Hoeamsa in Yangju.

When a thirteen-story stone pagoda was completed in 1467 (13th year of King Sejo's reign), King Sejo held a dedication ceremony together with Yeondeunghoe (Lantern Festival) and directed subjects to erect a stone monument recording the circumstances.


 


A turtle shaped stone prop was made, and lotus leaves were carved on the back of the turtle to create a space for the body stone of the monument.

The body stone and the head stone 'isu' were made with a single stone.

The height of the monument is 494 cm. The turtle was made of granite, and the body stone and head stone were made of marble.




Master writers and calligraphers at the time were in charge of the inscription. Kim Suon composed the inscription on the front and Seong Im wrote it in a calligraphic style. Seo Geojeong composed the inscription on the back and Jeong Nanjong wrote it in a calligraphic style.




Wongaksa became an empty temple as private houses near the royal palace were pulled down during the period of King Yeonsangun.

In modern times, the area was turned into a park. Only a Ten-story Stone Pagoda (National Treasure No. 2) and this monument remain today, showing traces of Wongak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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