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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폭포수처럼 쏟고간 문학평론가 김윤식

by taeshik.kim 2018.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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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오늘 일은 대강 끝났겠지 하니, 몸뚱아리 그대로 축 늘어진다. 오늘과 같은 또 다른 내일을 기약하며, 비몽사몽 막 헤매기 시작하는데 전화기가 울린다. 우리 공장 문학 담당 임미나 기자다. 이르기를 "김윤식 선생이 돌아가셨어요. 기사 넣었습니다"고 한다. 요새 나 스스로가 어찌 사는지 도대체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는 나날이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그 무수한 사건 더미에서도 그날 하루하루를 기억할 만한 일이 꼭 한 가지 이상은 있기 마련이다. 한데 어쩐 일로 오늘은 그런 일이 없다시피 해서 못내 이상했더랬다. 그 바쁜 일상에서도 특출난 일이 없을 법한 오늘이 김윤식 타계를 위한 불길한 전조곡 아니었나 한다. 


기조발제 하는 김윤식 교수 (서울=연합뉴스) 유용석 기자 = 29일 오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11 이병주 하동국제문학제 심포지엄에 참석한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가 기조발제를 하고 있다. 2011.9.29 yalbr@yna.co.kr [ 송고]



그의 타계는 실은 시간 문제였으니, 오늘내일 하는 일이었다. 그가 쓰러졌고,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소식은 이미 올초에 전해졌던 것이며, 그런 까닭에 나도 그렇고, 임미나 기자도 마찬가지라, 그의 타계를 대비 중이었다. 임 기자가 타계에 대비한 기사를 미리 써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느 죽음이나 그렇듯이, 이번 죽음 역시 예정일이 없었다. 출산은 예정일이라도 있지... 물론 역사를 돌이키면, 신라 선덕여왕은 내가 어느날 죽을 것이니, 내 무덤은 어디에 쓰라 평소에 말했고, 그런 죽음이 정확히 그가 예언한 그날이었노라고 사서에서는 적었으나, 뭐 진짜 그랬겠는가? 그만큼 이 여왕이 예지력 뛰어났다는 일화를 증언하는 사후 일화로써 가탁했을 것임이 뻔하다. 


문학평론가는 그 위세가 화려한 듯 해도, 그리 속편한 일은 아니다. 이미 생산한 문학작품을 분석대상으로 삼는 그런 일이 엄연히 창작 작업 일종이기는 해도, 그 창작을 선도하는 일은 아니며, 더구나, 그런 붓끝에서 나온 평론이라는 것이 이른바 주례비평이 아닌 한, 언제나 먼저의 창작자들과는 긴장감을 형성하기 마련이다. 그런 까닭에 언제나 평론가는 "너가 그리 잘났음 너가 작품을 써봐라"라는 힐난에 노출하는 법이다. 


기조발제 하는 김윤식 교수 (서울=연합뉴스) 유용석 기자 = 29일 오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11 이병주 하동국제문학제 심포지엄에 참석한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가 기조발제를 하고 있다. 2011.9.29 yalbr@yna.co.kr [ 송고]



하기야 김윤식은 평론가보다는 국문학 연구자라는 말이 본령이 맞을지도 모른다. 이는 그 자신이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30여 년을 봉직하면서, 이른바 국문학 중에서는 건딜지 않은 분야가 없는 까닭이다. 그의 죽음을 전하는 한겨레신문 문학전문 최재봉 기자 기사를 보면, 2001년 9월 서울대박물관 강당에서 행한 정년퇴임 기념강연에서 했다는 말이 무척이나 인상적이거니와, 최 기자에 의하면 이에서 김윤식은 “연구자와 평론가로서 쓴 글들은 결국 ‘나만의 글’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며 “표현자로서 나는 실패했다”고 단언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평론가의 숙명이다. 하지만 최 기자에 의하면, "그럼에도 '인간으로 태어나서 다행이었고, 문학을 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영국 낭만주의 시인 워즈워스의 시 한 대목을 인용하는 것으로 강연을 마무리했다고 하니, 역시 문학하는 사람답다.


“한때 그토록 휘황했던 빛이/ 영영 내 눈에서 사라졌을지라도/ 들판의 빛남, 꽃의 영화로움의 한때를/ 송두리째 되돌릴 수 없다 해도/ 우리는 슬퍼 말지니라. 그 뒤에 남아 있는/ 힘을 찾을 수 있기에”(‘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영생불멸을 깨닫는 노래’ 부분)


김윤식이 인용한 저 시가 내 세대에는 책받침에 가장 흔히 발견되는 구절이기도 했으니, 10대 앳된 시절 그 이쁘기 짝이 없는 소피 마르소와 피비 캣츠, 그리고 브룩쉴즈가 삼두마차를 이루며 앞서거니뒤서거니 하며, 그 연습장 전면 겉을 장식한 그 뒤편 겉면에는 언제나 저 시가 있었다. 


그래도 명목상으로는 한때 영어영문학이라는 요상한 외국 학문을 공부한답시며, 그에 잠깐 몸담은 나에게는 더 특별할 수밖에 없다. 


아래 링크하면 들어가는 임미나 기자 기사에 엿보듯이 그는 걸신걸린 듯 글을 썼다. 그런 까닭에 그의 어떤 책 어떤 글이 그의 본령을 비교적 잘 정리한 것인가를 점치기 어렵고, 나 역시 그 무수한 김윤식 글 중에서 어떤 것을 읽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기만 하다. 너무 많이 쓴 까닭이라고 본다. 남발에 가까웠으니, 나는 저와 같이 걸신걸린 사람의 심리를 어느 정도는 안다고 생각한다. 실은 내가 한때 저런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처럼 쏟아내고 간 그는 후련할까? 그래도 아쉬웠으리라. 저만치 홍수처럼, 폭포수처럼 쏟아놓고는 그는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다하지 못하고 갔으리라고 나는 본다. 


문학평론가 김윤식 교수 별세


그건 그렇고 2018년은 왜 이리 죽음이 많은가? 무더위 때문인가? 추풍낙엽처럼 스러져만 간다. 그래서 나랑 직접 인연은 없어도 그의 죽음이 더 애처롭다. 안식할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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