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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

하서 감나무[河西枾]

by taeshik.kim 2018.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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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전북 고창군 성송면 출신으로 영조~정조 연간에 할동한 이재(頥齋) 황윤석(黃胤錫·1729~1791)이 그의 방대한 일기 《이재난고(頤齋亂藁)》에 수록한 글 중 이런 것이 있다.  


하서 감나무에 대한 설[河西枾說]


송찬욱(宋贊旭) 군 말에 따르면 "하서(河西) 선생께서 옥과 현감(玉果縣監)으로 계실 때, 두 밭 경계에 있는 감나무 한 그루 때문에 서로 다투다가 송사(訟事)를 벌인 자들이 있었다. 선생께서 갑(甲)쪽 가지에 열린 감은 갑이 주인이고, 을(乙)쪽 가지에 열린 감은 을이 주인이라고 명령[판결]하니, 두 사람이 그 명령대로 하되, 중간에 열린 감은 내버려두니 주인이 없었다. 선생께서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니 두 사람이 이 일을 떠올리고는 각기 가지 하나라도 주인이 될 수 없다고 하고는 이 감나무를 '하서 감나무[河西枾]'라고 불렀다. 근세에 옥과 현에서 과거를 보여 시사(試士)할 때 '하서 감나무'라는 제목으로 출제(出題)했다"고 했다. 이는 하서의 후손들도 알지 못하므로 적어둔다. 


河西枾說

宋君贊旭言: "河西先生監玉果也, 有以二界上一枾木相爭而訟者. 先生令甲邊枝結子則甲主之, 乙邊枝結子則乙主之. 二人如其令, 中枝結子者, 任其無主. 先生旣遞歸, 二人思之, 雖其各一邊枝, 亦不主名之曰河西枾. 近世本縣設場試士, 以河西枾命題". 此本孫所未及知者, 故錄之. 

<전남 장성 奇氏네 대봉>


[해설]

이에서 말하는 하서(河西)란 조선 중기 저명한 학자요 정치가인 김인후(金麟厚·1510~1560)의 號다. 전라도 장성 출신으로, 본관은 울산(蔚山)이며, 자가 후지(厚之)이며 담재(湛齋)라는 다른 호를 사용하기도 했다.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황윤석이 적은 이 기록은 이후 순조 때 하서의 시문을 모은 《하서집(河西集)》을 인간(印刊)할 때 《하서전집(河西全集)》 부록 권之2 <敍述>에 축약해 수록하고는 "옥과에서 들은 것을 기록[玉果記聞]"한 것이라 했다. 황윤석에게 이 이야기를 해준 송찬욱(宋贊旭)은 담양에 살던 신평 송씨(新平宋氏)로, 면앙정 송순의 후손인 듯하며, 선달(先達)로 불렸으나 자세한 행적은 확인키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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