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크기로 유명한 사람, 김부귀
1930년대 경성, 사람들은 '그로'(그로테스크)에 빠져있었다. 무언가 기괴한 일 없나, 궁금해하고 찾아다니던 그들의 앞에 '그로'의 실체가 나타났다.
당시 세계에서 세번째로 키가 컸다는 거인, 김부귀金富貴(1905-1943)가 그였다.
경남 거창 사람으로 지리산 화엄사에 출가해 승려생활을 하다 속세로 나온 그를 두고 사람들은 "낮도깨비야 낮도깨비!" "원 그런 사람이 있을랴구"라고 수군거렸으며, 신발이 배만하다는 둥 손이 솥뚜껑만하다는 둥 온갖 말을 덧붙였다.
남아있는 사진만 봐도 과연 거인巨人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신문이며 잡지에 실린 인터뷰 기사도 제법 확인되는데, 그 큰 체구로 세계일주를 하겠다고 나서 중국, 일본을 거쳐 미국 하와이까지 갔다왔다니 환속還俗한 보람은 있었다고 할까.
거기서 더 나아가 이희승李熙昇의 수필 <오척단구>, 그리고 심훈沈薰의 소설 <상록수>에까지 자기 이름 석 자를 남겼으니 인물은 인물이었다 하겠다.
우리나라에서 "키 크고 싱겁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말이 속담화俗談化가 되어 있지마는, 진정인지 김부귀와 같은 멋 없이 늘씬한 키는 눈꼽만치도 부럽지 않다.
ㅡ <오척단구> 중에서
건배는 납작한 토담집 앞까지 와서,
"이게 명색 우리집인데요, 나 같은 김부귀(키 크기로 유명한 사람) 사촌쯤 되는 사람은 이마 받이 허기가 똑 알맞지요. 허지만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비고 누웠어도 낙이 다 게 있구 게 있거든요."
하더니 미리부터 허리를 구부리며 집 속으로 기어들어간다.
ㅡ <상록수> 중에서
그 김부귀가 세상에 남긴 흔적 중 하나를 최근 만났다. 그가 아마 일본에 들렀다 남긴 것인 모양으로, 수형手形이라 해서 손도장을 찍은 종이이다.
우리야 손도장 하면 안중근 의사를 연상하지만, 일본에서도 이는 꽤 유행하여 특히 스모 선수들이 이런 손도장을 많이 남겼다고 한다.
그나저나 손이 진짜 솥뚜껑 만하다. 나도 명색이 키가 '육척'으로 작은 편이 아닌데, 이 '칠척삼촌오푼', 220cm의 손아귀에 견주자니 어린애 손바닥이 따로 없다.
이 정도면 최홍만은 넘어서고, 농구선수 하승진이나 북한 농구선수 리명훈과 견주어야 하지 않을까.
키큰 사람 많은 지금도 이렇게 신기할진대 1930년대에는 오죽 구경거리였을까.
문득 측은한 마음마저 드는구나, 세계거인世界巨人 김부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