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못본 구라파 유람기] (5) 프란체스코 토티와 플로렌스
파리를 떠났다. 유럽을 위한 관문으로 파리를 골랐으니, 내가 서울로 돌아가는 기착점 역시 파리가 될 것이라, 파리는 다시 그때를 기약하며 다음 예정지인 로마로 출발했다.
어찌 읽어야는지 여전히 자신이 없는 Vueling이라는 저가항공을 이용해 오를리 공항을 출발해 피우미치노 공항을 통해 로마로 입성했다.
그렇게 나는 이태리랑 조우했다.
로마 동부 해안 쪽에 위치한 피우미치노에 도착하니 시침은 자정 언저리를 맴돌았다.
택시를 탔다. 택시 운전사가 마침 영어를 곧잘 했으니, 로마 시내로 정한 숙소를 향하는 길에 대략 30분 남짓했을 그 동행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화제는 말할 것도 없이 축구였다. 나랑 대략 연배가 비슷할 듯한 이 사람 말을 들어보니, 로마 원산이다.
이태리 남자들이야 축구에 환장하니, 당연히 로마를 프랜차이즈로 삼는 Seria A 명문 축구클럽 AS Roma 팬일 듯해 그렇냐 물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광팬이라 한다.
그의 AS 로마 사랑은 소위 말하는 모태신앙이었다.
로마를 근거지로 삼는 다른 구단으로 라치오Lazio가 있으니, 라치오란 로마를 포함한 광역 지자체 행정구역 명칭이다.
우리로 치면 서울과 인천 경기를 합친 개념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라치오가 로마를 프랜차이즈로 삼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아무튼 로마를 근거지로 삼는 사람들에게 As Roma는 모태고지다.
얼마 전 AS 로마 레전드이며 이탈리아 축구의 레전드이기도 한 프란체스코 토티Francesco Totti가 은퇴했다.
편의상 토티라 표기하나 원어에 가까운 표기는 똣띠다.
이 구단에서만 25년인가 하는 세월을 보낸 one club man이요 프랜차이즈 스타다.
그에 대한 로마시민들의 애정이야 오죽하겠는가? 그 역시 토티 팬이었다.
그래서일까? 혹 짬이 난다면 AS 로마 홈구장도 한 번 가봤으면 하는 생각도 했더랬다.
토티는 지구 반대편을 격절로 하는 그와 나를 이은 고리였다.
그가 물었다.
얼마나 로마에 있을 예정이며, 어디를 돌아볼 작정인가?
글쎄, 따로 정한 건 없다. 로마는 물론이려니와 이태리가 처음이라, 우선 로마 이곳저곳을 돌아보고 다른 곳도 둘러보려 한다.
되물었다.
추천할 만한 곳이 있느냐?
대뜸 플로렌스Florence를 보라 한다. 로마서 기차로 얼마 안 걸린단다. 그곳이 그리 좋댄다.
순간 헷갈렸다.
플로렌스?
플로렌스가 어디였더라?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는 통에 택시는 어느새 숙소에 도착해 여장을 풀었다.
그러고는 미지로 남겨둔 플로렌스를 유심칩으로 장착한 다른 휴대폰을 꺼내 검색했다.
이런 댄장, 플로렌스가 바로 피렌체Firenze였다.
피렌체 공화국과 메디치 가문으로 유명한 그 피렌체였다.
구글맵으로 두들기니, 로마 북쪽으로 치고 올라가 기차로 1시간반인가 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지도를 보니, 피사가 그 서쪽 인근이다.
그래 플로렌스를 가리라 작심했다.
며칠 뒤 나는 이를 실행에 옮기고자 로마 테르미니Roma Termini에 섰다. 피사행 표를 끊고는 기차를 기다렸다.
플랫폼과 내가 예약한 기차를 제대로 찾을까 하는 걱정이 없지는 않았지만, 금새 적응한다.
그 기본이 서울역이나 로마역이 다를 수는 없잖은가?
그렇게 해서 나는 플로렌스를 거쳐 우선 피사로 들어갔다가 다시 플로렌스로 갔다. 피사에선 반나절을 투자할 작정이었다.
이런저런 전언과 소개들을 보니 피사엔 피사의 탑 말고는 볼 게 없다는 말이 많았다.
이곳을 다녀왔다는 로마 지인도 그리 말했다.
이내 드러났지만, 이는 내가 무엇을 어찌 보느냐에 달린 문제지 결코 피사가 그 기운 탑만 있는 곳은 아니었다.
피사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금 말할 기회가 있으니 그런 자리로 물리기로 하거니와,
간평하면 피사 역시 어떤 자세로 임하느냐에 따라 살필 곳이 천지였다.
2차대전에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는 소개가 이곳저곳에 보이거니와, 나로서는 이것이 피사 공동체, 특히 그 유산에 끼친 영향의 흔적들을 찾아보고팠거니와,
그 상흔이 여전한 교회도 한 곳을 골라 일부러 둘러봤다.
반나절 피사를 후딱 돌고는 피사역에서 자유이용권을 끊어 기차로, 곧장 동쪽을 향해 30분 남짓만 가면 닿는 플로렌스로 들어갔다.
기차표 끊는 훈련을 받긴 했지만, 구내 열차 자동발매기가 영 사람 애를 태운다.
이 자동발매기엔 내가 가고자 하는 역 이름을 검색해 넣고 그것이 요구하는 요금을 집어넣으면 되지만,
우선 순간 이상한 문제에 봉착했으니 피렌체가 P인지 F인지 헷갈렸다.
이건 F발음이 없는 모국어 사용자에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나아가 자유이용권과 지정좌석제도 순간 헷갈렸다. 자유이용권은 입좌석 겸용이라 앉는 놈이 임자다.
조금 우왕좌왕하는데 한국인 두 여인이 눈에 띈다. 중년과 젊은 처자이니 아마 모녀인듯 했으니 나중에 물어보니 실제 그랬다.
젊은 처자가 친절히 표를 끊어준다. 그네들도 마침 피렌체로 들어가는 길이라 했다.
같은 열차를 타고는 삼십분가량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피렌체 역에 내렸다. 구글맴으로 검색하니 숙소까지 걸어서 불과 20~30분 거리다. 그 모녀와 작별하고는 뚜벅뚜벅 걸었다.
구글맵이 안내하는 숙소 방향을 따라 숙소를 향해 테르미니를 나서니, 비가 오락가락한다.
그날 비는 오지 않은 듯하나, 그곳을 떠날 때는 제법 많은 비가 내렸다.
로마에선 몇 십년만의 가뭄이라 난리인데 이곳은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한 우중충한 하늘이 펼쳐졌다.
역 광장 전면에 고색창연한 교회 하나가 우뚝하다. 변강쇠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구글맵으로 그 성당 이름을 확인했다. Santa Maria Novella라 한다.
노벨라?
옛날 여성용 화장품인가 뭔가 하는 상표 이름이기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퍼뜩 났다.
역 이름 역시 성당 이름과 같으니, 틀림없이 성당에서 따왔으리라.
이는 그만큼 이 성당이 이 주변에서는 표지 노릇을 한다는 의미일 터이다.
들어서려니 돈을 받는다. 씨벌, 공짜로 열어주지 왜 돈은 받고 지랄이야 했더랬다.
이번 유럽여행이 나로서는 묻지마 관광이었으므로, 사전 계획도 없었고, 그리하여 사전 공부란 것도 전연 없었다.
피렌체가 됐건 플로렌스가 됐건, 그 역시 안중에도 없었다.
그냥 발길 닿는대로 가자는 주의였고, 실제로도 그리됐다.
그러니 Santa Maria Novella가 나로서는 정처없이 길가던 똥개가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개뼉다귀에 지나지 않았다.
그 개뼉다귀에 살점이 얼마나 붙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얼마인지 이제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입장료를 내고는 들어섰다. 겉에서 보면 그저그런 유럽 여느 고풍연한 성당이었는데, 들어서니 별천지였다.
피렌체 얘기 나온 김에 이 얘기는 해야겠다.
피렌체는 그곳을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여러 상념으로 남을 것이거니와, 나 역시 어릴 적부터 이미 역사에 탐닉한 인연으로 적지 않은 간접 경험을 했거니와, 특히나 나와 처지가 비슷한 영문학도들과도 인연이 적지 않다.
그에 더해 내가 해직기자가 되고 난 직후의 작은 인연도 한 몫 했다.
2년에서 서너달 모자라는 이 해직기간에 나는 책 두 권을 냈으니, 그 첫번째가 《직설 무령왕릉》이었다.
이 책은 여러 번 말했듯이, 15년 전에 완성하고는 묵혀둔 초고가 바탕이었거니와, 그리하여 해직 돌입과 더불어 곧바로 작업에 돌입해 단행본으로 나왔으니, 그 출판사가 공교롭게도 '메디치미디어'였다.
그 출판사 대표 김현종은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 출신이니, 언론계 경력으로 보면, 나보다 더 늙다리다.
그가 어찌하여 출판사를 차리고, 더구나 그 편액으로 메디치를 내걸었는지, 들은 적은 있으나, 상세한 일은 기억하지 못하거니와 아무튼 피렌체에 매료되어 그리했다는 것만 기억난다.
메디치미디어 저자라는 작은 인연 하나로도 내가 피렌체를 가야 할 이유가 되었다는 말만 적기해 둔다. (January 1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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