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 vs. 베란다, 후자를 잡아먹는 한국건축
에어비앤비로 유럽 각지서 숙소를 검색하다 보면 조건에 걸리는 것 중 하나가 저 베란다 유무다.
나처럼 흡연을 하는 사람들한테 저 베란다는 아주 요긴하지만 저것이 없으면 번거로움이 많다.
또 꼭 흡연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저 베란다가 주는 다용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지금 내가 곧 떠나야 하는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주택지구는 온통 베란다다.
주로 관광객 수용을 염두에 둔 구조 혹은 그러한 방향으로의 개편에서 말미암았을 수도 있지만
이 베란다가 있고 없고는 숙박비 차이까지 빚어낸다.
나아가 와이파이 이야기를 여런번 했지만 그 공유기 설치하지 않고서는 장사를 할 수가 없는 시대다.
이른바 사용후기라 해서 다녀간 사람들 평가가 이후 고객의 선택을 좌우하는 시대라
와이파이 하나 없는 걸로 이 집은 망하고 베란다가 있고 없고로 사용후기 평이 달라진다.
이건 국경이 없다.
전 세계 나도 모르는 사람들한테서 지금의 나와 내 집이 평가받는다는 사실, 실은 아찔하지 않은가?
실은 저 베란다 말이다. 어제 어느 박물관 가면서 찍은 아테네 중심부 한 장면인데
저걸 보면서 처마에 익숙한 한국사람들은 묘한 생각이 든다.
한중일 동아시아랑 이쪽 유럽 구대륙 집을 비교하면 확실히 전자는 처마 중심인데 견주어 저짝은 베란다 오리엔티드다.
구미는 처마가 없다. 그 처마가 가야 할 자리를 베란다가 들어섰다.
저 베란다주의가 가장 묘하게 상충하는 데가 실은 한국아파트다.
이 베란다가 애초 건축 설계대로 살아남은 데가 한국은 없다.
모조리 거실 일부로 다 편입해 빨아들인다.
그래서 평수를 넓히는 관념이 지배한다.
베란다가 애초 도입될 적에는 지금 내가 한가롭게 한 대 빨고 빨래도 널고 하는 유럽지향이었을 텐데
이 역시 현지 문화와 결합해 한국화가 일어났다.
문제는 처마.
애초 없던 처마가 갈 자리가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