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피 석양 마주하며 치솟는 울분을 삭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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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우 이정우 선생 말이라 기억한다.
유럽인가 어딘가로 효도 관광 나온 한 노인이 그랬다고.
이 좋은 델 이제서야 보다니..
정확한 멘트는 아니겠지만 나는 이를 울분이라 적극 해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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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갓 델피에 도착해 여장을 풀고선 바다인지 호수인지 모를 저쪽으로 떨어지는 해를 보고선 이 글을 긁적인다.
델피..좋단 말은 수도 없이 들었다.
문제는 이제서야 이 좋은 데를 왔다는데 괜한 울분이 솟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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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돌아가신지 25년이나 된 울 아부지, 팔순 중반을 넘어 구순 향해 돌진하는 울 엄마, 그리고 마누라 애들, 그리고 다른 가족과 지인 중 여전히 이런 데가 생소인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함을 한한다.
꼭 울분이라는 격한 말이 아니래도 괜히 억울한 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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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길에 테베서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 바람에 험준한 동네 중턱에 자리잡은 이 동네 들어서기 직전
같은 험준한 산중턱에 다닥다닥 붙은 유적 중 델피 고고학 유적 이라는 한 군데만 쏜살 같이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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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 마감까지 20분 남았다기에 번개처럼 날아다녔다.
낼 아침 다시 현장 세 군데를 돌고 박물관을 관람하면 델피 일정은 끝나고 다시 북상해 메테오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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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시피 나는 한이 많은 사람이고 미련이 많은 사람이라 상처가 오래간다.
좋은 말로 정이 너무 많다 하는 사람이 더러 되지만 정 많은 사람은 퍼주길 좋아하지만 난 그런 성향이랑은 거리가 좀 있는 듯하다.
그 잠깐하는 유적 뛰어다니며 내내 사로잡은 감정이 저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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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런 델 지금에서야 왔을까 하는 억울함 말이다.
물론 지금이라도..라고 고쳐먹으면 다르겠지만 이리 생각하겠다 해서 그리 돌아서면 그게 인간이겠는가? 개돼지지.
저 산너머 지는 낙조가 빚어내는 황홀경에 괜한 울분 한 번 쏟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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